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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쿱] 안돼요! 저에겐 토끼 같은 남편과 자식이 있어요! #14

수 없이 많은 별이 통속에 담겨

안돼요! 저에겐 토끼 같은 남편과 자식이 있어요!

생수통 씀

#14

어? 이 가족은 또 어떤 가족이죠? 집이 낯선걸요?

암막 커튼이 굳게 쳐진 안방을 비추는 카메라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익숙한 노랫소리가 크게 울리고 누군가가 곡소리를 내었다. 으응, 그래그래.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곧이어 침대맡에 있는 작은 무드등이 켜졌다. 뒷머리에 까치집을 만든 승철이 목 근처가 잔뜩 늘어진 검은색 반팔티를 입은 체 침대 헤드에 기대앉아 지승이를 달랬다. 배고픈가? 승철이 작게 중얼거리곤 제 옆에서 곤히 자는 지훈의 뒤통수를 흘깃 쳐다봤다.

제멋대로 염색을 해서 푸석푸석해진 지훈의 머리칼이 제멋대로 뻗어있었다. 잠에서 벗어날 기미가 안 보이는 지훈을 침대에 두고 지승이만 품에 안고 안방을 나섰다. 벌써 해가 중천이었다. 승철의 품이 편했는지 칭얼거림은 줄어들었지만, 누굴 닮았는지 밥때를 꼬박꼬박 챙겨줘야 하는 지승이라 배가 안 고플 리 없었다. 이미 되어있어서 덥히기만 하면 되는 간편 이유식을 냉장실에서 꺼내 전자레인지에 집어넣었다. 아침에 이유식을 못 해주는 상황에 애용하는 간편 음식이었다.

"최이지승, 아-해."

"아아아-"

지승이가 작은 입을 한껏 벌리자 주황색의 작은 숟가락이 입안에 들어갔다가 금방 빠져나왔다. 이 몇 개가 났지만 오물오물거리는 입이 완전히 다 성장한 것은 아니라 입가에 주르륵 흘리기 일쑤였다. 승철이 휴지로 입가를 닦아주고 다시 이유식을 먹이길 몇 번 반복하자 지훈이 안방에서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일찍 일어났네? 더 안 자도 괜찮아? 승철이 물었지만 지훈은 단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훈이 물을 마시려 부엌을 헤매자 제 시야에 지훈이가 잡혔는지 지승이가 꺄르륵, 웃었다. 마시던 물컵을 내려두고 작은 밥풀이 몇 개 붙어있는 볼에 쪽, 입을 맞추는 지훈이다.

"지승이 잘 잤어?"

"야. 나는."

승철이 입을 뾱 내밀며 저는 왜 안 해주냐며 시위하자 지훈이 지승이의 눈을 손바닥으로 가리곤 승철의 입술에 제 입술을 비볐다. 짧게 쪽,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떨어졌다. 지훈은 승철의 손에 들려있는 지승이의 밥공기를 뺏어 들었다.

"우리 간만에 아침밥 먹을까요?"

"지금 아침 아니거든?"

"...아점?"

"점심!"

"그래요. 점심."

지훈이 승철을 대신해 지승이의 이유식을 먹이기 시작했다. 금방 배가 불러오는지 지승이의 씹는 속도는 조금씩 느려졌다. 지훈이 그런 지승이의 입가를 손수건으로 깨끗하게 다시금 닦아주고는 바닥으로 내려줬다. 빵빵한 배를 지닌 지승이가 만족한 듯 이곳저곳을 뽈뽈 거리며 힘차게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지승이 기분 좋아졌네?"

"아부뷰!"

"지승이 이유식 저거 한 팩을 다 먹었다니까? 내가 해준 건 맨날 남기더니."

"내가 해준 건 잘만 먹던데요."

".. 너 오늘 굶어."

승철이 볼을 한껏 부풀리곤 싫은 소리를 내며 꿍얼거렸다. 지승이가 먹은 흔적을 치우려는 듯 고무장갑을 꼈다. 그래, 지승이는 너만 좋아하고. 얼굴도 비슷한 사람끼리 노세요. 물이 시원하게 켜지고 지훈이 피식 웃었다. 지승이에겐 질투하지 못하니 괜한 불똥이 지훈에게 튄 일이 한두 번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지훈이 식탁의자에서 조용히 일어나 구석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지승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곤 승철의 곁에 다가가 괜히 바쁜 척 신경 안 쓰는 척 하느냐 바쁜 승철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아아, 왜에에……! 흐하하핳!"

