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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양승훈, 오월의봄, 2019.)

1-1. 독서란 무릇 열린 행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진리를 꿰뚫는 단 하나의 책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한 번의 독서에서 얻은 질문과 답변을 다음 책을 통해 확인하고 검증하며,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허물어뜨리고 다시 세우는 무한한 '과정', 바로 그것에 독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평소 생각이 그래서 그런가,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책(과 영화)들이 많이 생각났다.

1-2. 첫 번째로 언급해야 할 이승문의 영화 '땐뽀걸즈'는 책에서도 충분히 언급하고 있으므로 일단 넘어가자. 두 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책에서는 아주 잠깐 언급하고 지나가는) 조주은의 책 『현대가족이야기』. 나도 읽은지가 하도 오래 돼서 기억은 잘 안 나는데, 대기업 남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구성된 가정의 일상적 측면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 책과 무척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가 다소 거시적인 관점을 택해서 산업도시 거제의 역사와 산업 전반의 흐름, 그리고 향후의 전망까지 넓게 조망하는 것에 반해서 『현대가족이야기』는 좀 더 미시적인 관점에서 대기업 남성 노동자 가정의 일상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는지,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가부장제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재강화되는지를 그야말로 찰싹 들러붙어서 서술한다. 그러니까 이 책에 등장하는 이른바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을 아주 깊게 파헤친 연구라고 하겠다. 2000년대 초반에 나왔기 때문에 이후에 있었던 산업적 변화를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점만 빼고 나면,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와 견줘 읽기에는 가장 좋은 책이다.

1-3. 세 번째는 남화숙의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 조선소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소재적으로 유사하다.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는 조선소의 남성숙련노동자들이 어떻게 노동현장을 장악했는지 그리고 그에 근거하여 노동조합활동을 어떻게 했는가를 다룬다. 책 말미에서는 젠더 질서가 젠더 질서가 어떻게 노동계급과 노동시장에 스며드는지도 살짝 다룬다. 한편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는 노동자의 경험을 어떻게 축적하고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화두를 던지는데 (이 부분은 책 말미에서 제조업의 재도약을 논할 때 상당히 중요하다.) 이건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에서 1960년대 중반에 맥이 끊긴 전투적 노조활동의 경험이 노동자들의 경험 저류에서 면면히 흐르던 끝에 20여년 뒤인 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다시 폭발하는 과정을 서술하는 것과 비슷하다.

1-4. 노동의 과정과 현장에 구체적으로 천착했다는 점은 알프 뤼트케의 일상사 연구를 연상시킨다. 알프 뤼트케는 노동 과정에 대한 노동자의 장악 정도, 노동자의 소속감과 계급의식을 고취시켰던 노동현장에서의 일상적 놀이활동, 같은 효과를 낳은 퇴근 이후의 여가활동 등으로부터 독일노동계급의 특성을 고찰하고, 다시 그로부터 나치시대로 이어지는 연구의 출발을 찾은 바 있다. 비록 시대와 공간은 많이 다르지만 대단히 유사한 접근법처럼 보인다. 예컨대 아래 같은 서술은, 아직 역사학 분야에서는 못 본 듯하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조선산업이 외친 구호 중 하나는 “선각 중심에서 의장 중심으로”였다. 선박을 설계하고 실제 건조할 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배’라는 외형적인 특징이다. 일단 잘 떠야 하고, 충격을 받아 배가 쪼개지는 일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 기본 설계를 할 때도 배를 ‘미끈하게’ 잘 만들면 나머지 일은 부차적인 것에 가까웠다. (…) 그런데 해양플랜트는 그 구조부터 다르다. (…) 다른 말로 하면 ‘복잡도’가 현저하게 높아진 것이다. 예전처럼 틀을 잘 잡고 속을 ‘비우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내부를 빼곡하면서도 어떻게 합리적으로 ‘채우느냐’가 관건이 됐다. (…) 자신감은 공정이 엉켜가고 지연되면서 점차 바닥으로 치닫게 된다. (…) (138~140쪽.)

1-5. 몰락한 산업도시와 노동계급가족의 모습이라는 점에서는 『힐빌리의 노래』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지방도시의 전망을 논한다는 점에서는 마강래의 『지방도시 살생부』와 『지방분권이 지방을 망친다』와도 연결될 것 같다. 하지만 이건 내가 안 읽은 책이므로 제목만 언급하는 선에서 패스. (언제쯤 알라딘 위시리스트에서 빼낼 수 있을랑가...) 그 외에도 조선소라는 배경에서는 박경근의 영화 '철의 꿈'을, 거제라는 배경과 가부장제를 고리로 삼아 팀 피츠의 『소주 클럽』을 엮을 수도 있겠다(...만은,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지로 엮었다 싶다;;).

