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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사' 현진영, 쪽방 집 가족사 공개 "아내 오서운 공황장애 파산...

'이사야사' 현진영, 쪽방 집 가족사 공개 "아내 오서운 공황장애 파산 현빈 아버지 허병찬 사망나이 고향"

현진영 쪽방

현진영 쪽방·수영장 딸린 초호화 주택…짠내나는 이사 스토리(`이사야사`)

가수 현진영이 수영장 딸린 초호화 주택에서 쪽방까지 짠내나는 이사스토리를 공개했습니다.

지난 19일 방송된 TV조선 교양프로그램 ‘부동산로드-이사야사’(이하 '이사야사')에서는 초호화 주택부터 이태원의 5만원 월세 방 그리고 아내와 핑크빛 앞날을 꿈꾸던 옥탑방 보금자리까지 현진영의 극과 극을 오가던 부동산 인생 로드가 전파를 탔습니다.

‘흐린 기억 속의 그대’로 데뷔해 90년대 대한민국에 힙합 바람을 불러일으킨 현진영은 유년기 시절, 48년 인생 중 가장 화려했던 생활을 했다고 밝혔다. 당시 그가 살던 집은 한강뷰는 기본이고, 방 15칸, 화장실 7칸에 수영장까지 갖춘 초호화 고급 주택이라며 “수영장 끝에서 끝까지 다녀오면 숨이 찼다”라고 회상했습니다.

이어 옛집을 찾아다니던 현진영은 위암으로 투병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추억이 깃든 한남동의 또 다른 집을 방문해 눈시울을 붉히는가 하면, 지금의 아내를 만난 역삼동 집까지 찾아가며 인생사를 되짚어봤습니다.

또 현재 아내와 단 둘이 살고 있는 김포 운양동의 집을 소개하며 스튜디오에 자리한 전문가들에게 향후 미래를 위한 적극적인 상담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사야사'는 돈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가장 솔직하고 직설적인 경제 프로그램으로 매주 수요일 오후 11시 방송됩니다.

가수 현진영의 이야기가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됩니다.

오는 17일 오전 8시 방송되는 '사람이 좋다'-'현진영 Go 진영 Go!'를 통해 90년대 힙합 열풍을 몰고 왔던 주역인 가수 현진영의 이야기가 소개될 예정 입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댄서들이 실력을 겨루던 이태원에서 불과 열여섯에 엔터테인먼트 프로듀서 이수만에게 발탁되어 스무 살에 가요계의 최정상에 오른 현진영. 사실 그가 일찍부터 프로 댄서의 길을 선택한 것은 생계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중학생 때 어머니가 오랜 암 투병 끝에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건강마저 악화되면서 가장 아닌 가장이 된 그는, 낮에는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돈을 벌기 위해 춤을 췄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 못해 방황도 많이 했지만, 와중에 그를 붙잡아 준 건 춤이었다. 어린 시절의 아픔은 그를 성장하게 했고, 삶의 경험들은 그의 음악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에게 가장 큰 인기를 가져다준 '흐린 기억 속의 그대' 역시 첫눈 오는 날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서 만들어진 노래였습니다.

이십 대 초반 현진영은 수차례의 약물 파문으로 혹독한 슬럼프를 겪으며 불면증과 우울증, 공황장애까지 앓았다. 그렇게 그가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만난 사람이 지금의 아내 오서운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현진영이 안쓰럽게 느껴졌다는 아내는 18년째 한결같이 현진영의 곁을 지켜 줬다고 합니다.

거듭된 위기에도 아내의 변함없는 지지와 보살핌 덕분에 현진영은 차츰 안정을 찾았고, 재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획사를 설립했던 사업에 실패하면서 그는 또다시 파산이라는 위기를 맞았다. 13년의 만남 끝에 아내와 결혼식을 올리고 난 바로 이듬해였다. 인생의 힘든 고비들을 함께 건너온 현진영, 오서운 부부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됩니다.

