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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날두 Full스토리 (포르투갈 축구 전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아직도 전설은 현재진행중인 챔피언스리그 최다 득점자, 프리미어리그 라리가를 정복하고 세리에A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가는 포르투갈 역대 최고의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입니다.

1985년 2월5일 호날두는 마데이라 제도의 한 작은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정형편이 썩 좋지못했던 호날두는 알콜중독에 걸린 아버지와 약에 취한 형으로 가족을 먹여살린것은 호날두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가 벌어온 약80만원으로 한달을 5명의 가족이 버텼고, 이런 어머니를 보며 호날두는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고, 호날두가 축구가 하고 싶다고 하자 축구클럽을 찾아준 것도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려운 환경에 축구를 시작해야 했던 어린 호날두는 지역팀중 가장 가격이 저렴한 "안도리나"라는 클럽에서 8살때부터 축구를 시작합니다. 가난한 형편을 놀린 동료들은 그에게 패스조차 하지 않으려했고 심지어 놀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호날두는 참고 또 참았습니다. 심장병 수술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호날두는 12살이 되던 해 당시 소속 유스클럽이었던 "나시오날"을 우승시켜 기세등등하게 벤피카 유스에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가지만 신장 미달로 아쉽게 탈락하고 라이벌 팀이었던 스포르팅으로 입단을 합니다.

처음 입단 당시 호날두는 적응이 느렸고, 유스팀 초반에 많이 울기도 했다고합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아야 하는 어려운 환경에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악물고 뛴 호날두는 스포르팅에서 점차 성장 하기 시작하고 프로 데뷔까지 치루게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자신이 다른 리그 감독이라고 말한 그는 자신의 팀으로 호날두를 데려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팀은 당시 세계 최고의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였고 직접 전화를 건 사람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 이었습니다.

곧장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 호날두의 첫마디는 "엄마 이제 청소일 그만둬도 되요" 였다고 합니다. 때론 청소일을 하던 어머니가 부끄러웠던 호날두와 어머니는 통화를 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후로도 스타가 된뒤 변했다라는 말이 싫어서 훈련이 끝나고도 집에 가지않고 마지막까지 남아 훈련을 하는 등 지독한 연습벌레가 되었습니다.

천재소년에게 노력이 곁들여 지자 엄청난 성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호날두에 대한 소문은 이미 스카우터들 사이에서도 유명했습니다. 레알이나 바르셀로나도 호날두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각각 베컴과 호나우지뉴를 영입한터라 어린 호날두에 큰 욕심은 없는 상태였습니다.

어린선수 욕심으로 유명한 아르센 벵커 감독이 호날두를 노렸고 심지어 아스날의 훈련장을 두번이나 초대 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때 티에리 앙리를 만나게 되지만 결국 돈이 없었던 아스날은 맨유와의 영입경쟁에서 멀어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벤투스 또한 호날두 영입을 위해 살라스를 내주기로 했으나 맨유와의 친선경기에서 엄청난 활약을 본 퍼거슨 감독이 빠르게 이적료 178억을 제시해 맨유로 데려오게 됩니다.

베컴을 내보내고 18살의 호날두를 데려온 맨유는 단박에 7번을 부여합니다. 하지만 경기에서 팀원들과의 호흡은 내버린채 개인기에 의존해 혼자 축구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 "혼자우도"라는 별명 을 얻게됩니다.

호날두의 맨유 초기 모습을 돌이켜 보면, 그도 처음부터 완벽한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유로 2004에 혜성같이 등장해 포르투갈에 활력을 불어넣어준 테크니션이었지만, 화려 하기만한 드리블과 부정확한 클호스가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2004/2005 시즌 초반 51번의 크로스 중 단 1개만 도움을 기록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체력 안배에 서툴렀고 퍼거슨의 전술에도 부합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팬들은 퍼거슨 감독을 믿었고 어린 호날두를 더 지켜보자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언론의 비판에 대해서 "내가 본 최고의 유망주다, 앞으로 세계 축구는 호나우딩요, 루니 그리고 호날두가 이끌어 나갈것이다" 라고 호날두를 감싸주었습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호날두의 아버지가 지병으로 사망합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용의 노래를 만든적이 있었는데, 호날두가 직접 가사를 쓰고 가수인 누나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호날두는 브라질의 호나우두와 혼동을 막기위해 "씨날도" 혹은 "로날도" 라고 칭했습니다.

호나우도 라고 하면 곧잘 게시판에서 싸움이 나곤 했습니다. 2006년 9월이 되서야 "호날두"라는 지금의 표기로 불리기 시작 했습니다. 한편 2006독일 월드컵에서 맨유 팀동료인 루니의 반칙을 고자질 하는 장면으로 난리가 납니다.

루니는 호날두에게 어떻게 니가 그럴수 있냐며 밀치면서 화를 냈고 이후 루니와 호날두의 관계가 악화될것으로 보였으나 월드컵이 끝나자 다행히 둘의 악감정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아무튼 포르투갈과 잉글랜드의 8강 경기는 호날두의 마지막 승부차기 골로 포르투갈이 4강으로 올라갔습니다.