2-1. 지인의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이 책을 처음 보고는 단박에 마음이 끌렸다. '산업도시 거제'를 관통하는 두 키워드 때문이다. 하나는 '산업'이고 나머지 하나는 '지방'이다. 첫 번째 키워드인 '산업'(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조업' 내지는 '대규모 사업장에 기반한 공업'이 맞을 수도 있겠다)은 일단 내 세부전공과 관련이 있다. 내 관심사를 좀 널럴하게 정의하자면 1950년대 이후 대규모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마도 이것이 현대 한국의 경제성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2019년 현재, '저성장'이니 '4차 산업혁명'이니 '기본소득'이니 하는 말들이 공공연히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전통적인 형태의 성장방식은 한계에 부딪힌 것처럼 보인다. 나는 조선업에 기반한 산업도시 거제가 겪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어쩌면 다른 산업 분야가 가까운 시일 내에 맞이하게 될 우울한 미래를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점에서 조선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꿰뚫는 이 책의 시도가 일단 마음에 들었다. 이런 시도가 나의 공부에도 중요한 통찰을 줄 수 있는 것도 너무 당연하고.

객관적으로 볼 때 2010년대 조선산업에는 호재가 없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경기가 상승하고 ‘중국 경제의 부상→해운 물동량 증가→선박건조량의 증가’로 이어지는 호재가 있었다. (…) 하지만 2008년 경제 위기로 인해 해운 물동량이 줄자 수주량이 급감하고, 조선소들은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일본의 기술력’과 ‘중국의 인건비’ 사이에 끼어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 시절 대형 조선소들이 찾은 ‘기회’는 바로 해양플랜트 수주였다. (…)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과 함께 조선산업계 ‘빅 3’ 중 하나로 불려왔던 대우조선해양(이하 ‘대우조선’)은 2015년부터 위기에 휩싸였다. (…) 부실이 공공연히 드러난 직후, 산업과 경제에 대한 주요한 의사결정을 다루는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는 전운이 감돌았다고 한다. 갑작스럽게 드러난 부실 앞에서 정부는 곧바로 구조조정의 칼날을 잡지 못했다. 중소 조선산업계 전체가 워크아웃, 채권단 자율협약, 법정관리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빅 3 중 하나인 대우조선까지 구조조정이라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 (…) 2차 위기가 도래했다. 최순실 게이트 등으로 정권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와 행정부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산업계의 컨트롤타워를 자임하는 산업자원부, 금융위원회, 산업은행 역시 아무런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여론은 극도로 악화됐다. (…) ‘좀비 기업’을 살리기 위해 세금을 투입해선 안 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 (15~18쪽.)

IMF 사태 이후 한국 경제가 그래도 순항한다고 여겨지던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산업도시 사람들은 수도권 사람들이 지탄하는 대상이 아니었다. 돈을 많이 버니 부럽다는 것 정도가 40~50대 서울 사무직 중간 관리자들의 생각이었다. (…) 그러나 2010년대를 거치며 산업도시 사람들은 ‘상위 10% 귀족노조’로 표상되었다. 부러움은 곧바로 지탄으로 변했다. ‘돈도 많이 버는데 고용도 보장받으려 하고, 심지어 자식들에게까지 일자리를 세습하려는 사람들’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 이제 조선산업이 예전 같지 않고, 바깥의 시선도 부드럽지 않은 상황이다. 조선산업과 결속되어 있는 산업도시 거제의 사람들은 고된 시간 끝에 지금까지 익숙했던 모든 것을 다시 질문해야 하는 시기에 직면했다. (…) (25~27쪽.)

2-2. 두 번째 키워드인 '지방'은 지방 출신이라는 내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고향을 떠난지 벌써 한참이지만 나는 여전히 내 고향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다. 역사공부를 업으로 삼은 이후로 이런 생각이 더 강해졌는데, '지방'(혹은 '지역')이야말로 사람의 삶을 가장 구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단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역사의 단위로 삼곤 하는 '국가'는, 인간사의 거대한 흐름을 담기엔 너무 작고, 개별 인간의 구체적인 삶을 담아내기에는 너무 크다. 개별 인간의 구체적인 삶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지방' 정도로까지는 범위를 좁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날이 쪼그라들어가는 지방도시의 현재를 분석하고, 그로부터 구체적인 해법을 찾는 노력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3-1. 내가 알기로도, 거제나 울산 같은 산업도시는 지방에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특별히 서울 사는 중산층을 부러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곳이었다. (전국에서 현금 보유량과 유동량이 가장 큰 도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것만으로 제 가족 하나 건사하고도 더 남는 것이 있는 도시였다. 물론 몇 차례 위기가 있기는 했지만 그 역시도 언제나 솟아날 구멍은 있었고. '산업도시'는 정말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현실에 구현한 곳이었다. 땀흘려 일하는 것만으로도 먹고 사는 것은 물론이고 삶의 여유까지 얻을 수 있는, 노동계급의 이상향이라고나 할까.

