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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사망사고, 중앙선 침범 모닝 자동차 사진 "미국 최악의 항공 사고...

구례 사망사고, 중앙선 침범 모닝 자동차 사진 "미국 최악의 항공 사고 PSA 182편 충돌" 원인

구례 사망사고

구례 사망사고, 가로수 들이받은 모닝 '처참'

구례 사망사고가 발생했습니다.

11일 전남 구례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16분께 전남 구례군 용방면 도로에서 A(74·여)씨가 몰던 모닝 승용차가 가로수를 들이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동승한 B(75·여)씨와 C(79·여)씨가 숨졌고 A씨 등 3명이 다쳐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한마을에 사는 주민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은 사고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가로수를 받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항공기 공중충돌이란 말 그대로 하늘을 나는 두대의 비행기가 서로 충돌하는 것을 말한다. (583명이 사망한 최악의 항공사고인 테네리페 참사는 지상충돌에 속함.)

항공기 기체 자체가 기본적으로 수십톤이 나가는 데다가 속도도 매우 빠르기 때문에, 공중충돌이 발생하면 대부분의 경우 기체가 조종 불능이 되거나 공중분해가 되어 추락한다. 가장 끔찍한 항공사고 유형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았던 과거에는 관제사의 실수나 조종사의 과실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TCAS(공중충돌 방지장치) 등이 개발된 덕분에 여객기끼리 충돌해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공중충돌사고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소형 비행기나 헬리콥터 사이에서는 간간히 일어나는 편이다. 요즘에는 공중충돌 방지장치(TCAS)를 끄거나 무시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세스나기 항공 사고 두 기체 탑승자 176명 전원 사망

5. PSA 182편 공중충돌 사고, 1978년 9월 25일

세스나기 조종사들이 비행계획을 어기고 비행하다가 PSA 182편과 충돌했다. 관제사는 충돌 10여초 전 충돌경보를 받았지만, 이전에도 제멋대로 울렸던 경보라 이를 무시했다.

사망자 144명 (두 기체 탑승자 137명 전원사망, 지상에서 7명 사망)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 1978년 9월 25일

유형 공중충돌

발생 위치 샌디에이고

탑승인원 PSA 탑승객 : 128명 승무원 7명 세스나 탑승객: 2명

사망자 지상 7명 포함 144명 사망

기종 Boeing 727-214

항공사 퍼시픽 사우스 웨스트 항공

기체 등록번호 N533PS

출발지 새크라멘토 국제공항

도착지 샌디에이고 국제공항

충돌 직후 촬영된 PSA 182편

1. 두 비행기

2. 182편은 왜 세스나를 보지 못했나?

3. 세스나는 왜 182편을 보지 못했나?

4. 충돌

5. 피할수 있었나?

6. 사고 이후

7. 추모

1. 두 비행기[편집]

1978년 9월 25일, 퍼시픽 사우스 웨스트 항공(PSA)182편이 새크라멘토 국제공항에서 이륙해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을 거쳐 샌디에이고 국제공항으로 갈 예정이었다. 128명의 승객과 7명의 승무원이 탑승했다. 기장은 42세의 제임스 멜페론으로 비행경력은 17년이었고 그날 2번째 비행중이었다. 부기장은 로버트 E.폭스로 38세에 비행경력은 9년이었고, 기장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항공 관제사는 44세의 마틴J 웨인이었다.

세스나 172기에는 마틴 B.카지 2세와 데이비드 보스웰이 타고 있었다. 그날은 카지가 보스웰에게 ILS 착륙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세스나 172는 몽고메리 필드 공항에서 이륙해 VFR을 따라 비행중이었는데 이는 비행계획과 맞지 않았다.

2. 182편은 왜 세스나를 보지 못했나?[편집]

당시 9시경, 제임스 멜페론 기장이 관제탑에게서 12시 방향에 세스나기가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하지만 당시 주거지역을 비행중이었고, 제트기인 182편은 세스나기를 잘 볼 수 없었다. 거기다 기장과 부기장은 계기판을 더 잘보기 위해 의자까지 낮춘 상태였고, 세스나기가 노란색으로 칠해졌었는데 주거지역의 지붕들도 노란색이어서 잘 안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충돌 170~90초전, 세스나기는 182편의 조종석 위치에서 바라볼때 조종실 와이퍼에 가려진 상태였다.

