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침몰하는 대한민국] 4. 침몰하는 한국언론

글모음/정세분석

[침몰하는 대한민국] 4. 침몰하는 한국언론

ⓒ한겨레21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각계에서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무능과 부패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세월호 사건은 무능한 관료집단과, 눈치만 보는 정치권, 이윤에 눈이 먼 자본 등 한국사회의 추악한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미 많은 국민들은 이러한 총체적 부실의 책임을 정부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묻고 있다.

이러한 국난의 가운데에서도 정부와 대통령을 미화하는 보도를 쏟아내고, 각종 오보를 양산하고 있으며, 비윤리적인 취재로 가족들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주고 있는 한국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정상적인 나라의 언론이라면 국가 재난 상황에서 정확한 사실을 보도함으로써 추가적인 피해를 방지하고, 정부를 감시함으로써 구조작업에 속도를 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현실은 어떠한가.

가족들은 진실을 외면한 기자들의 수첩과 휴대폰을 빼앗아 바다에 던져버렸으며, 네티즌들은 기자를 쓰레기라고 부르는 말들을 공공연하게 쓰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들의 분노를 아는 지, 모르는 지 주류언론에서는 여전히 ‘박비어천가’ 부르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것이 한국 언론의 현주소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언론으로서의 사명을 포기한 공영방송과 보수족벌언론

한국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언론이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부터 정부차원의 프로젝트로 추진된 ‘언론장악’은 공영방송에 낙하산 사장을 내려 보내고, 보수족벌언론에 TV종합편성채널을 승인해 줌으로써 완성되었다. 언론장악에 맞섰던 정의로운 기자들은 해고되거나 한직으로 쫓겨났다.

기자로서의 양심을 팔고 언론권력을 손에 쥔 자들이 장악한 공영방송과 종편에서는 연일 박근혜 대통령을 미화하고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4월 17일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 현장에 방문했을 당시 언론은 격렬하게 항의하는 실종자 가족들의 목소리는 삭제한 채 방송하는 한편, 어린이 생존자를 안아주는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만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태도는 4월 24일 분향소가 열리기도 전에 가족들의 접근을 통제하며 이루어진 대통령의 조문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방송에는 대통령의 방문에 격하게 항의하는 유족의 목소리는 삭제되고, 정체불명의 할머니와 포옹하는 장면만이 보도되었다.

또한 연합뉴스 등에서는 미흡하기 짝이 없는 정부의 구조작전을 ‘사상 최대 규모의 구조’라며 치켜세웠으며, TV조선은 사고 수습 와중에 난데없이 ‘대참사에도 박 대통령 지지율 견고한 이유’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방송에 나온 편집장이라는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 현장에 나가서 수습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였고 상당히 인상적이었다”면서 “이번 참사에 대한 의견이 아직 여론조사에 덜 반영됐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런 보도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게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한편 언론들은 이번 사건에서 구조에 실패한 정부의 무능보다, 선장과 해운업체의 일탈에 주목하는 기사들을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선장과 일개 해운업체를 악당으로 만드는 프레임은 결국 이번 사건이 개별적이고 돌발적인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끊임없이 다른 데로 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선장 개인의 일탈에서 청해진 해운과 세모그룹의 비리로, 또 오대양 사건과 구원파 같은 종교문제로 초점을 옮겨가며 계속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 직속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언론의 세월호 관련 의혹을 통제하는 내부 문건을 배포한 것으로 밝혀져 이번 사건에서도 ‘언론장악’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 문건은 방통위가 정부의 기준으로 언론 보도 등을 모니터링하고 통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언론장악’이 이미 정부기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대량오보 사태가 보여준 저널리즘의 실종

재난보도에서 한국 언론이 보여준 부끄러운 민낯은 비단 세월호 사건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비슷한 해난사고였던 1993년 ‘서해 페리호 사건’에서도 언론은 배 안에서 순직한 선장이 혼자 탈출한 것으로 보도해 유족들을 비롯한 내외의 공분을 샀다. 당시 검경은 선장생존설을 유포한 언론의 기사만 믿고 선장에게 지명수배를 내리고 주변 도서에 대한 수색작전을 펼쳤다.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가 유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 것이다.

21년이 지난 이번 사건에서도 언론의 무책임한 오보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사건 초기 최악의 오보는 ‘전원 구조’ 보도였다. 이는 사건 당일인 4월 16일 오전 경기도 교육청이 출입기자들에게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탑승자 수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충분히 의심의 여지가 있는 정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속보를 내보내며 받아쓰기에 바빴다.