3-2. 산업이 호황을 누리는 이상 자본계급 역시 노동계급과 특별히 각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 이윤 좀 더 남기겠다고 괜히 쟁의나 자극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보다는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최대한의 복지를 제공하여 갈등비용을 줄이고 기술과 경험을 축적시키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였던 모양이다.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라고 할 때 그 '가족'에 사측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산업 사회가 추구하던 최상의 유토피아가 이렇게 이룩된 것이다.

즉 작업복이 지금과 같은 위상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일차적으로 그들의 벌이 때문이다. (…) 물론 조선소 사람들이 단순히 벌이 때문에 작업복에 애착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노동운동의 경험, 1990년대 이후 진행되었던 노무 활동 그리고 기업문화 활동이 역사적으로 축적되면서 자연스레 나타난 결과이기도 하다. (…) 투쟁 경험이 그들을 엮어냈다. 노동자들은 폭력적인 사측과 대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열사 투쟁은 노동자들의 투쟁의 연대의식을 높였다. 노동조합의 조직화 과정과 일터를 찾아 이주한 이방인의 외로움은 노동자들의 결집을 이끌어내는 충분한 동기가 되었다. (…) 1990년대는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대신, 조합원인 개별 노동자들을 ‘울타리 안’으로 진입시키기 위한 활동들이 증가하던 시기였다. (…) 아침 점호와 구보, 두발 검사등의 병영식 ‘통제’를 내세우던 시기를 지나 조금 더 ‘부드러운’ 방식의 ‘관리’가 시작되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였다. (…) 이처럼 ‘대우가족’ ‘현대 가족’ ‘삼성 가족’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 ‘가족’들은 공동체에 대한 노동자들의 생각과 더불어 회사의 적극적인 기업문화 활동을 통해 주조되었다. (…) (61~65쪽.)

3-3. 자, 그렇게 해서 우리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하고 이야기가 끝나면 좋겠지만, 세상이 그렇게 생각처럼 만만할리가 없잖냐. 호황 때는 아무런 문제없이 굴러가는 것 같았던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라는 배는, 2000년대 후반에 몰아닥친 불황의 파도를 만나자 여기저기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평안한 바다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 균열이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4. 균열은 '비정규직'과 '젠더'에 있었다. 안정된 고용과 일정 이상의 소득은 기실 작업장 내의 비정규직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남성숙련노동자에게 집중된 고용과 소득은 여성을 줄곧 종속적인 위치로만 머무르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결국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란 비정규직과 여성을 배제한 위에 세워진 것이었던 것이다. 그 균열 때문에 배가 가라앉고 있는 지금, 산업도시 거제는 더 이상 매력적인 도시가 될 수 없다. 여기서 '세대'의 문제가 다시 겹쳐지는데, 회사건 노동계급이건 집단주의적인 소속감이 없고 대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젊은이들이 굳이 지방에서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해서 '비정규직'과 '젠더'와 '세대'가 상호상승작용을 하며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號의 침몰을 부채질한다.

즉 공부를 목적으로 부산과 수도권으로 떠난 20대 초반 남성들보다 10배 많은 20대 후반~30대 초반 남성들이 거제도에 몰려들었다. 30대 여성의 전입 역시 20대 후반~30대 남성 전입과 함께 추론해볼 수 있다. 30대 여성은 전출보다 전입이 훨씬 많다. 이들은 결혼을 위해 이주한다. (…) 거제시의 남성 고용률은 2017년까지 80% 이상을 기록했다. 이는 전국 평균보다 10% 가까이 높은 수치이다. 반면 여성의 고용률은 45% 이상을 기록한 적이 거의 없다. 전국 평균(50.2%)보다 5% 이상 처진다. 남성은 나가서 돈을 벌고 여성은 전업주부로 지내거나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부업을 하는 전형적인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 경제라고 말할 수 있다. 거제에서 자라 대학에 진학하게 되는 딸들은 보통 스무 살이 되면 떠나는데, 결혼을 하지 않는 이상 거제로 잘 돌아오지 않는다. (…) 문화사회학이나 문화지리학의 연구를 참조해보면, 여성들이 대도시 생활을 지향한다는 것은 정설에 가깝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히 문화생활 또는 여가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어쩌면 여성 혐오를 부추기는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거제가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괜찮은 정규직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한 도시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취업 자체를 꺼린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적극적인 해석일 것이다(2부에서는 이들 중 여성 엔지니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또한 예전처럼 남편의 벌이 하나만을 믿고 가계를 꾸려나가기에는 조선산업의 사정이 어려워졌다. (…) (85~87쪽.)

