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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현&지민 망언 논란
설현 지민과 안중근 긴또깡.. 김경천 김일성과 김성주..
AOA 설현과 지민이 안중근 의사를 보고 ‘긴또깡(김두한의 일본이름)’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안창호’라고 말했다.
설현이 SNS를 통해 사과 글을 게재했다.
“역사인식에 대한 저의 인식 부족으로 인해 불쾌감을 느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역사에 대해서 진중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반성하고 있습니다.”
지민도 사과 글을 게재했다.
“안중근 의사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만이 아니라 그 분을 장난 끼 태도로 대했습니다. 저의 이번의 잘못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덮어줄 수가 없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무지야말로 가장 큰 잘못임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비난 여론이 거세기만 하다.
“역사 인식 자체도 문제지만 장난스럽게 위인을 대한 점은 사과하고 반성으로 덮어줄 일이 아니다.”
안중근은 1879년에 태어났다. 아버지가 도지사의 요청으로 의병을 조직하여 동학군 진압에 나섰을 때 그가 16세였는데 이 작전에 참가하였다. 동학군은 그때는 반란군이었지만 오늘날은 한국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군으로 보고 있다. 안중근의 아버지야 이해해줄 수도 있지만 안이 16세 나이에 그 혁명군과의 싸웠다는 점은 그래줄 수가 없다.
안중근은 1907년에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장이 되면서부터 반일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였다. 이해 7월에 한일신협약이 체결되었다. 이에 안이 북간도로 망명하였다. 이후 러시아 연해주로 가서, 일본군과 싸울 의병을 모집했다. 1908년 6월에 국내로 진공했다. 함북 홍의동과 경흥에서는 이겼지만 희령에서는 참패했다. 1909년 3월에 김기룡, 엄인섭, 황병길 등과 '단지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안중근, 엄인섭은 이토를, 김태훈은 이완용을 암살시키기로 했다. 3년 이내에 그 일에 성공하지 못하면 자살로 국민에게 속죄하기로 했다. 10월에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에게 권총을 발사하여 3발을 명중시켰다.
해방 후에 한국사회에서 네 살 먹은 아이도 안중근은 알았다. 그런데 필자가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교과서에 안중근은 안 나오고 안창호만 나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후자를 전자로 보았다. 그러나 교과서의 그 글을 자세히 읽어보니까 그것이 아니었다. 필자는 본래 무인기질의 인간이라 교과서에서 안중근을 소홀히 하고 안창호를 중요시하는 데에 불만이 컸다. 안창호는 역사책에 나올 뿐만이 아니라 국민윤리책에도, 국어책에도 나왔다. 이 사람이 '안중근이 이토를 사살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는 필자가 안창호를 형편없는 독립운동가로 여겼다(그시대에 안창호, 이승만은 암살, 테러로 독립운동을 하는 것에 반대했다.).
안중근의 독립운동으로 내세울만 것은 이토를 암살했다는 것 한 가지 밖에 없다. 따라서 전자에 대하여 중고등학생들에게 소홀히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필자 같은 늙은 세대야 안중근을 잘 알 수 있지만 설현과 지민 같은 젊은 세대는 그렇게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보아야만 한다. 그렇기는 하지만 설현과 지민이 안중근 보고 ‘긴또깡’이라고 한 것은 너무 한 것이었다.
설현과 지민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장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공부를 할 것 같다. 아래의 그림은 두 여자의 그 공부를 도와주기 위하여 올린 것이다. 이 그림은 한국역사 최고의 민족영웅인 김일성(김경천) 그림이다. 이 그림을 보고 김일성(김성주)이라고 하는 것은 안중근 보고 '긴또깡'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위의 그림은 5000만 한국인 집단무의식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화가가 자기 가슴속에 있는 것을 그려냈다고 볼 수가 있다. 얼굴만 다르게 그렸을 뿐이다.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에 새겨진 김일성은 흰머리, 흰수염의 인물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1988년생인 김일성인 1940년대에 만주, 백두산에서 활약했기 때문이다. 위의 그림을 그린 화가가 김성주를 연상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 김일성의 얼굴과는 다르게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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