마흔일곱이 된 현진영은 재즈힙합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앨범을 발표하고, 그가 십 대 때 힙합 댄스를 추던 이태원에서 재즈 공연을 하는 등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대중음악에 비해 수입은 적어도 재즈 클럽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영예로운 일이라는 그의 음악적 자부심은 뮤지션이었던 아버지-1세대 재즈 피아니스트 故 허병찬으로부터 물려받은 자산 입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음악을 계속하고 경제적으로도 재기하기 위해 방송 출연은 물론이고 작은 공연과 강연, 인터넷 라이브 방송 등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253회

현진영 Go 진영 Go

▶ 아픔을 딛고, 힙합의 전설이 된 소년

90년대 한국에 힙합 열풍을 몰고 온 ‘레전드’ 가수 현진영! 후드 티와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자유롭게 춤을 추는 그의 모습은 파격 자체였고, 젊은이들은 그의 춤과 패션을

따라하며 ‘현진영 Go 진영 Go’를 외쳤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댄서들이 실력을 겨루

던 이태원에서 불과 열여섯에 이수만에게 발탁되어 스무 살에 가요계의 최정상에 올

랐지만, 사실 그가 일찍부터 프로 댄서의 길을 선택한 것은 생계 때문이었다. 중학

생 때 어머니가 오랜 암 투병 끝에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건강마저 악화되면서 가장

아닌 가장이 된 그는, 낮에는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며 밤에는 돈을 벌기 위해 춤을

추었다. 일찍부터 짊어진 삶의 무게가 버거워 십대 때 두 번이나 차가운 한강에 뛰어

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고통은 그를 성장하게 했고, 삶의 경험

들은 그의 음악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에게 가장 큰 인기를 가져다준 <흐린 기억 속

의 그대> 역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서 만들어진 노래였다. 인생의 빛과 그림자

를 일찍부터 겪으며 굽이굽이 헤쳐 온 가수 현진영의 이야기를 <사람이 좋다>에서

만난다.

“되게 프로다웠어요.

제가 살면서 춤을, 내 눈앞에서 턴을 열 세 바퀴를 파박 도는 걸 처음 봤어요.

그래서 와 이 친구 춤을 진짜 잘 춘다 했죠. 무지 열심히 했어요.

진짜 독하게 하긴 했죠. 가정이 어려워서라기보다 자기가 너무 좋아하니까.

자기가 너무 좋아하고, 춤추는 거랑, 그리고 춤만 잘 추고 싶지 않고

노래도 잘하고 싶어서 노래 연습도 많이 하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되게 좋게 봤어요.”

― 가수 구준엽 인터뷰 中

“‘흐린 기억 속에 그대’를 만들고,

그게 사실 너무 운이 좋았는지 나오자마자 1등을 했어요.

2주 만에 1등을 하면서, 삶 자체가 망각으로 바뀌어 버렸어요.

예전에 힘들고 고생했던 것도 다 잊어버리고 그냥 눈 감고 뜨니까

신데렐라가 돼 있었다고 해야 될까? 너무 교만했어요.

나중에 3집 앨범 나와서 그것도 히트를 치고 있는데 또 사고가 난 거죠.

앨범 내고 한 달 만에. 그리고 모든 걸 잃었죠.

돈, 명예,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 아버지와 여동생 빼고 다 잃었던 거죠.

사람도 다 떠나고, 설 무대도 다 없어지고, 방송은 아예 아무 데도 못 나가고.

심지어는 밤업소도 저를 쓰는 데가 없었어요.”

― 현진영 인터뷰 中

▶ 공황장애와 파산까지, 세상에 홀로 남겨진 그를 지켜 준 아내

추락은 한순간이었다. 이십 대 초반에 수차례의 약물 파문으로 현진영의 인기는 물

거품이 됐다. 혹독한 슬럼프를 겪으며 그는 불면증과 우울증, 공황장애까지 앓았다.