4강에서 비록 프랑스에 덜미를 잡혔지만, 호날두 본인에겐 월드컵을 통해 엄청난 자신감을 가지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2006년 잠재성이 터지면서 2006/07시즌 53경기 23골 19어시라는 괴물스탯을 찍기 시작합니다.

맨유 초기의 대공황 크로스는 사라지고 공격수에 딱맞는 크로스를 올렸고 프리킥 능력도 일취월장 합니다. 시즌 초기부터 팬들은 호날두에 대한 기대가 커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빠른 성장세 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챔스에서 멋진 활약을 했지만, 4강에서 AC밀란을 만나 가투소, 네스타에게 봉쇄 당했고 그해 발롱도르도 카카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2007/08 시즌 퍼거슨은 호날두를 오른쪽 공격수로 두었지만, 프리롤을 부여해 맘껏 뛰어 다니게 만들었고 리그에서만 31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오릅니다.

시즌 전체는 무려 42골이었습니다. 맨유 역대 윙어중 호날두보다 더 많이 단일 시즌 골을 기록한 이는 데니스로 뿐이었습니다. 최전방 공격수가 아닌선수가 리그에서 30골을 넣는 경우도 10년이 흐른 지금 EPL에서 모하메드 살라가 유일합니다.

호날두는 2008년부터 특유의 탄력을 이용해 헤딩골을 작력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까지 커리어 총5골에 불과했던 헤딩골이 2008년 한시즌에만 무려 9골이 터졌습니다. 호날두가 그해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넣은 골도 머리로 넣은 것이었습니다.

첼시와의 결승 승부는 승부차기에서 승리를 하긴 했지만, 정작 호날두는 실축했기 때문에 맘고생을 심하게 했습니다.

우승이 확정되자 호날두는 그라운드에엎드려 펑펑 울었습니다. 이렇게 23살에 발롱도르, 챔스 득점왕, 피파 올해의 선수를 싹슬이한 호날두는 월드클래스로 올라섰습니다.

다음해인 2008/09 시즌에도 26골 9도움을 올리며 맹활약을 했지만, 저번 시즌의 임팩트가 너무 강렬한 나머지 팬들에게 비판 아닌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2009년 레알의 페레즈 회장은 새로운 갈라티코를 구상했고, 그 구상안에 호날두가 포함되 있었습니다. 카카의 이적이 있고 난 2일후 레알은 호날두 영입을 발표 합니다. 이적료은 1600억원, 맨유로 갈때 178억 보다 9배에 이르는 가격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팬들은 호날두보다 카카에게 기대를 더 많이 했고, 이런 거품 가격을 주고 데려와야 하냐며 호날두 욕을 많이 했습니다.

한달뒤 벤제마가 합류했고, 다시 한달뒤 사비 알론소가 레알에 오면서 갈라티코가 위용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2009/10 시즌 26골을 넣으며 라리가 적응 기간을 마친 호날두의 본격적인 골사냥이 터진것은 다음해인 2010/11 시즌이었습니다.

34경기에서 40골을 넣은것인데 이 득점은 라리가 최다 득점 기록 갱신이었습니다. 시즌 말미였던 5월 36라운드 헤타페와의 경기 중 수비를 하던 호날두는 공을 강하게 걷어냅니다. 그런데 관중석으로 향한 공에 한 남성 관중의 코가 깨지는 부상을 입게됩니다.

호날두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관중석으로 향했고 팬에게 자신의 유니폼을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사과의 뜻으로 포옹과 함께 사진 촬영도 하는 등 아낌없는 팬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신계에 입성하고 난뒤 첫 월드컵이었던 남아공 월드컵에서 주장완장을 차고 겨우 유럽 지역예선을 뚫고 본선에 올랐지만, 하필 브라질, 코트디부아르, 북한과 같은 조가 되어 험난한 길이 예상되었습니다.

호날두는 이 대회에서 포르투갈이 기록한 7골 중 단 1골밖에 넣지 못했지만 세경기나 최우수선수에 선정될만큼 최고의 경기력을 펼쳤습니다. 16강에서 당시 그 어떤팀도 막을수 없던 스페인을 만나 무기력하게 패하지만 않았다면 16강 그 이상을 바라봤을 지도 모릅니다.

호날두를 대표하는 번호 7번은 원래 레알에서 라울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라울이 2010년 여름 레알을 떠나면서 7번은 자연스레 호날두의 등번호가 되었습니다. 호날두가 전문적인 골잡이가 되기전 아마도 이때가 마지막 드리블러 시즌 이었습니다.

2010/11 시즌 호날두는 라리가 역대 최다 득점인 40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코파델레이 우승까지 차지했지만, 메시가 챔스, 리그를 모두 재패했기 때문에 다소 가려진감이 있었습니다. 2009년부터 촉발된 호날두 메시의 득점 경쟁은 이시기 절정을 향해 달려 가고 있었습니다.