앞서 정규직을 중심으로 형성된 ‘중공업 가족’과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정상가족’ 신화는 사실상 호황기에 하청 노동자 가족을 하위주체subaltern로 만들면서 이룩되었다. 쉽게 말해 소득 격차를 만들고 하청 노동자들과 그 가족을 은연중에 배제하고 발언권을 박탈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비슷비슷한 벌이로 소비 생활을 이어가던 중산층 노동계급 가족은 수적으로 그 두 배 이상으로 추정되는 하청 노동자들과 한편으로는 현장에서의 위세로, 다른 한 편으로는 중소 도시 내부의 좁은 사회에서 은연중에 발생하는 차별을 통해 구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101쪽.)

‘중공업 가족 프로젝트’는 애초에 배제와 포섭을 전제로 한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는 거제로 이주한 정규직(사무직/생산직)들이 회사 공동체의 이름으로 가족을 형성함으로써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극복하고, 결혼과 출산을 통해 직계 가족을 구성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하지만 중공업 가족은 하청 노동자들을 배제했고, 여성들과 딸들의 공간을 결혼 생활의 영역에 한정 지었다. 무엇보다도 중공업 가족은 그들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젊은 세대들에게 그 약점을 남김없이 드러냈다. (…) 노동자들의 ‘단순한 삶’은 나름대로 예찬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으나, 가족 안에 머무르기를 꺼리는 이들에게 그것은 한낱 보수적인 삶의 형태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산업의 경기가 위축되면서 중공업 가족 내부의 모순과 긴장들이 본격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113~114쪽.)

5. 문제에 대한 해법이 이러한 통찰에서부터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책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있다만은, 가장 와닿았던 제안은 '젠더 친화적인 도시'가 될 것을 주문한 것이었다. 어떤 지방 도시를 살리는 것이 단지 큰 회사나 기업을 유치하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얻은 통찰을 통해 말하자면, 그런 식의 해법은 여전히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재현해보겠다는 것에 불과한 듯 하다. 아마도 그것은, 성과 세대에 관계 없이 일단 '살고 싶은', 굳이 대처로 나가지 않아도 내 삶을 꾸릴 수 있는, 다시 말해 '중공업 가족만 아닌 모두에게 가능성이 열린 유토피아'를 만들라는 뜻일테다.

선택지는 생각보다 단순할 수 있다. 무엇을 본업으로 삼아 주력해나갈 것인지를 질문해보면 된다. 조선산업과의 긴밀한 관계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이제 그만 단절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제조업 도시를 어떻게 진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부산이나 창원과 연결해 산학연계를 강화하고 제조업 간 클러스터를 촘촘하게 조직해야 한다. (…) 앞으로 거제시는 조선해양 관련 벤처 스타트업의 관점, 그리고 중소 기자재업체 등의 관점을 채택해 산학연계를 강화하는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의 ‘밋업’처럼 젊은 중소 조선해양 기자재업체들이 격식 없이 모여 의견을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정례화하는 것이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산업도시의 ‘현장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젠더 의식을 훨씬 더 향상시켜야 한다. 기존의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 여성 엔지니어들이 거제로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을 확장해야 하며, 거제를 젊은 여성들이 일하며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 것을 중요한 정책 의제로 삼아야 한다. (…) 결국 사람들의 리듬이 바뀌어야만 도시도 변화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지방 정부가 조금이라도 여력이 있을 때 노동자들이 인접 산업에 다시 취업하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308~310쪽.)

6. 이렇게 얻은 잠정결론을 조선업의 도시 거제에만 국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조선업 이외의 산업, 그리고 거제 이외의 도시에도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하겠다. 산업구조의 전환과 지방도시의 위축에 대한 나의 걱정을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필터로 삼아 걸러내고 나니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그 산업/도시(은)는 얼마나 일하고 싶은 산업/도시인가요?"

교정. (얼마 전에 2쇄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래의 오탈자는 1쇄 기준이다.)

70쪽 3줄 : 아주동나 -> 아주동이나

121쪽 각주4번 : 배성만 -> 배석만

215쪽 1줄 : 거닐고 (‘거닐고’는 ‘거닐다’의 활용형이다. ‘거닐다’는 '가까운 거리를 이리저리 한가로이 걷다’는 뜻이므로 이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262쪽 13줄 : 공 정 진행비 -> 공정진행비

from http://doggun.tistory.com/608 by cc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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