저를 돌아볼 때까지 승철의 어깨를 계속 두드리던 지훈의 손길에 짜증을 내며 뒤를 돌아보자마자, 승철의 입꼬리가 멈추지 않고 상승하다 결국 열심히 참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꼭 데칼코마니처럼 똑 닮은 지승이와 지훈이 얼굴을 맞댄 체 승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훈을 꼭 닮은 지승이가 승철을 향해 팔을 뻗자 승철이 고무장갑을 벗고 지승이를 품에 안았다. 그러자 지훈도 팔을 승철을 향해 쭉 뻗었다. 승철이 피식 웃더니 지훈도 한 품에 가득 안아주었다.

"으휴. 애를 둘 키우는 기분이네."

승철이 지훈의 볼에 쪽, 지승이의 볼에 쪽 입을 맞추고선 지승이는 지훈의 품에 안기곤 승철은 고무장갑을 찾아 끼려 했다. 지훈은 지승이를 다시 승철의 품에 돌려주고 고무장갑을 뺏어 손에 끼웠다. 뾰족뾰족 고슴도치처럼 제멋대로 삐죽이는 머리칼 밑에는 살포시 웃는 표정이 있었다. 편한 옷을 입고 저를 위해 웃는 얼굴이, 연애할 때와는 다른 느낌에 가슴 한편이 저렸다. 그럼 깨끗이 씻어줘! 승철이 지승이의 엉덩이를 받쳐 들었다. 다른 대답 없이 지훈은 어깨를 으쓱였다.

소파에 편히 누운 승철의 배 위에 지승이가 공갈 젖꼭지를 빨며 누워있고, 그 옆에는 바닥에 앉아 햇빛에 뽀송뽀송하게 잘 마른빨래를 접는 지훈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둘의 생활 흐름이 겹치는 건 연애 이후로는 오랜만이었다. 지승이의 고롱고롱 숨소리가, 크지 않은 티비 소리가, 지훈의 헛기침 소리가, 거실에 들어오는 노을빛이, 모두 평화로웠다.

햇빛에 말랑말랑 반건조 되고 있던 승철이 시계를 흘깃 보았다. 어느새 지승이의 저녁 시간이었다. 승철이 곡소리를 내며 꼬물거렸다. 지훈도 때마침 곱게 잘 접은 수건들을 한쪽으로 몰아놓고 바닥에 축 늘어졌다.

"후나. 가위바위보 해서 지승이 이유식 끓이기."

"받고, 빨래 정리까지."

승철의 제안에 살을 덧붙이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지훈에 승철의 눈에 묘한 불꽃이 보였다. 승철이 지승이를 일으켜 소파에 앉히곤 저도 그 옆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빨래 받고, 설거지까지."

"콜!"

둘 다 모든 모습이 방송에 나오는 것을 까먹은 체로 승부욕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법 긴장한 표정으로 시선을 교차했다. 지승이는 그런 모습이 익숙한지 소파에 예쁘게 앉아 둘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승철이 저는 가위를 낼 거라며 지훈을 도발했지만, 지훈은 자기가 낼 것은 비밀이라며 승철의 계획에 속지 않았다.

"안 내, 안 내, 안 내면 진 거!"

"가위, 바위, 보!"

으아악! 승철과 지훈이 동시에 소리를 질러 누구의 비명소리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둘의 표정과 동작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승철이 바닥에 쓰러져 앓는 소리를 냈고 지훈은 방방 뛰며 박수를 치다 바닥에 널브러진 승철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승철은 바닥을 기어가 소파에 얌전히 앉아있던 지승이를 껴안으며 우는 소리를 냈다. 지훈은 빨리하라며 승철의 등을 아프지 않게 때렸다.

"후나…! 삼세판…."

"우리 집에 삼세판이 어딨어요."

그대신 빨래는 제가 정리할게요. 선심 쓰듯이 말하지 마! 승철이 저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예쁜 표정으로 지훈에게 삼세판을 요구했지만, 지훈은 받아주지 않았다. 승철은 보란 듯이 벌떡 일어나 부엌을 향해 쿵쿵거리며 걸어갔다. 지훈은 그런 승철은 피식 보고선 지승이의 옥수수 알갱이같이 조그마한 발에 쪽쪽 입을 맞췄다. 꼬수운 베이비 파우더 냄새가 솔솔 났다.

이젠 더이상 구경거리가 없어서 지루한지 지승이가 높지 않은 소파에서 꼬물거리며 뒤로 다리를 뻗어 내려오더니 소파를 짚고 벌떡 일어나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다. 한 손에 수건을 잡아 들던 지훈이 지승이의 뒤를 쫓았다. 보행기가 없으면 불안한 걸음걸이 때문이었다.

"공주님 어디로 행차하시려고요."

"우우웅!"

지승이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귀찮게 하지 말라는 신호 같았다. 지훈이 피식 웃으며 조용히 지승이의 뒤를 쫓았다.

지승이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거실 구석에 있는 작은 텐트 앞이었다. 그 텐트는 VJ가 고정식 카메라로는 담기 힘든 장면들을 찍는 곳인데, 지승이가 그동안 안 보이던 새로운 것이라 그런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뽈뽈 거리며 구경했다. 그러다 엉덩방아를 콩 찧기도 했지만, 곧잘 일어났다.

