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변호사' 정형식 판사, 철저하게 이재용 논리 수용, 박영수 특검 전략...

353일동안 옥살이를 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담담한 표정으로 재판장의 선고 낭독을 듣다가 마지막 주문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자 귀까지 상기된 모습이었다. 법정에서 나와 법무부 호송차량에 타는 동안엔 석방의 자유를 느끼듯 만연의 웃음을 띠기도 했다. 터져나오는 기쁨을 도저히 숨길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는 353일동안 있었던 구치소를 빠져나오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1년간 나를 돌아보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앞으로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말하며 대기하던 차량에 올라탔다.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이날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검팀이 공소제기한 뇌물공여(약속액 포함) 액수 433억원 중 삼성이 최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 지원을 위해 독일 내 코어스포츠로 송금한 용역비 36억원과 마필 및 차량 무상 이용 이익만큼만 유죄로 인정했다.

그와 함께 공소제기된 횡령액도 상당 부분이 무죄 판단 났으며 법정형이 가장 센 재산국외도피 혐의는 전부 무죄로 판단했다. ‘이렇게까지 봐줘도 되느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의 손을 확실하게 들어줬다. 어정쩡하게 판결을 할 경우 오히려 뒤탈이 더 날 수도 있음을 사전에 논의라도 한 듯 재판부는 이날 특검의 주장을 거의 무시하고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정형식 부장판사의 별명이 ’삼성 변호사’라고 온라인에 급속히 퍼지고 있다.

여론은 상당히 좋지 않다. 삼성의 입체적인 로비에 무너졌다는 탄식도 나온다. “재산 국외도피 의사는 없었다. 장소가 국외였을 뿐이다”라는 판결에 대해서는 “사람을 죽일 의사는 없었다. 그 부분이 목이 아니었을 뿐이다”라는 말로 바뀌어 회자된다.

이날 재판을 맡은 정 판사는 특검팀이 제기한 혐의 중 극히 일부만을 유죄로 인정했을 뿐, 삼성의 승계를 전제로 한 뇌물공여 등 핵심 혐의에 대해서는 “명시적 묵시적 청탁이 없다”고 판단했다. 특검이 공소로 제기한 횡령과 법정형이 가장 무거운 재산 국외 도피혐의에 대해서도 아예 무죄로 판시했다.

많은 시간과 비용 등을 지원받으며 광범위한 수사를 벌였던 특검으로서는 대굴욕이자 처참한 패배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까지 무너질지 몰랐다는 내부 비판도 나온다. 재판부는 범죄의 구성요건인 인과관계 자체를 사실상 없다고 본 셈이다. 특검과 재판부가 서로 다른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재벌과 청와대 권력이 부적절하게 만나고 청탁을 하고 받아들이는 일련의 과정들은 전부 무시되었다. 재판부의 꼼꼼한 법리적 판단에 국민의 법 감정은 설 자리가 없었다. 촛불민심은 꺼졌고 공허한 분노의 외침만이 온라인을 떠돌고 있다.

국가의 명운까지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세기의 재판'(박영수 특검 표현)이 이토록 허무하고 일방적으로 끝난 이유는 무엇일까.

김기식 전 의원은 이날 ‘그런데 말입니다’라는 말로, 재판장인 정형식 부장판사에게 3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①삼성의 청탁도 없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부당한 지시를 하고, 삼성의 청탁도 없는데 문형표 등이 부당한 압력을 가해, 이재용에게 이익을 취하게 했다는 말이냐?

②삼성의 청탁도 없는데, 대통령과 장관이 알아서 이재용을 위해 법을 어겨가며 부당한 지시와 압력을 가했다는 말이냐?

③안종범 전 경제수석 등의 수첩과 업무일지 등의 증거능력을 배제했는데, 그럼 이들이 자신들도 문제가 되는 불법 행위 관련 사실을 소설로 작성했다는 말이냐?

그리고는 “이 모순된 사건의 상고심을 처리할 대법원의 판결을 지켜보겠다”며 “민주공화국의 사법부인지, 삼성 왕국의 원님 재판인지 지켜보겠다”고 덧붙였다.