2011/12 시즌에서 호날두 본인이 38경기 46골로 경신했지만, 리오넬 메시가 50골로 역대 신기록을 달성하고 득점왕을 탈환 하였습니다.

46골을 넣고도 득점왕이 안되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2012/13 시즌도 호날두에게 불운의 해였습니다. 일각에서 절정의 폼에 올라와 있으니 메시의 4년연속 발롱도르 독주를 막을것처럼 보았습니다.

그러나 챔스 준결승전에서 그만 골득실로 도르트문트에게 발목을 잡히며 결승진출을 실패합니다. 시즌 막바지에 열린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도 팀이 2 : 1로 역전패를 당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게됩니다. 여러모로 꼬인 해인데 프로데뷔 첫 자책골을 넣은건 덤이었습니다.

2013년 레알은 우승 트로피를 한개도 들어올리지 못했지만 호날두는 한해동안 69골을 넣으며 변함없는 득점력을 발휘했습니다. 포르투갈의 월드컵 진출에도 크게 기여해 플레이오프에서만 4골을 퍼부었습니다.

2013/14 시즌 전시즌의 악몽을 벗어나고자 호날두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미친활약을 선보이는데 팀을 결국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올려놓았습니다. 챔스 11경기 17골 5어시라는 개인 성적과 더불어서 시즌 47경기 51골 15어시를 기록합니다.

레알 역대 10번째 챔스 우승을 견인하며 생애 세번째 발롱도르를 수상 하는데 성공합니다.

2014/15 시즌 각종 레알에 있는 기록들을 갈아치운 해였습니다. 라울이 가지고 있던 챔피언스리그 최다골 기록을 넘어섰고 리그에선 메시가 세운 한시즌 최다인 73골을 넘어선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지만, 온갖 악재가 겹치면서 슬럼프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앞서가던 시즌 전체 득점, 리그 득점 모두 메시에게 따라잡혔고, 팀 성적 역시 무관으로 마무리합니다. 개인적인 기록인 61골은 자신의 시즌 커리어 하이였지만, 팀성적이 안좋아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2015/16 시즌 후반기에 닥친 기복이 더 크게 작용해서 레알 입단후 최초로 4경기 연속 무득점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물론, 리그에서 침묵하는 와중에 챔스에서는 골 폭풍을 이어갔으니 노쇠화를 논하기는 일렀지만, 슬럼프에 빠졌다는 말들이 나왔고 리그 초반 에스파뇰전에서 한경기 5골을 터뜨리면서 프리메라리가 230골을 기록했지만, 10월 부터 공격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현저히 폼이 줄어들었고 슛팅 대비 골수도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메시가 부상 중일때 급격히 치고올라갔다면 발롱도르를 노릴법 했지만, 호날두의 폼이 살아나기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결국 베니테즈 감독이 해임되고 새롭게 지단 감독이 시즌 중반 교체되자 호날두가 다시 날아 오르기 시작 합니다.

2016년 4월3일 엘 클라시코에서 후반 막바지 멋진 가슴 트래핑 후 침착한 마무리로 팀의 결승골을 득점합니다. 겨로가는 레알 마드리드의 2 : 1 승리. 이 골로 강팀과의 경기에선 골을 넣지 못한다고 "양학기계" 라고 까던 안티들을 침묵하게 만들었습니다.

리그에선 비록 준우승에 그쳤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생애 4번째 결승무대를 밟으며 아틀레티코를 꺾고 우승해서 커리어 3번째 우승을 차지하게됩니다.

리그 득점왕은 수아레즈에 밀려서 2위였지만, 챔스에서는 4년 연속 득점왕을 확정 지었습니다.

더불어서 6시즌 연속 50골이라는 미친 기록을 세웠습니다. 호날두는 19살때 부터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으로 많은 국제대회를 경험했지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어렵게 오른 2014브라질 월드컵도 오로지 호날두만 바라보는 전술에 상대팀은 대응하기 쉬었습니다.

그리고 6전7기 만에 만난 유로 2016에서 자신이 바라던 메이저 국제대회 첫 우승을 차지합니다. 대회 초반 독일, 프랑스, 스페인,잉글랜드와 같은 강팀들이 주목받던 와중에 포르투갈은 우승 전력이라는 평가를 받지 못했고, 실제로 조별 리그에서의 경기력은 그렇게 좋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포르투갈은 우승을 차지 했고, 주장인 호날두는 3골 3도움을 기록, 팀내 최다 득점과 도움을 만들어내며 우승에 공헌합니다. 결승전 불의의 부상으로 눈물을 흘리며 실려간 호날두는 압박 붕대를 한 채 주장답게 벤치에서 동료들을 더욱 열렬하게 응원했고, 마지막 몇 분동안은 아예 감독으로 빙의하다시피 할 정도로 독려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지난 13년간 서러웠던 국가대표시절을 환호의 눈물로 바꾸며 국대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호날두 축구인생 중 이렇게 우승을 좋아한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우승상금으로 받은 약3억4천만원을 모두 어린이 암센터에 전액 기부합니다.

from http://ssgyoo.tistory.com/219 by cc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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