"아뱌!"

"응? 그거는 카메라-"

지승이가 뒤에 앉아 있던 지훈을 보더니 무언가를 작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검은색의 카메라였다. 지승이가 지훈의 대답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갸웃 이며 카메라의 렌즈와 VJ를 반복해서 보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고개도 꺾어보고 고사리손으로 렌즈와 렌즈 주변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지훈은 지승이를 조금 떨어트려 놓았다. 하지만 그것에 굴하지 않은 지승이는 그 앞에 털썩 자리 잡고 앉아 카메라 렌즈를 뚫어지라 보기 시작했다. 밥 시간대가 넘었는데도 칭얼거리지 않았다.

승철이 조금 늦어진 지승이의 밥 시간에 조급해 있다가 거실 한 쪽에 가만히 앉아 있는 동글동글한 지승이의 뒤통수에 한시름 놓았다. 지훈은 그사이에 부지런히 움직여 적지 않았던 수건과 옷가지들을 후다닥 정리했다.

이유식을 미니 선풍기 바람에 식힐 동안 승철이 부엌에서 나와 지승이에게 향했다. 계속해서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지승이에게 승철이 말을 건넸다.

"지승아. 카메라 앞에서 이런 거 하는 거야. 뽀뽀- 예쁜 짓- 사랑해요-."

승철이 카메라를 보며 차례로 입술을 모으고, 볼에 집게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 우리 지승이 잘하잖아. 승철이 지승이의 볼을 집게손가락으로 콕 찌르자, 지승이가 승철을 바라보며 잘 모아지지 않는 손가락을 볼에 가져다 댔다.

"흐하하, 아니이! 아빠 말고, 여기, 여기 카메라 보고. 카아메에라아."

지승이가 머리 위에 물음표를 그린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며 어정쩡한 포즈를 짓자 승철이 지승이를 꽉 껴안고선 예쁘다며 볼에 쪽쪽쪽 몇 번을 뽀뽀하고 엉덩이를 몇 번 쳐주었다. 카메라엔 VJ의 웃음소리가 살짝 섞여 있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지승이가 승철에게 칭찬을 받자 웃음을 가득 품었다. 그 사이에 방에서 나온 지훈이 뭐하냐며 물었다.

"뭐긴, 우리 지승이 조기교육 하려고 그러지."

"아기한테 많은걸 요구하는 거 아녜요?"

"허? 일반 지승이 밥 먹이고, 이따 봐봐. 지승이 완전 잘해!"

지승아! 밥 먹자, 밥!

승철이 지승이을 안고선 식탁의자에 앉혔다. 지승이는 한참 동안 거실 구석에 있는 작은 텐트를 바라보다 입 앞에 다가온 고소하고 맛있는 밥에 금방 흥미를 빼앗겼다. 카메라 앞에서 너무 열심히 놀던 지승이는 밥때가 조금 지난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지승이가 보행기에 타고 열심히 소화할 동안 승철은 커피를 마시며, 지훈은 설거지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승철이 보행기를 타고 이곳저곳을 모험하는 지승이를 눈으로 좇던 승철이 지훈의 이름을 급하게 불렀다. 그 이유는 지승이가 다시 거실 구석에 있던 텐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기 때문이었다. 지훈이 영문을 모르고 고무장갑도 벗지 못한 채로 거실로 불려 나왔다.

"봐봐, 후나! 지승이 예쁜 짓!"

지승이가 승철을 한번 지훈을 한번 느리게 쳐다보다 카메라를 보고선 짧둥하고 말랑한 손가락을 볼에 가져다 대며 활짝 웃었다. 지훈이 믿지 못하는 눈으로 계속해서 지승이를 바라보았다. 고무장갑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져 매트를 적셨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시! 예-쁜 짓!

지승이가 다시 카메라를 보고선 말랑한 볼을 가득 접어 해시시 웃었다. 승철은 그런 지승이의 볼을 붙잡고 아프지 않게 입술로 볼을 암냠냠 물었다. 지승이가 귀찮은 듯 손으로 승철의 얼굴을 밀어냈지만 밀릴 리 없었다.

"봐! 우리 지승이 천재라니까?"

".. 진짜 그런가 봐요…."

지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지승이를 바라봤다. 지훈과 눈이 마주친 지승이가 저를 괴롭히는 승철을 온몸으로 밀어내곤 지훈을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지훈은 익숙한 듯 고무장갑 한쪽 끝을 이로 잡아 벗고선 한쪽 팔로 지승이를 안았다. 그리곤 어화둥둥, 한 손으로 받치고 있는 엉덩이를 토닥였다.

"우리 딸, 완전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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