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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현역인 여당 4선의원에 대한 사찰이라니. 이럴진대 일반인이, 힘없는 개인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얼마나 엄청난 크기로 자리잡고 있을까.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의 마음은 무척이나 답답해 보였다. 화가 나 견딜 수 없을 법도 하건만 그래도 자신은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 괜찮단다. 이런 일이 생길수록 전의가 불탄다면서. ‘맹탕 같은’ 검찰 중간수사결과가 발표되고, 몸통으로 지목받고 있는 인사 중 하나인 박영준 전 국무차장이 지식경제부 2차관으로 임명된 그날 남 의원을 만났다. 위로삼아 내가 술 한잔 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남: 우리 언제 처음 봤죠? 느낌표 때인가 그뒤에 무슨 토론회때 제동씨가 사회봤는데.

그때 제동씨가 돌아다니면서 여러사람을 인터뷰하더라고. 그런데 이렇게 보니까 키가 얼추 나랑 비슷한 것 같아요. 물어봤더니 170이래. 그래서 내가 그랬지. 에이 나랑 똑같은 것 같은데 뭘. 이러면서 서로 번호따고 술 몇 번 마시고 했었지요.

김: 맨날 마음만 굴뚝같은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요. 어쨌든 여러모로 연이 많습니다. 형님.

남: 그나저나 참 고초 겪고 있어.

김: 아유, 전 안 겪어요.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전 오히려 의원님이 걱정인데.

남: 나도 비슷해요.

김: 요즘 난리도 아니잖아요. 여당, 그것도 4선의원에 대한 사찰이라니.

남: 보도에 의하면 2000명 가까이 사찰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검찰, 경찰, 국정원 등이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 살펴볼 수는 있지만 공직지원관실은 전혀 권한이 없는 곳이지. 공식이 아니라 사적 채널을 이용한 거지.

또 공직지원관실이 공직자에 대해 살펴본다면 적법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정치인이나 민간인을 본 거잖아요. 이상한 데로 보고되고 정치적으로 이용된 사안들이지.

특히 문제는 수사하는 과정에서 하드디스크에 저장돼있던 것이 다 파기됐다는 거예요. 기업에 있던 것도 아니고 정부청사 총리실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괴한들이 들어와 완전히 망가뜨렸다? 압수수색전에 누군가 와서. 너무 극적이잖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일 같아. 진상이 뭔지 이게 밝혀져야지.

과거엔 정치인들이 불법정치자금을 만들어 썼어. 그렇지만 지금은 투명해요. 후원금을 받아도 법에 정해진대로 쓸 수 밖에 없으니까. 젊은 정치인의 부인 중에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서 이 부인들을 들여다 보는거야. 털어서 먼지 나오나 보는 거지.

난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특히 부인이 하는 사업에 대해서 떳떳하게 하려고 정말 노력했어요. 수입하면서 한번도 핸드캐리 한 적도 없고 모든 수입은 다 세관신고해서 우편으로 받게 했는데 밀수니 하면서 흘리는거야.

이건 본질을 흐려 물타기 하려는 거지. 나만해도 법으로 문제가 안되니까 정보지에 흘리고 퍼뜨리고 보고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인 개인을 몹쓸 사람으로 만드는거지.

김: 왜 그런 일을 한다고 보십니까?

남: 그래서 많은 국민이 의심하고 있죠. 어떤 세력이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상적인 권력운영의 방식이 아니고 세력 중심에 있는 사람이 서로 보고체계를 갖고 권력을 사유화해서 계속 유지하려는 것이죠. 그걸 검찰이 수사해서 밝혀야 하는거지.

김: 그런데 지금 검찰 수사를 보면 의지가 없다는거죠. 검찰은 왜그럴까요?

남: 모르겠어요. 검찰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밝힐거예요. 이건 내 개인의 문제도, 정치인 개인의 문제도 아니에요. 이 문제는 대한민국이 시스템으로 유지해왔던 근본가치인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죠.

이건 군사독재시절, 민정당 시절로 돌아가는 일이잖아요. 보수가 가장 지켜야 할 가치는 자유입니다. 진보가 참여나 민주에 방점이 있다면 보수는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면서 시장과 사회를 발전시키자는 것에 방점이 있죠. 그리고 법치가 이뤄져야죠. 한나라당이 진짜 보수정당을 추구하려면 자유와 법치를 해치는 인치, 자유를 억압하는 분위기를 바로잡아야죠. 그 문제를 바로잡지 않고, 보수정당으로서의 가치를 지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있을까요.