그렇게 그가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만난 사람이 지금의 아내 오서운이

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남편이 안쓰럽게 느껴졌다는 아내는 18년째 한결같이 현진

영의 곁을 지켜 주었다. 거듭된 위기에도 아내의 변함없는 지지와 보살핌 속에 현진

영은 차츰 안정을 찾았고, 재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하지만 음악적 재능과

별개로 사업 수완은 부족했는지,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획사를 설립했던 사업에 실

패하면서 그는 또다시 파산이라는 위기를 맞는다. 13년의 만남 끝에 아내와 결혼식

을 올리고 나서 바로 이듬해였다. 인생의 힘든 고비들을 함께 건너온 현진영, 오서

운 부부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사람이 좋다>에서 공개된다.

“처음 만날 때 남편이 되게 안쓰럽고 그랬어요.

모든 사람이 안쓰럽다고 그 사람을 다 그렇게 챙겨 주지는 않아요.

그런데 저희 남편 같은 경우는 어느 날 만나고 나서

헤어지고 남편 혼자 걸어가고 있는데,

세상에 남편 혼자 덩그러니 딱 떨어져 있는 느낌, 그 느낌을 딱 받았어요.

그래서 내가 챙겨 줘야 되겠구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랬던 것 같아요.”

― 아내 오서운 인터뷰 中

“그런데 저희 와이프가 제 악기만 나중에 사줬어요.

압류가 붙은 상황에서 경매가 붙었을 때 돈을 구해서

다시 본인이 경매를 받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악기는 안 빼앗겼죠.

저한테는 소중한 악기죠. 악기가 없으면 음악을 할 수 없는 거잖아요.

물론 가수니까 노래를 해도 되는데,

작곡가이기 때문에 무대에 서지 못 하면 곡을 만들어야 음악을 하는 거라고

와이프도 생각을 하니까,

저게 없으면 이 사람은 양 팔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악기는 찾아 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 현진영 인터뷰 中

▶ 재즈 뮤지션으로 변신한 힙합 전사의 멈추지 않는 도전

후회되는 일들도 아픔도 많았던 삶이지만,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고마운 아내와 함

께하는 지금이 현진영에겐 더욱 소중하다. 소중한 일상을 지키고 경제적으로도 재기

하기 위해 방송 출연, 작은 공연과 강연, 인터넷 라이브 방송 등 가리지 않고 끊임없

이 노력하고 있다. 마흔 일곱이 된 ‘힙합 전사’ 현진영은 요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

다. 재즈힙합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앨범을 발표하고, 그가 십대 때 힙합 댄스를 추

던 이태원에서 재즈 공연을 한다. 대중음악에 비해 수입은 적어도 재즈 클럽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영예로운 일이라는 그의 음악적 자부심은 역시 뮤지션이었던 아버지

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다. 그의 아버지는 1세대 재즈피아니스트 故 허병찬이다. 죽

기 전까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며 무대에 서고 싶다는 현진영에게 아버지라는 큰 산

은 여전히 든든한 지원군이다.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그

리고 자신도 언젠가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바닥을 딛고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

는 가수 현진영의 음악적 열정과 인생 이야기, 사랑하는 아내와 알콩달콩 다투는 귀

여운 일상 속 매력까지 <사람이 좋다>에서 만나 본다.

“제일 행복할 때죠. 무대에서 노래할 때가.

제가 좋아하는 '숨'을 최고로 극대로 쉴 수 있는 공간이잖아요. 무대는.

무대는 그냥 일상적인 생활을 할 때 쉬는 숨으로는 안 되는 데잖아요.

힘껏 들이마시고 힘껏 내뱉어야 사람들이 알아듣는 장소가 무대잖아요.

그때 저는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죠. 나는 살아 있어.

비록 내가 바닥까지 갔을지라도 여기 위에서만큼은 나는 최고야.

내가 살아 있는 곳이야. 그런 생각이 들어요.”

― 현진영 인터뷰 中

“다시 예전의 정상의 인기를 찾을 수 있는 길이 꼭 있을 거예요.

그 기간이 좀 오래 걸리는 것뿐이지. 그만큼 예술적인 가치가 있으니까.