재판부의 법리적 판단도 상식적이지 않고 왜곡돼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여론의 법 감정 또한 상당히 악화돼 있다.

한편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5일 기자들에 입장문을 내고 "법원에서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는데 너무 안타깝다"며 "법원과 견해가 다른 부분은 상고해 철저히 다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수사에 참여했던 파견검사들과 변호사들은 분노를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이 부회장 관련 수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검사들은 "부끄러운 판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검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 아니겠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법과 상식에 정면으로 반하는 판결"이라며 "이런 행동을 해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기준을 법원이 확인해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검사는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이 아직도 감옥에 있지않느냐"며 "연금공단이 (승계작업을) 도와주려고 했던 것이 다 드러났고, 당시 민정수석실에서 이걸 검토했던게 드러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 수준을 낮춰본 판결 같다"라고 쏘아붙였다.

특검에 참여했던 한 변호사도 "충격적인 판결"이라며 "특히 승계작업 등과 관련된 혐의에서 무죄가 나온 것은 의아하다 못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지난해 1월 문형표 전 이사장 등의 구속부터 이 문제를 다뤘던 판사가 한 두명이 아닌데 이번 판결만 이렇게 난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과연 특검의 전략은 공정성을 기대하는 여론에 부응하는 완벽한 것이었을까. 법조계에서는 아쉬움이 많은 과정이었다고 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은 지난해 8월 신설된 서울고법 형사13부가 심리했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 피고인들이 무더기로 기소되자 항소심 재판 업무 부담을 줄이려 형사13부를 추가했다. 재판장은 정형식(57·사법연수원 17기) 부장판사가 맡았다. 항소심은 같은 해 9월 28일 공판준비기일을 거쳐 10월 12일 1회 공판부터 12월 27일까지 17차례 심리가 진행됐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본질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나 1심 재판부와 180도 완전히 다르게 봤다. '화성남자 금성여자'만큼이나 양측의 법리적 언어와 문법은 달랐다. 아예 출발부터 결론이 예견된 재판이었다.

삼성 측의 ‘정치권력에 당한 피해자’ 논리를 상당부분 수긍했다. 결국 특검이 공소 제기한 298억여원의 12% 정도인 36억여원 및 금액 산정이 어려운 마필·차량 무상 사용이익만 뇌물로 인정했다.

이어 “유죄로 인정되는 뇌물 액수는 특검이 규정하는 사건의 본질이나 의미(정경유착 사건의 전형 등)와는 거리가 있다”는 설명을 달았다. 특검 측이 무리하게 범죄 틀을 짰다는 지적이 뼈아프다. 재판부의 그런 기류를 알고도 그냥 무시한 채 '여론재판의 행운'에 기대고 밀어붙인 특검의 아둔한 전략도 문제가 있었다.

박영수 특검은 회심의 카드로 '반전'을 기대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속 빈 강정'이었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다 끝난 일이지만, 만시지탄이다. 춧불정국으로 촉발된 정의에 대한 민심의 열망을 담아내지 못했다.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특검이 야심차게 밀어붙인 일명 '0차 독대'는 선고에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사실관계부터 인정되지 않았지만 재판부는 "(있었다고 해도) 큰 영향이 없다"며 특검으로서는 '굴욕'에 가까운 판단을 내놨다. 1심에서 청와대와 삼성의 구체적인 '정경유착' 관계를 증거로 내밀지 못한 특검이 야심차게 준비한 0차 독대 전략은 결론적으로 무리한 시도였다.