김: 4선 중진의원입니다. 그것도 여당의. 그런분까지 사찰을 걱정할 정도라면 보통사람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은 얼마나 클까요.

남: 그렇죠. 여당의 4선의원에게 그랬으면 야당에 대해선 어땠을까, 일반 국민들에 대해선 어땠을까요. 그런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웠겠죠. 그래서 하드디스크가 파괴된 겁니다. 저는 그걸 밝히고 가야한다는 겁니다. 영원히 진실이 묻히긴 어려워요. 밝혀질겁니다. 역사는 항상 반복됐어요.

정권입장에서 읍참마속하는 심정으로 환부를 도려내면 완치가 가능하다고 봐요. 그런데 이걸 그냥 묻고 지나가면 임기말에 곪아터져 나오고 이것으로 인해 정권운영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되지요. 전 정말 두려워요.

과연 뭐가 들어있길래 그렇게 며칠동안 몰래 파기를 해야했는지. 검찰도 왜 며칠간 뜸을 두면서 파기할 시간을 줬는지. 누가 왔었는지 CCTV도 살펴볼 수 있고 전화통화 기록도 들여다볼 수 있을텐데 하나도 안밝히고 가잖아요. 혹시 알아요? 그런 문건 안에 김제동씨의 프로그램 하차와 같은 그런 문제도 들어 있었을지.

김: 환부는 도려내야 하는데 외로우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 보도됐듯 사찰문건에 나온 내용이 '사업하는 제 부인이 밀수했다, 제가 조사경찰을 교체하는데 외압을 행사했다'는 내용이지요. 이건 누군가가 물타기를 하려고 흘린거죠.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겁니다. 이 문제를 통해 사찰이라는 본질을 훼손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되선 안돼죠. 저도 그래서 계속 싸울 겁니다. 이건 사찰을 넘어선 공작이죠.

김: 왜 그런다고 생각하세요? 공작까지. 게다가 같은 편 아닌가요? 여당의원인데.

남: 맘에 안들었나보죠.

김: 전 이해가 안돼요. 같은 편이잖아요.

남: 아닌가봐요. 같은 편이 아니에요. 권력을 소유한 일부 인사인거지. 처음부터 제가 권력사유화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삼고 거명했잖아요. 그러니 내가 이런 일을 당하고 있다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나오는거지요.

김: 술은 제가 사야겠는데요. 전 사찰당할 배우자도 없고 책임져야할 자식도 없고. 전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데요. 남 의원이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건가요?

남: 예전에 저랑 원희룡, 정병국, 정두언, 정진석 의원이 대통령하고 저녁을 먹기로 약속된 적이 있었어요. 한참 쇄신 이야기가 나왔을 때인데 만나기로 한 날 아침에 그 소식이 신문에 공개가 됐더군요.

대통령의 비공식일정이 언론에 공개되면 그 일정은 취소돼요. 못만났죠. 저희들이 가서 무슨 이야기하려고 했는지는 뻔했죠. 대통령을 이용해 사리사욕 차리는 사람들을 멀리하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거고, 당연히 그 이야기가 불편할 사람들이 있었겠죠.

어쨌든 검찰이 초기부터 수사해야 할 대상을 제대로 하지 않고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수사를 진행하는 것을 보면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걸 묻고 가야 나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김: 이게 밝혀져야 할 이유는 나라도 나라지만 장기적으로 정권재창출에 도움이 안된다고 보시는 건데요. 그쪽 입장에서 보면 정권재창출이든 나라사랑이든 방법의 차이라고 볼 것 같은데요.

남: 방법이라니요?

김: 사랑하는 방법의 차이죠. 그쪽에선 남 의원같은 분이 없어져야, 그리고 사찰을 하든 뭘 하든 일사분란한 권력향유를 통해 국정주도권을 확실히 쥐어야 나라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할테니까요.

살빠지실 것 같아요. 정말 듣고 있는데 힘드네요.

남: 괜찮아요. 내가 그래도 낙관적인 사람이야. 요즘 소설 대망을 읽고 있는데 거기서 두가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첫번째는 절대 남의 밑에 안들어가는 것, 즉 절대 누군가와 가신관계를 맺지 않더라고. 두번째는 자신의 목적에 따라 변치않고 신념을 지켜간다는 거죠.

김: 유독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 게 이 정권 출발하고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있다고 보십니까?

