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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배, 불혹의 불멸의 불굴의 새 역사 쓰다.

최홍만의 5연패 이후, 대한민국 이종격투기 팬들의 아쉬움이 극에 달한 이 때, 혜성처럼 나타난 이가 있다. 이십대 초반의 신인인가? 아니다. 1970년생, 한국 나이로 40세인 최무배이다.

최무배는 40세다. 그의 전성기는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1990년이었다. (레슬링으로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기도 했다.) 은퇴 후 우리나라 최초의 MMA팀(팀태클) 헤트코치로서 한국에 이종격투기 붐을 이끌어 옴과 동시에 2004년, 본인이 직접 프라이드 FC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마무라 유스케, 야마모토 요시히사, 소아 파렐레이, 자이언트실바2004년에 내리 4연승.190cm, 100kg의 강력한 하드웨어와 레슬링을 바탕으로 한 그라운드 기술을 바탕으로 경쟁자들을 손쉽게 이겼다. 2004년에도 그는 30대 중반의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그의 용감한 결정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이다.그러나 그는 이종격투가로서의 여정은 손쉽지만은 않았다. 그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왔다. 2005년 2월 PRIDE 29에서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에게 처음으로 패배(KTO패)를 경험했다. 재기가 쉽지 않았다. 그가 링에 다시 서게 된 것은 3년도 더 지난 2008년 6월이었지만 그의 상대 마르시오 크루즈는 최무배에게 패배를 안겼다.역대 전적 6전 4승 2패.그가 이번에 싸울 상대는 미국의 데이브 허먼이었다. 데이브 허먼은 그보다 14살이나 어렸고, 더구나 13전 전승의 강자였다. 나이와 분위기에서 하향세에 접어든 최무배에게 쉽지 않은 상대인 것만은 분명했다.역시나 고전을 면치 못했다. 1라운드에서부터 최무배는 데이브 허먼에게 안면 공격을 허용했다. 최무배는 아슬아슬하게 그로기상황을 버텨내어 1라운드를 버텨냈다. 얼굴에는 역시나 많은 상처가 나 있었다. 숨도 가쁘게 내쉬고, 체력도 상당히 소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만은 달랐다. 안면의 상처와는 대조되게 그의 눈빛은 살아있었고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전열을 가다듬고 2라운드로 들어섰다. 허먼은 계속해서 최무배를 압박해 들어왔으나 최무배는 공격을 받고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전진했다.참으로 무식한 작전임에 틀림없었다. 최무배는 멈추지 않는 끈기와 투지로, 데이브 허먼이 아무리 공격을 해 와도 물러서지 않고 그를 압박했다. (심판이 스톱을 시킬 것만 같은 때에) 허먼은 급격히 체력이 소진되게 되었다. "데이브 허먼이 최무배를 가격해도 최무배가 물러서지 않으니 데이브 허먼이 당황하고 또 지쳤다."라는 모 해설자의 말처럼 그는 끊임없이 진격했고 안면 스트레이트 한 방에 허먼은 무릎을 꿇었다.

나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르고, 야구 대표팀이 2009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우승을 할 때 만큼 기뻐서 손벽을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 아니 미친 개 마냥 뛰고 난리를 폈다. 이렇게 기쁠 수 있을까?

최무배-데이브허먼 영상

최무배 프로필

출 생 : 1970년 6월 27일

신 장 : 190 cm / 체 중 : 100 kg

소 속 : 팀태클

주특기 : 레슬링

총전적 : 7전 5승 2패

주요 전적 : 7전 5승 2패

- 2004년 2월 PRIDE 무사도2 리어네이키드초크승 (vs 이마무라 유스케)

- 2004년 5월 PRIDE 무사도3 2라운드 판정승 (vs 야마모토 요시히사)

- 2004년 10월 PRIDE 28 니어네이키드초크승 (vs 소아 파렐레이)

- 2004년 12월 PRIDE 남제 2004 어깨굳히기승 (vs 자이언트실바)

- 2005년 2월 PRIDE 29 TKO패 (vs 세르게이 하리토노프)

- 2008년 6월 센고쿠 3 암바패 (vs 마르시오 크루즈)

- 2009년 1월 센고쿠 2009 TKO승 (vs 데이브 허먼)

수상 내역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100kg 동메달

-1990년 아시아선수권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100kg 동메달

취미: 바둑 특기 레슬링, 권투, 가라데

별명: 부산중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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