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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계약 다음 날의 로저스 센터

그러고 보면 한국에 있을 때도 프로 스포츠들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심지어 1998년 월드컵이 끝나고 국내 축구 리그 인기가 갑자기 높아졌을 때에는 전북 현대 다이노스(그렇다 당시 팀 이름은 '다이노스'였다)의 써포터즈 활동까지 했었다. 내가 그 팀을 좋아했던 이유는 오직 하나, 당시의 전북은 전혀 인기가 없었던 팀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전북 현대 '모터스'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아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1997년 혹은 1998년, 신문에서 전날 경기 결과를 보니 전북 현대가 이겼는데 관중수는 겨우 800명 정도였다(사실 기억이 하나도 정확하지 않다. 원래 기억에는 박성배 선수가 해트트릭을 했는데 관중수도 너무 적고, 언론의 관심도 못 받았다고 기억을 하고 있었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는 98년에 프로에 데뷔를 했고 해트트릭을 기록한 적이 없다). 원래 사람들은 좀 못하거나 인기가 없는 팀(언더독)을 동정하기 마련이니 나도 그때부터 전북 현대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전북 현대 출신의 대표 공격수들 김도훈(좌), 박성배(우)(내가 응원했을 당시 김도훈은 전북에서 뛰지는 않았다). '흑상어' 박성배는 얼굴로 축구를 했던 형님이다. 오랜만에 위의 사진을 찾을 수 있었는데, 보자마자 20년 전 봤던 사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1998년 월드컵 이후 본격적으로 K리그의 열기가 달아올랐을 때 전북 현대 써포터즈에 가입하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도대체 그 당시 어떻게 서울에서 전북의 써포터즈에 가입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당시 넷츠고(이것을 기억한다면 적어도 30대 후반일 듯)를 사용했으니 PC통신을 통하여 가입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리하여 수도권에서 전북 현대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경기장을 찾아가고는 했다. 내 기억에 목동, 안양 경기장 등을 가보았는데 한 4~5번 정도 가지 않았나 싶다.

아직도 서울 부모님 집에는 당시 전북을 응원하면서 입었던 녹색의 유니폼(저지라고 해야 할까나)과 머플러가 있다. 그리고 써포터장(長)님이 응원가를 연습하라고 주신(혹은 돈 주고 샀을까?) 전북 현대 써포터즈 응원가 테이프도 있다. '올레 올레 올레 전북', '오 오 레 레 오 오 레 레', '포르자 전북 에프씨' 이런 풍의 응원가가 나온다. 오랜만에 듣고 싶어 진다.

그런데 당시 전북은 기본적으로 인기가 없었던 팀이었던 데다가 수도권으로 원정을 오면 그나마 있던 써포터즈들도 거의 보이지 않아 겨우 10명 남짓이 모여 응원을 하였다. 한 번은 써포터장님이 나에게 (응원하는 사람이 너무 적으니) 다음번에는 친구들도 데려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다음 경기에 친구들을 데리고 갔다. 사실 내 기억에는 내가 응원을 갔던 대부분의 경기에서 졌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친구들을 데리고 간 경기에서도 형편없이 지고 말았다. 아마 3-0 정도로로 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써포터즈는 열심히 응원을 하였다. 응원을 하면서 누군가 써포터즈가 마침 11명이니 혹시 선수들이 끝나고 유니폼을 던져줄 수도 있지 않을까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응원을 했으면 경기에 졌더라도 선수들이 써포터즈에게 인사라도 하고 갈 법 한데 그냥 인사도 없이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전주에서 올라오신 형님들의 분노가 폭발해 버렸다.

'야 이 XXX 같은 놈들아, 내가 다시 너네 응원하나 봐라'

하면서 온갖 쓰레기를 집어던졌다. 내가 이것을 기억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 마침 이 경기에 친구들을 데려갔기 때문이다. 나중에 친구들이 이 팀은 써포터즈들도 욕하더라라면서 비웃었다(부인을 할 수 없어서 왠지 슬펐다). 아무튼 그 이후로 자연스럽게 고2, 고3이 되면서 경기장에 가볼 시간이 없어져서 나의 짧았던 써포터즈 시절은 끝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고 캐나다에 살게 되면서 사스카추완에 살 때는 풋볼팀인 사스카추완 러프라이더스(Saskatchewn Roughriders) 경기도 꽤나 많이 봤고, 온타리오에 살면서는 하키나 농구도 보게 되었다. 특히나 가까운 지역의 팀들이 포스트 시즌에 올라가면 열심히 봤는데 작년 토론토 랩터스가 NBA에서 우승할 때가 아주 재미있었다.