또한 사고발생 3일 차인 18일 KBS에서는 구조 당국의 말을 인용하면서 “선내 엉켜있는 시신 다수 확인”이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오보 직후 사고대책본부 브리핑에서 해경은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KBS는 정확성에 보다 비중을 두고 보도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재난주관방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상업언론과 마찬가지로 자극적인 기사를 통해 시청률을 높이는 데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같은 날 YTN에서도 “선체 진입 성공” 기사를 내보냈으나, 이 역시 오보로 밝혀졌다. YTN은 전날에도 “선체 공기주입 시작” 오보를 내보내 구조에 희망을 품고 있던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들의 비난을 받았다. 또, 이 날 MBN에서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민간인 잠수사 홍 모씨의 인터뷰를 내보내 보도국장이 정식으로 사과를 하기도 했다.

재난보도가 처음도 아닌데, 왜 이처럼 한심한 오보들이 계속되는 것일까. 이러한 오보는 기본적으로 정부에서 정확한 재난 정보를 종합하고 있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지만 한국의 후진적인 언론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원인분석과 심층보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외국과 달리, 한국의 재난보도 시스템은 속보 중심의 보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속보경쟁체제에서는 사실 확인보다 빠른 특종보도가 우선하기 마련이며, 자극적이고 주관적인 보도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MBC

패륜보도 ‘기레기’는 왜 나타날 수 밖에 없는가

세월호 사건에서 막말로 지탄을 받은 것은 정치인들만이 아니다. 도를 넘어선 취재경쟁을 벌이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기자들은 ‘기레기’(기자+쓰레기)라 불리며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JTBC의 박진규 앵커는 16일 뉴스특보에서 구조된 단원고 학생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친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고 있느냐고 물어 논란을 빚었다. 또한 MBC는 뉴스에서 세월호와 세월호 탑승객의 보험 금액에 대한 보도를 해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이투데이라는 인터넷 언론사는 “타이타닉·포세이돈 등 선박사고 다룬 영화는?”이라는 기사와 “[진도여객선 침몰] SKT, 긴급 구호품 제공·임시국 증설. ‘잘 생겼다 잘 생겼다~’”라는 선정적·상업적인 기사를 올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일부 기자들은 자극적인 기사거리를 찾기 위해 단원고에 들어가 취재를 하다 학생들에게 비난을 받았으며, 인터넷 뉴스통신사 뉴시스는 피해학생의 일기장 사진을 공개해 무단으로 서랍을 뒤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기자들의 부도덕한 취재경쟁과 언론사의 자극적인 제목 선정의 사례는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정부나 해운업체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언론 역시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것이다. 기자들은 언론사로부터 취재와 보도과정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전달받지 못하고 있고, 특종에 대한 부담감으로 과도한 취재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언론사들도 마찬가지다. 언론사의 수입구조가 기업 광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기사의 인터넷 노출 횟수가 언론의 영향력을 대변하는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

ⓒ뉴시스

언론이 바로서야 나라가 선다? 나라가 바로서야 언론이 선다!

물론 한국의 언론 윤리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 구조작업이 진행 중이고 피해자가 존재하는 재난보도는 다른 기사에 비해 더 큰 보도윤리가 필요한 영역이다. 사실 재난보도에 있어서 기자들이 지켜야 할 가이드 라인은 이미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때 논의된 바 있다. 그러나 △정확한 보도를 우선할 것, △선정적 어휘 사용을 자제할 것, △피해 상황의 반복 전달보다 추가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보도에 주력할 것, △피해자와 유족들을 안정시키고 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을 보호할 것, △피해생존 청소년과 아동에 대한 취재를 제한할 것, △피해 생존자 근접촬영 화면 사용을 자제할 것 등의 내용을 담은 “재난보도준칙”은 세월호 사건 앞에 무색해진 채로 여전히 뒷전에 물러나 있다.

그러나 개별 언론인들의 자성 보다 중요한 것은 언론 일반을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인 환경을 바꾸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이래로 한국의 주류언론은 정부와 여당의 나팔수로 전락했다. 한국의 주류언론이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기자들의 언론 윤리가 실종된 것에만 있지 않다. 주류언론들은 이미 언론장악의 피해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야합세력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한국의 주류언론들은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언론의 역할을 포기해버렸다.

이들에게 언론이란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기자정신에 입각해 진실만을 보도하는 사회의 공기가 아니라 기득권 세력과 특정 정파의 사유물에 불과하다. 주류 언론에 대한 국민적인 불신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만큼이나 뿌리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을 통해 국민들의 언론에 대한 실망은 체념을 넘어 분노로 표출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언론개혁은 이처럼 단단하게 야합한 정-언 유착의 본질을 파헤치고, 그 어둠의 고리를 끊어내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from http://newssh.tistory.com/1378 by ccl(A)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