지금 시대에 코드가 조금 안 맞아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해 그런 것뿐이지

언더그라운드 재즈 클럽에서 실력 있는 연주자들과 같이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잖아요.

그게 대중적인 인기를 다시 갑자기 확 끌어내지 못해서 그런 것뿐이지.

그러니까 언젠가는 또 기회가 오면 다시 크게 부각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가수 박남정 인터뷰 中

현진영 프로필

대한민국의 가수 겸 싱어송라이터이다. 그의 아버지는 국내 1세대 재즈 피아니스트인 허병찬이다. 위키백과

출생: 1971년 2월 3일 (현진영 나이 46세), 현진영 고향 서울특별시

배우자: 현진영 부인 오서운 현빈 맞선녀 사진

오서운 몸매

앨범: 현진영 4집(21C New Dance IV)

영화: 신데렐라

부모: 현진영 아버지 허병찬, Im Chun-ja

현진영 본명 허현석

가족 현진영 아버지 허병찬(별세)

현진영 어머니 임춘자(별세)

형제자매 관계는 누이동생 1명

현진영 종교 개신교

현진영 학력[편집]

현진영 리라초등학교 (졸업)

원촌중학교 (졸업)

현진영 키 170cm

현진영 복면가왕 동영상 편지 듣기

현진영 마약

1998년에는 돈이 없어 마약을 못하고 대신 본드흡입을 하다가 구속되었고, 몸무게가 100kg을 넘는 모습으로 나타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7]

2집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후에 현진영 본인이 회고하기로는 자신은 이수만으로부터 한푼도 못받았다고 하는데, 이수만이 마약흡입으로 사고친 자신의 뒷수습까지 해준 걸 감안하면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당시 SM은 현진영이 수익을 낼 시점에 대마초나 필로폰으로 구속되면서 음반과 상품을 모두 폐기시킬 정도로 큰 손해를 보았고 매니저들도 수사를 받으면서 고초를 겪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이현도, 김성재, 신동엽, 김승현, 이홍렬 등이 회사에 미래가 없다고 여겨져 SM를 떠나게 되면서 이수만은 그 당시 수입이 좋았던 월미도와 방배동카페를 팔아서 SM의 부도위기를 겨우 넘기던 절박한 상황이었던지라 현진영 본인으로서도 이런 부분들까지 감안해서 그냥 넘어가려는 듯하다.[8] 2007년 인터뷰에서는 이수만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고 연락도 하고 지낸다고 했으며, 2015년에도 라디오에서 ‘나에게 이수만이란?’이라는 질문에 “아버지”라고 말했다. “한참 말썽을 부릴 때도 나를 콘트롤 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었다. 선생님은 내게 가슴이 뭉클하다. 죄송하다”라고.

현진영 흐린기억속의그대

오서운 프로필

직업 배우, 모델, 기업가

활동 기간 1993년 ~ 현재

오서운 종교 개신교

오서운 학력 동아방송대학 방송연예학과

배우자 오서운 남편 현진영

오서운 자녀 없음

소속사 씨이니쓰 (대표)

오서운 언니 사망

가수 현진영(40)의 처형이자 탤런트 오서운(34)의 언니인 오선미(39)씨가 사망했다.

오씨는 지난 23일 서울 역삼동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집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오씨와 함께 살고 있는 오서운의 어머니이자 현진영의 장모는 사고 당시 외출 중이었다.

현진영 이혼오서운 연관어는 루머 입니다.

1993년 잡지 모델로 첫 데뷔하였고 1995년 KBS 한국방송공사 드라마 《신세대 보고서》로 정식 연기자 데뷔하였으며 이듬해 1996년 연극배우 데뷔하였고 2006년 영화 《신데렐라》의 단역으로 영화배우 데뷔하였다.

한때 지상파 방송 3사 드라마에서 단역 연기자로 활동했던 그녀는 현재 오서운 쇼핑몰 씨이니쓰의 사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배우자는 힙합 랩 댄스 뮤지션 현진영(본명 허현석)이다.

탤런트 오서운 나이 40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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