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책글귀: 한국의 퍼스트레이디-2

당신을 위한 곰돌이풉 곰돌이풉 2017.10.03 06:00

data-matched-content-rows-num="3" data-matched-content-columns-num="3"

※이 글은, 책 '한국의 퍼스트레이디'를 보고 그 글귀를 적은 포스팅입니다.

p.97

육영수(1925.11.29~1974.8.15). 대한민국 제 5,6,7,8대 퍼스트레이디. 1950.12.12. 대구 계산동 성당에서 결혼했다. 주례는 대구시장, 허억. 육영수 아버지 육종관은 만석꾼이었으나 사윗감이 전쟁터의 군인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반대하고 결혼식에 불참했다. 육영수는 친정도움도 못받고 힘든 결혼생활을 한 것이다. 1965년부터 나환자(한센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나환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육영수가 가장 많이 신경을 썼던 일 중 하나는 자녀들이 대통령 자식이라는 특권의식이나 우월감을 갖지 않도록 했다. (저승에서 최순실게이트 건을 본다면 대성통곡을 할 것이다. 아니라면, 이 이야기는 거짓일 것이다.)둘째딸 근영은 서울음대졸업, 박대통령이 새마을노래 나의 조국을 작사작곡할 때 옆에서 돕기도 했다.

홍기(최규하)(1916.3.3~2004.7.20). 대한민국 제3대 퍼스트레이디. 홍여사는 한학자 아버지 홍병순씨와 어머니 안동권씨 사이에서 3녀 중 맏딸로 태어났다. 한학자 집안이라 홍여사는 정규교육기관은 다니지 않았다. 대신 집안에서 한문, 교양 등 한국여인이 갖춰야 할 점을 배웠다. 홍여사의 일생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남편 최규하가 유학생에서 국가최고통치자의 자리까지 남편이 승승장구 출세가도를 달리는 엘리트 공직자임에도 잡음 한번 없이 한평생 자제하는 내조자의 모습을 지켰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기 전까지 집안, 살림 모두 자신의 손으로 해결했다. 홍여사는 유교학문을 익히다가 정혼한 이후부터는 남편을 위해 가정을 위해 살아왔던 전통적인 한국여인의 부덕(婦德)을 지닌 전형적인 현모양처 퍼스트레이디였다.

p.151

이순자(전두환)(1939.3.24~). 제 11, 12대 퍼스트레이디. 피부가 가무잡잡하고 얼굴이 이뻐서 학생때 별명이 필리핀공주였다. 이화여대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당시 이대는 기혼자 입학과 재학을 불허했는데, 전두환과 결혼하기 위해 이대를 중퇴하고 1959년 대구에서 결혼했다. 당시 이순자 20세, 전두환 28세였다. 전두환, 이순자. 이 부부의 좌우명은 가까운 사람한테 최선을 다해서 잘해주자였다. 이 때문에 여러 사건이 터졌다.

by 곰돌이풉

data-matched-content-rows-num="3" data-matched-content-columns-num="3"

from http://gomdoripoob.tistory.com/140 by ccl(A)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