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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 데이'는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입니다

2월 14일(발렌타인 데이)은 연인들의 날입니다. 누가 정했는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모르는 기념일이지만 2월 14일이 되면 여성은 초콜릿을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합니다.

하지만 발렌타인 데이의 진짜 의미는 '초콜릿 선물'이 아닙니다.

이날은 안중은 의사의 사형선고일입니다. 한국인이라면 꼭 기억해야할 날입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은 연인들의 대표적인 기념일인 발렌타인 데이와 같은 날이어서 대중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의거일과 서거일은 잘 모른다고 판단하고 카드뉴스를 만들어 배포했다”고 밝혔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한 혐의로 체포됐습니다. 이후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선고 받습니다.

경찰에 붙잡히면서도 안중근 의사는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습니다. 일본 뤼순 감옥에 갇혀 옥중 고문을 당하면서도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론'을 집필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혈서

안중근 의사는 사형선고를 받고 42일만에 3월 26일 순국했습니다.

일본은 안중근 의사의 정확한 매장지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장지를 찾을 수 없었고, 현재까지도 공식적인 유해가 묻힌 곳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생전 독립운동에 투신했습니다. 1904년 평양에서 석탄 장사를 하던 그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뒤 독립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삼흥학교를 세웠으며 돈의학교를 인수해 교육에 힘썼습니다. 1907년에는 연해주로 건너가 의병에 가담했습니다.

이후 1907년 고종의 헤이그 특사 사건 후 강제 퇴위를 당했습니다. 군대 해산 후 전국적 의병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그때부터 노선을 바꾸죠. 독립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어 그는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라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체포되어 처형되기까지 재판과저이나 재판소 내 어떤 기세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를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내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 15가지'를 말했습니다.

안중근의 마지막 유언은 지금도 대한민국 후세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더보기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르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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