토론토 랩터스와 북미의 스포츠라는 글에서도 언급을 하였지만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이렇게 자기 지역의 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것이 문화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모든 것에는 때가 있어서 때를 놓치면 다시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앞으로 다시 토론토 랩터스가 NBA 우승을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며,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메이저리그를 우승한 것은 롯데 자이언츠가 우승을 했던 1992년 그리고 그다음 해인 1993년이 마지막이다. 게다가 캐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한다는 하키의 경우에는 심지어 캐나다 팀이 우승을 한 것도 1993년 몬트리얼 캐네디언스가 마지막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류현진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것은 평생에 한 번 있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년 동안 잘하면 좋겠지만 혹시나 부상을 당하거나, 아니면 팀이 거지같이 못해서 3~4년 후에 그를 트레이드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언제까지 블루제이스에서 뛰는 류현진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 잘 봐 두어야 한다.

마침 류현진이 블루제이스 입단식을 한 2019년 12월 27일 우리 가족은 토론토에 있었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우연히 호텔 로비에 있는 TV를 보았는데 현지 언론에서도 관심이 있는지 곧 입단식을 할 것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내가 묵는 호텔에서 블루제이스의 홈 경기장인 로저스센터까지는 겨우 30분 정도 거리니 당장이라도 가보고 싶었지만 간다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니 뭐...

12/27일 토론토 지역 방송 화면

다음날 아침을 먹다가 TV를 보니 류현진 이야기가 또 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꽤나 큰 계약이니 관심들이 좀 크긴 한가 보다.

12/28 아침 스포츠 채널에서 나오는 류현진 소식

그래서 이대로 킹스턴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쉬워 집으로 가기 전 로저스센터에 들려보기로 했다. 벌써부터 류현진 상품이 나와있을까 싶었지만 적어도 사진이라도 붙어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로저스센터 외관 모습

로저스센터 내부 모습. 올해에는 꼭 들어가서 경기를 봐야한다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2020년 경기 스케쥴

로저스센터 5번 Gate에 있는 Jays Shop

토론토에 가더라도 보통은 다운타운까지 내려가 보지는 않는데 이번에는 큰 마음을 먹고 내려가 보았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차가 많이 막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필이면 블루제이스 관련 상품들을 파는 Jays Shop이 연말이라 문을 닫았다는 것이다!

망할 거기까지 갔는데!!

그것 말고도 아직까지는 로저스센터 그 어디에서도 류현진과 관련된 마케팅의 흔적을 찾아 볼 수는 없었다. 계약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연말이라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Jays Shop이 열였어도 류현진 관련 상품은 나와있지 않았겠지라고 혼자 생각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와이프가 토론토 관련 카페에서 보니 토론토 이튼센터에 있는 Jays Shop에는 벌써 류현진 저지가 나와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Boxing Week라고 40% 세일까지!! 처음부터 그곳으로 갔어야 했는데 매우 아쉬웠다(가기 전에 인터넷에서 문을 여는 시간을 확인하고 간 것인데 그 어디에도 휴무 정보는 없었다).

아무튼 류현진 계약에 대한 현지 (일반인들의) 반응은 대충 다음과 같다고 생각된다.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오랜만에 큰 계약을 했는데 일반인들은 그 선수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분위기이다. 왜냐하면 류현진이 그동안 뛰었던 다저스와 블루제이스는 리그도 다른 데다가 (NL vs AL) 지구도 너무 달라서 (서부 vs 동부) 만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2002년 이후 총 21번을 맞붙었을 뿐인데 가장 최근이었던 경기가 2019년 8월 LA 원정 경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뭔가 엄청난 계약을 했으니 분명 대단한 선수인 것은 같은데 잘 모르겠고, 그래서 뉴스나 신문에서는 류현진에 대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끝으로 다음은 캐나다 전국지에 실린 류현진 기사이다. 토론토 지역지를 보면 좀 더 많은 기사가 있을 것도 같은데 호텔에서 주는 신문이 이것 하나라... 아무튼 현지에서는 (당연히) 류현진이 2020년 3월 26일 보스턴과의 홈 개막전(위의 스케줄표 참고, 2020/3/26 3:37 PM)에 선발 등판하는 것을 기정사실로 생각하는 분위기이다. 매우 가보고 싶지만 개막 선발전은 항상 매진이 되는 경기라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에는 안 좋을 것 같다. 시즌 중반 평일에 사람이 없을 때를 잘 노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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