남: 그런 것을 가능케 한 분위기가 있겠죠.

김: 어떤 분위기죠?

남: 제일 답답한 게 그거예요. 왜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했는냐, 왜 젊은이가 대거 투표장에 나오느냐. 이건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거죠.

자유가 억압받는다는 느낌에 불을 지른 것이 제동씨 사건이에요.

내가 수원 장안구 보궐선거 책임자였는데 현장에서 얼마나 잘 느끼겠어요. 그 일 터지고 나서 정말 싸늘한거야. 매일 밤 호프집 다니면서 젊은이들 만나면서 뼈저리게 느꼈어요.

과거 회귀형 사람들은 그거 다 옛날에 하던건데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해요. 그런게 뭐가 문제가 되느냐는 거지. '옛날과 비교하면 좋아진거다'는 이런 식으로.

그런데 젊은사람들, 지금 세대에서 이들의 잣대로 보면 마치 군사독재시절에 김근태씨가 고문당한 것과 같은 강도로 다가온 거예요. 고문과 사찰이 횡행하던 그 당시 젊은이들이 받던 그 느낌과 지금의 젊은이들이 느끼는 느낌이 별반 차이가 없는 거죠.

그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모르는 거예요. 아직도 과거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거죠. 전 이 정권이 그렇게 자유를 억압하는 정권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고 그게 점점 더 덧씌워지고 있는 것이 걱정스러워요. 바라잡아야죠.

김: 이런 시각도 있을 것 같아요. '남 의원이 하는 것은 또 다른 정치적 의도 아니냐'...차차기 정도는 예상을 하고 있잖아요. 길게 봤을 때 정치적인 포석이라는 거죠.

남: 전혀 생각이 없다고 이야기는 안해요. 그렇지만 지금 이 시점에 미래의 어떤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니죠. 내가 옳고 바른 길이라고 평가하는 것을 끝까지 지키고 나가면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뭘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워야죠.

미네르바 구속, MBC 제작진 e메일 공개. 이런 부분에 대해 전 문제점을 계속 이야기했어요. 당에선 엄청 욕먹었지만.

김: 지금 함께 연대해 싸우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있습니까?

남: 일단 사찰 대상자들이 같이 싸우고 있고 공분하는 분들도 있죠. 지금은 소수지만 다수가 될거예요. 한나라당을 변화시키는 것은 대한민국 정치를 변화시키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해요. 제가 전당대회에 나가 당대표가 되려고 했던 것은 그런 목표 때문이었어요.

난 정말 한나라당이 진짜 보수정당이 되도록 하고 싶어. 진짜 보수가 되려면 보수의 기본을 제대로 해야해요. 군대 가고, 세금 제대로 내고, 사회에 봉사하고, 법치하고. 국회의원부터 그래야지. 그게 진짜 보수인거죠. 우리가 먼저 법지켜야지 국민에게도 법을 말하는거지. 자유를 잃어버린 보수가 세상에 어디있어요.

김: 남 의원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4선중진이고 아버지 지역구를 물려받았고. 조용히 있으면 기득권 유지하며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자신이 속해있는 정당과 반대의 목소리를 낼 때가 많아요. 그게 정치적으로 의도된 건가요, 아니면 소신인가요.

남: 한나라당의 현재 모습은 꼴통 보수, 가짜보수 성격이 혼재돼 있어요. 그걸 없애고 진짜 보수정당이 되어야 국민에게 존경받고 사랑받을 수 있어요. 그래야 국민에게 선택받을 수 있고 대한민국도 좋아져요. 진짜 보수정당과 진짜 진보정당이 정체성을 분명히 한 가운데 정치적 수렴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해요.

김: 사찰이니 뭐니 하고 억압적인 사회분위기가 형성되다 보니 이런 이야기들도 많이 돌아요. 전화 하다가 갑자기 감이 멀어진다거나 이상한 잡음이 들리던데 내 전화도 도청되는거 아니냐는 식의 농반진반의 이야기들요.

남: 그러니까 제동씨도 잘 살아요. 아무나 만나서 이상한 행동 하지 말고, 법에 어긋나는 일도 하지 말고. (웃음)

폴 크루그먼이 쓴 책을 보니까 대공황 이후 지금까지 미국 경제상황에 대해 정리하면서 결국 미국의 경제는 경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라고 정리했어요.