결국 멜페른 기장은 세스나기가 이미 지나갔다고 착각했고, 착륙지시를 받은뒤 세스나가 지나간게 확실한지에 대한 대화가 오고 갔지만 다들 세스나기가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세스나기는 182편의 바로 아래에 있었다.

3. 세스나는 왜 182편을 보지 못했나?[편집]

당시 세스나기의 보스웰은 훈련을 위해 훈련용 후드[1]을 쓰고 있었다. 거기다가 182편을 보려고 뒤를 돌아본다고 해도 날개를 비롯한 동체에 가려져서 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4. 충돌[편집]

관제소에서는 근처에 세스나기가 비행중임을 확인하고 182편에 경고했었다. 182편은 세스나기를 육안으로 잠시 확인했지만 1분정도 후에 놓치게 된다.

이에 182편에서 관제소에게 "I think he's passed off to our right" 라고 교신했으나, 이후 교신 내용을 보면 관제소에서는 182편 승무원이 직접 세스나기가 지나가는 걸 확인 한 것으로 이해한 듯 하다.

충돌 40초 전에는 다음과 같은 교신이 오갔다.

40초 전 관제소에서 기장에게 PSA 182편, 착륙해도 좋습니다.

39초 전 기장이 관제소에게182편, 착륙하겠습니다.

36초 전 부기장 세스나기는 지나간거죠?

35초 전 항공기관사 그랬겠죠. (Supposed to be.)

34초 전 기장 아마도... (I Guess)

28초 전 기장 그래, 우리가 아까 아래로 틀기 전에 1시 방향에 있었으니까 지금쯤 우리 뒤에 있겠지.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충돌 19초전 관제사는 충돌 경보를 들었지만 이전에도 충돌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툭하면 울리던 경고라 무시했고, 이를 기장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결국 182편이 세스나기를 790m 상공에서 오른쪽 날개로 들이받고 샌디에이고에 굉음이 울려퍼졌다. 세스나기는 충돌 후 불타면서 추락했고, 채널 39의 카메라맨 스티브 하웰이 이를 촬영했다.

PSA 182편은 충돌 당시 충격으로 오른쪽 날개가 부서져 연로통이 깨지고 불이 붙었다. 기장과 부기장이 기체를 진정시키려 애썼으나 결국 실패하고 "엄마 사랑해요.(Ma, I love ya.)"란 말을 남기고는 주거지역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지상에서는 7명의 사망자와 9명의 중상자를 내고 가구 22채가 무너졌으며 기내 탑승객과 승무원은 전원 사망했다.

아메리칸 항공 191편 추락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한 항공사고였다.

5. 피할수 있었나?[편집]

당시 세스나기는 90도 선회가 아닌 70도 선회를 하고 있었는데 이때 90도 선회를 지시받았다면 거의 300m 차이로 충돌을 면할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6. 사고 이후[편집]

이 사고를 계기로 TCAS가 연구되었고 세리토스 상공 공중 충돌 사고이후 모든 비행기에 설치되었다.

히스토리 채널은 이 사고를 이유로 2010년 7윌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 10곳중 한곳으로 샌디에이고 국제공항을 뽑았다.

테네리페 참사에서 살아남았던 캘리 도트라는 생존자는 182편의 티켓을 끊었으나 취소했던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7. 추모[편집]

샌디에이고 항공 박물관에 추모비가 설치되었고, 사고 20주기떄는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묘목과 명판이 설치되었다.

2008년 9월에는 유가족 30여명이 드와이트&나일 거리의 노스 공원에 모여 추모 30주기 행사를 지냈다.

출처 - https://namu.wiki

서프라이즈 788회 방송일2017-10-29

<< Extreme Surprise >>

Ⅰ. 최악의 사고

1978년 미국, 어린 아들과 함께 자신의 차에 오르는 여자. 그런데 잠시 뒤, 무언가가 그녀의 차 위로 떨어지는데… 충격적이게도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미 항공 역사상 최악의 사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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