정형식 부장판사는 결심공판에서 일명 '0차 독대'로 불려온 2014년 9월12일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안가 독대를 아예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0차 독대 인정 여부를 밝히기 전 "이 사건에서 큰 영향이 없는 부분이긴 한데 살펴보도록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재판부가 애초부터 이 부분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특검의 0차 독대 주장은 일견 파급력이 있어보이면서도 모호한 측면이 있었다. 1심 판결에서 인정된 날 외의 추가 독대에 무게를 실어주는 정황이 나왔다는 점 자체로 주목이 갔지만 정작 중요한 대화 내용과 관련해서는 전혀 나온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날 재판부도 "2014년 9월12일에 면담이 있었다고 해도 어떤 내용의 면담이 있었는지는 전혀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결정적이지 않아도 증거 보강 효과 정도는 있을 것이라는 특검의 기대가 완전히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박근혜와 이재용' 단 둘 만의 대화를 간접적으로 입증하려고 하다 보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들은 사람이 없기 때문에 0차 독대에 대한 객관적인 정황 증거력이 떨어졌던 것이다.

재판부는 특검이 독대 존재의 근거로 내세운 안종범(59)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수첩 기재 내용 등도 신빙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특검은 항소심 재판 후기부터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2014년 9월12일 안가 독대가 있었다고 주장해왔다.

2014년 9월15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 당시 두 사람의 만남 시간이 약 5분에 불과해 지원 요구 등의 대화가 불과하다는 이 부회장 측 반박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 부회장 1심에서 인정된 두 사람의 독대는 2014년 9월15일, 2015년 7월25일, 2016년 2월15일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항소심 결심공판 최후진술에서 "제가 안가를 간 건 (2015년7월25일, 2016년 2월15일) 두 번 뿐"이라며 0차 독대를 부인했다.

그는 "이걸 가지고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제가 그걸 기억 못한다면, 적절치 못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치매"라는 말로 일축했다. 이 부회장의 '치매 주장'이 결국 재판부에 먹힌 셈이 됐다. 박 특검은 구형의견에서도 "이 부회장은 항소심에서 새로 밝혀진 2014년 9월12일 단독 면담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고 몰아붙였지만 이는 일방적 주장에 불과했다. 2심 재판 후기부터 본격 공방이 오고 간 0차 독대를 굳이 언급한 건 물론 특검이 이 내용을 중요 부분으로 삼아 부각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특검에 파견됐던 검사들은 “견강부회식 판결” “부끄러운 판결” 등으로 평가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 검사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이런 식으로 유착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선례를 법원이 만들어준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법조계에서는 '이번에도 재벌에 대한 '3.5제'가 적용이 됐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이는 징역 3년 이하로 형량을 낮추고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재벌 총수들의 석방 공식이다. 이 공식을 맞추기 위해 재판부는 법정 최고형이 가장 높았던 재산국외도피 혐의에 대해 1심에서는 36억원이 인정된 반면 항소심에서는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가장 형량이 높을 것으로 예상했던 죄목을 무죄로 만들어버리자 징역형은 3년 이하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것이 바로 이재용 석방의 하이라이트였다.

하지만 재판은 끝이 났다. 한국 정치에서 이번 재판은 큰 의미를 가진다. 대통령에게 재벌 총수가 접근해 만남을 가지고 청탁을 은밀하게 해도 법의 구속력은 미치지 못함을 입증했다. 권력과 재벌이 결탁해서 입을 맞추고 그 과정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칠 경우, 그리고 정경유착의 미묘한 선을 넘지 않았다는 점을 강변할 경우 우리 법은 그 미묘한 유착관계를 응징할 힘과 사회적 합의가 없는 셈이 됐다.

이날 판결에 대해 우리 모두는 패배자들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353일동안 구치소에서 지내며 글로벌 리더로서의 이미지에 먹칠을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벌의 팔목을 비틀어 돈이나 뜯어 내는 양아치 수준의 두목이 돼 버렸고, 거의 무죄취지의 집행유예로 재벌권력을 석방시킨 재판부는 일반적인 법 상식마저 무시하며 촛불의 열망을 꺼버렸고, 그 차가운 겨울 길바닥에서 정의를 외쳤던 국민들은 한국의 사회적 자본과 신뢰를 원망하며 '역시 우리는 안된다'는 절망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성기노 피처링 대표(www.featuring.co.kr)

from http://politicsplot.tistory.com/522 by ccl(A)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