정치 중에서도 공화당이 가장 중도적인 정책을 펼 때 미국인의 삶의 질이 가장 높았고 정치적으로도 소모적 정쟁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 생각엔 정말 동의하고 공감이 돼요. 한나라당이 진짜 보수를 이뤄내면 대한민국의 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 봐요.

김: 이 인터뷰를 그동안 진행하면서 정치적인 부분을 배제하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오늘은 가장 정치적인 인터뷰가 됐어요.

남: 어쩔 수 없죠. 지금 대한민국의 핫이슈에 연관돼 있는 사람인데 감수해야죠 뭐.

김: 핫이슈는 제가 선배인 것 같습니다. 저는 연예인으로서 마약,음주, 뺑소니 등 각종 범죄를 제외한 사건으로 전 신문의 1면과 사설에 실렸던 유일한 연예인이거든요.

불법사찰과 관련해 그동안 윗선으로 지목돼 온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이 지식경제부 2차관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남 의원은 공식적인 멘트로는 그건 인사권자가 한 일이고 몸통을 밝히는 일은 별개로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인사를 함으로써 본질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라고 불쾌해했다.

남: 4선 의원도 하는데. 그래도 난 호소할 수 있는 길이라도 있는데 일반국민은 그것도 봉쇄돼 있잖아요. 내가 이렇게 억울한데 최소한의 몸부림도 못했던 힘없는 국민들의 아픔이 조금 이해될 것 같아요. 암묵적 공포가 사람들 사이에 자리잡는 것이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동씨도 아픔을 겪었지만 그것을 서포트(지지)해주는 국민들이 많이 있어요. 그것조차 없는 국민이 느끼는 공포와 외로움은 상상할 수 없죠. 그런 것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목표인데 그게 왜 이정부 들어 선회되었는지.

김: 그러니까 의원님이 말하는 법치는 호소할 길조차 없는 국민들이 어디에도 하소연 할 길 없으니까 길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건데 그런 국민에게만 법치, 법치를 외치는 경향이 강하다는 거네요.

전당대회조차 법을 안지키면서 국민에게 폴리스라인 지켜라, 야간에 시위하지 마라 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거죠.

김: 남의원 자신의 별명 아시죠?

남: 오렌지?

김: 아녜요. 아린쥐.

남: 제 아들이 그렇게 물어본 적 있어요. 아빠, 오렌지가 뭐예요? 왜 아빠를 오렌지라 그래요? 그래서 내가 대답해줬죠. 오렌지는 부모 잘 만나서 외국물 좀 먹고 돈 펑펑 쓰고 좋은 차 타고 다니고 공부 하나도 안하고….

그렇게 설명했더니 아들이 말해요. 그럼 아빠는 오렌지 아니잖아. 한라봉이에요. 외국서 공부한 건 맞지만 귤과 섞여서 최고의 품질을 만든 한라봉이라고. 나 이정도면 아들 잘 키웠죠?

내가 당내개혁하고 싸울 때 한 선배의원이 의원총회에서 나더러 오렌지처럼 산다고 지칭하면서 시작한거예요. 지금까지 한나라당에서 누군가를 공격할 때는 빨갱이로 공격했는데 도저히 나는 빨갱이로 몰 수 없었던 거지. 빨간색, 파란색만 보아오던 정치적 색맹이 만든 새로운 색깔인거죠.

김: 그런데 보통사람이 보기에도 그래요.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아버지도 국회의원이셨던 것을 보면 기득권을 갖고 그안에서 순응하며 살아야 할 것 같아요. 그쪽, 그러니까 기득권층이 보기에 일종의 삐딱선을 타는 주장을 많이 하시고, 본인이 자라온 환경과 다른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뭔가요?

남: 대학다니면서 형성된 것 같아요. 내가 사회복지를 했으니까. 80년대 초반의 사회분위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잖아요. 특히 우리 과에는 대부분이 기득권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어요.

그때 제일 친하게 지냈던 안치환씨는 지금도 술한잔씩 하는 친한 친구예요. 2002년 이전에는 부담스러워 하는 감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거리낌없이 만나죠 .

어쨌든 그런 과정속에서 우리 사회에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없는 차별과 빈곤이 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공부하고 배웠어요.

내가 미국 예일대에서 MBA를 했는데 비영리기관의 경영전략을 공부했어요. 비영리단체, 비정부기구(NGO) 등의 경영전략을 연구하는 거지요. 기업과 공공이라는 두가지 섹터가 자본주의 사회의 큰 틀이지만 이 두 개의 섹터만 가지고서는 사회의 빈 곳을 채울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비영리 섹터가 필요한건데 공공이나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을 비영리섹터가 하는거죠. 기부를 받고 지원을 통해 정부가 못하는 빈곤과 차별을 퇴치한다는 겁니다. 예일대는 그런 이론적인 기반을 제시했던 곳이고 내가 공부한 것도 그거예요.

