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팩트가 없는 토론은 보고 싶지 않다

글 제목을 ‘JTBC 뉴스룸 신년토론 2018년, 한국 어디로 가나’라고 정하려 했으나, 토론의 전체 내용을 도저히 언급할 수 없는 짧은 필력을 탓하며 제목을 수정했다. 2018년 1월 2일 20:40부터 23:00까지 방송된 JTBC 뉴스룸 신년토론 “2018년, 한국 어디로 가나”를 시청한 일부 소감이다.

토론 프로그램을 자주 보진 않지만,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고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와 유시민 작가가 진보 진영 패널로 출연한다고 해서 큰마음 먹고 첨부터 끝까지 시청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와 박형준 동아대 교수가 패널로 출연해서 이번 정부의 외교정책, 대북정책, 이전 정부의 위안부 합의과정 공개에 대한 비판으로 토론을 시작했으나, 이런 문제들은 보수와 진보 사이의 토론 때마다 나오던 뻔한 쟁점이라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물론 쟁점이 지루했다는 뜻이지,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와 유시민 작가의 발언이 지루했단 뜻은 아니다.)

뒤이어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진정한 적폐청산이냐, 정치보복에 불과하냐는 주제로 넘어갔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작년 12월 9일부터 12일까지 UAE(아랍에미리트 연합)에 특사 파견된 것을 문제 삼으며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김 원내대표는 국내에서 잘못된 제도나 관행을 없애는 것은 좋지만, 그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국가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거나 국익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지적하며,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UAE 원자력 발전소 건설 사업 관련 비리 의혹을 캐다가 아랍에미리트 왕실의 반발을 사서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비서실장을 특사로 파견하였다고 자신 있게 주장했다.

이 부분에서 유시민 작가는 길게 반박하지도 않았다. 유 작가는 김 원내대표가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뿐이나, 상대방은 이미 무너지기 시작했다. 김 원내대표는 한국과 아랍에미리트 사이의 군수지원협정을 언급한 정의당 김종대 의원을 언급했으나, 유 작가가 김종대 의원이 그런 말을 하기 전부터 이미 자유한국당에서는 그러지 않았느냐고 되묻자, 김종대 의원의 군수지원협정 언급 이전에는 MBC와 조선일보 보도가 나오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고 답했다.

갑자기 짜증이 밀려왔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이 정부의 적폐청산이 국가 간 신뢰를 무너뜨리고 국익을 해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제시하는 근거가 고작 일부 언론의 보도에 나온 내용이라는 것이라니....

김 원내대표의 답을 들은 유 작가도 은근히 짜증이 났던 것일까. 상대방의 눈을 주시하며 “신문 보도가 근거세요?”라고 묻는다. 다른 근거는 없는지 나도 궁금했다.

김 원내대표의 다음 답변은 더 가관이다. 자신이 '1980년도 초에 중동 건설현장에 근무한 경험도 있는 사람이라며 다양한 정보와 제보를 가지고서 언론의 보도가 허위사실이 아니라고 확신한다'고 한다. 그러나 토론이 끝날 때까지 누구로부터 어떤 정보와 제보를 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나 역시 말을 정말 못하는 사람이지만, 적어도 토론을 할 때에서는 무릇 자기 주장을 제시하고, 그 주장에 대한 근거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거나 대부분이 사람들이 수긍을 하는 사실관계를 제시함으로써 논증을 해야 한다고 배웠다. 김 원내대표가 제시한 MBC와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도 사실이라면 그것도 일종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MBC와 조선일보 보도가 추측성 기사에 불과하거나 오보라면 어떻게 되는가(시청자들과 독자들이 MBC와 조선일보에 한두 번 속았는가). 사회생활이나 정치적 연륜이 풍부한 우리의 김 원내대표도 일부 언론에서 추측성 기사를 쓰거나 본의 아니게 오보를 보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것이다. 그런데 왜 저러고 있을까. 당리당략이 논리력을 마비시킨 것일까. 토론 프로그램에서 김 원내대표의 모습을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기회가 있다면 김 원내대표의 더 준비된 모습을 보길 기대해 본다.

from http://jaeh0.tistory.com/8 by ccl(A)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