단적인 인물이 루즈벨트예요. 루즈벨트는 굉장한 정치명문가에서 태어났어요. 그런데도 사회양극화를 해소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아 대공황이후 4선을 하며 중산층을 세워내죠. 그 당시 세율이 80% 가까이 돼요. 최고 기득권층에서 태어난 사람이 부자들이나 기득권층에게 무거운 도덕적 인내를 요구했고 그 힘으로 미국이 통합되고 대공황을 극복하고 양극화가 해소되고 빈부격차가 줄어들었어요.

누군가 그래요. 당신은 은수저 물고 태어난 거 아니냐고. 맞습니다. 인정하는데, 그 은수저로 나만 퍼먹고 살 것인지 그걸로 남들과 함께 나누는데 쓰는지 이 차이지요. 난 후자의 생각으로 살고 싶습니다.

김: 전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진 않았는데 누군가 은수저를 푹 꽂아놓고 갔어요. 후천성 오렌진가요? 은수저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에 100% 공감합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나 한나라당이 펴는 정책은 의원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네요.

남: 그렇습니다. 그래서 대기업 감세나 고소득층 감세 이런 부분은 효과가 없어요. 최근 대기업이 고용 안하고 돈만 쌓아놓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도 예측가능한 시스템과 법치로 해야 해요. 전봇대를 뽑는 게 당장의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법으로 시스템화 해야죠. 그래야 시장도 예측이 가능한데. 솔직히 지금 기업들 굉장히 혼란스러울거예요.

법과 제도가 정비되고 그게 기반이 된 이후에 정치적인 메시지도 던져야하는건데 특정인의 말 한마디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시장상황이라면 그 시장에 참여한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예측 가능한 시그널(신호)을 시장과 사회에 줘야하고 이건 사회안정으로 이어지는거죠. 이게 보수가 추구해야할 가치입니다

전 어떤 정책을 펴든 자기 신념에 따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봐요. 이렇게 하다가 저렇게 하다가 손바닥 뒤집듯 하는것이 포퓰리즘인거죠.

김:

연애와 바람 같은 거네요.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다양한 이벤트도 만들어보고 그 상대가 좋아할만한 것을 만들어내는 게 전자라면

더 예쁜 여자가 나타났다고 그쪽으로 마음을 쏟는 것은 표를 얻기 위해 자기 철학과 신념을 바꾸는 후자에 해당하는거죠.

남: 그렇죠. 새로운 정치적 품목이 나타나면 또 그쪽으로 움직일거예요. 궁극적으로 모든 대상에게 피해를 끼치는거죠. 하여튼 제동씨 비유는 정말 기가 막혀요. 남: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양극화예요. 지금은 루즈벨트 시대의 양극화와는 비교가 안돼. 신자유주의 받아들이고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전국민이 불안감을 느껴요. 이 불안을 어떻게 해소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죠.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이 자영업자의 몰락과 청년실업이에요. 자영업자는 중산층이던 사람이었는데 이들이 빈곤층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자산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기초생활수급대상자도 안돼요.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다는거지. 150만명씩 양산된다는데 엄청난 사회적 불안요소가 될 수 있는거예요.

한나라당 입장에서도 지지층이 급속히 몰락하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걸 어떻게 해결할건지가 문제죠. 제 생각엔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 공공서비스를 하는 것이 필요해요. 수화통역사나 국가가 고용하는 간병인 등이 사례가 될 수 있죠.

전 정부에서도 이런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논의는 이뤄졌지만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뭘로 채울 것인지는 아직 연구가 많이 안됐어요.

청년실업의 심각성은 대부분 청년이 경쟁에 끼어보지도 못한 채 낙오자로 전락했다는 거예요. 이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죠.

불안은 희망의 반대말이지만 지금 계층의 문제는 체념의 단계에 있다는 점이죠. 체념이 되면 완전히 사회로부터 격리돼 망가진 삶을 살든지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형성될 수도 있다는 거예요. 두려운 거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방법을 모색해 대안을 내놔야 해요. 결국 사회불만세력이 될 수 밖에 없는거죠.

김: 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내 주변 아이도 행복해야하는거죠.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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