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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혁] 끝판대장 돌직구 오승환을 파헤쳐 봅니다.

끝판대장 돌직구 오승환을 파헤쳐 봅니다.

오승환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이자, 메이저 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투수이다.

2005년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순위(전체 5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고, 대표적인 전문 마무리 투수이다. 2005년 한국시리즈 3경기에 등판하여 7이닝 무실점, 11탈삼진, 평균 자책점 0.00의 완벽한 마무리 능력을 보이며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2006년 10월 1일 현대전에서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47세이브를 기록,[1]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 한신 타이거스 소속 후지카와 규지와 주니치 드래건스 소속 이와세 히토키가 공동으로 가지고 있던 아시아 통산 최다 세이브인 46세이브를 경신하였다. 2007년 9월 18일 KIA전에서 최단 기간 100세이브를 올렸는데, 프로 데뷔 이후 3년 180경기 만이었다. 투구를 할 때 얼굴 표정에 전혀 변화가 없다고 하여 '돌부처'라는 별명이 있다.[2] 2012년 7월 1일 넥센전에서 전 LG 투수 김용수의 KBO 리그 개인 통산 최다 세이브 기록인 227세이브를 넘는 228세이브를 달성했다.[3]

출신 학교

서울도신초등학교

우신중학교

한서고등학교 (팔꿈치 인대 파열로 전학)

경기고등학교

단국대학교

고등학교 시절

서울 서울도신초등학교와 우신중학교를 거쳐 한서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로 이름이 나 메이저 리그 스카우터들의 관심도 얻었지만, 팔꿈치 인대가 파열되는 악재를 겪게 된다. 이후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고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경기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팀 내에서 주로 1번 타자와 외야수로 활동했다.

단국대학교 시절

오승환은 전국 대회에서 타자로서 별다른 활약을 보여 주지 못한데다, 팔꿈치 부상 경력도 있어 프로 팀과 대학 팀의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단국대학교의 강문길 감독은 고등학교 초기 오승환이 뛰어난 투수였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투수로서의 자질을 인정한 강문길 감독은 오승환에게 단국대학교에 입학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단국대학교 1학년 때 오승환은 갑자기 팔꿈치를 다쳐 그해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4] 재활은 쉽지 않았다. 3학년이 되어서야 제한적이나마 2이닝씩 투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오승환의 마무리가 시작되었었다.[4] 재활에 더욱 매진한 그는 3학년 때 시속 138km에 머물던 구속을 졸업할 무렵에는 148km가 넘게 끌어올렸다.[4]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05년 신인 드래프트와 프로 첫 시즌

2005년 2차 1순위 지명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지명 순위는 전체 5순위였다. 삼성 라이온즈보다 상위 지명 순위를 가진 네 팀은 모두 고졸 선수를 지명했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는 단국대학교 졸업 예정인 오승환을 지명했다. 경기고등학교 때부터 잘 알려진 선수도 아니었고, 단국대 시절 팔꿈치 수술을 받는 등 두 번의 수술 경력이 있는 투수를 지명한다는 것은 다소 모험이었다. 이러한 삼성 라이온즈의 생각과는 달리 오승환은 자신은 삼성에서 제시한 계약금보다 더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더 많은 돈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투수였다. 2005년 시즌 개막 후 처음 맡은 보직은 중간계투였다. 그해 7월 원래 마무리 투수였던 권오준이 부진에 빠지자 팀은 오승환에게 마무리를 맡기고 권오준에게 셋업맨을 맡겼다.(이로 인하여 K-O 펀치라는 신조어가 생겨난다.) 이후 신인답지 않게 마무리 투수로서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데뷔 첫 해인 이 해에 그가 이룩한 성과는 놀라웠다.그는 61경기에 출장해 10승 1패 11홀드 16세이브 평균자책점 1.18을 기록했다. 신인왕은 그의 차지였다. 여기다 한국 시리즈 MVP까지 되었다. 신인왕과 한국시리즈 MVP를 동시에 차지한 선수는 아직까지 그가 유일하다. 신인왕 수상자로는 삼성 라이온즈 선수 중 3번째 선수였다. 동시에 그는 KBO 리그 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승리, 세이브, 홀드 모두 10개 이상을 기록한 선수가 되기도 했다. 다만 이 해에는 권오준과 교대하여 시즌 중반부터 마무리를 맡았기 때문에 두산 베어스 투수 정재훈에게 구원 1위를 양보해야 했다. (하지만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구원 1위를 차지한다.)

2006-07년 시즌의 눈부신 활약

데뷔 2년차인 2006년 오승환은 63경기에 나와 4승 3패 47세이브 평균자책 1.59를 기록했다. 47세이브는 진필중이 갖고 있던 한 시즌 최다 세이브(42) 기록은 물론이고 주니치 드래건스 마무리 투수 이와세 히토키가 2005년에 세운 한 시즌 최다 세이브(46) 기록을 깬 아시아 신기록이었다.[4] 2007년과 2008년에도 오승환은 꾸준한 성적을 올려 세 시즌 연속 세이브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그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승리하는 경기마다 등판하는 데에 따른 과부하로 2008 시즌부터 구위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깨 부상과 이어진 부진

2009년 6월 21일 LG와의 더블헤더 2차전 7회말 주자 만루 상황에서 1번 타자 박용택과의 매치업 도중 볼카운트 2-1에서 4구째에 던진 공이 홈런이 되어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오승환은 만루 홈런을 헌납했다. 이 상황 이후 마운드에 글러브를 벗어 집어던지는 모습을 보여 '돌부처' 라는 자신의 별명과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 홈런으로 LG가 8-1로 승리했다. 급기야 어깨 부상을 당하여 시즌을 마감했는데, 프로 데뷔 이후 가장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그를 대신하여 권혁, 정현욱 등이 번갈아 가며 마무리를 맡게 되어 과부하에 걸리는 원인이 되었다.[6] 이 영향으로 2009년부터 2년간의 세이브왕을 이용찬과 애킨스에게 내주어야 했다.

2010년 시즌 부진과 계속된 부상

오승환은 종전 시즌부터 생겨난 부상의 여파가 2010시즌까지 이어지면서 팀 내 부동의 마무리 자리도 넘겨주게 되고, 경기 출장 수가 현저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운드 위에서는 2009시즌과 같은 구위의 저하가 드러났으며, 그는 곧 2년 연속 4점대 방어율로 나타나게 되었다. 시즌 최종적으로는 16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하였으며, 4세이브 방어율 4.50을 기록했다.

2011년 부활

2011년 많은 휴식과 훈련을 한 오승환은 그 해 스프링 캠프에서 이례적으로 강속구인 147km를 찍었다. 그 후 시범 경기에서 5경기 5이닝 2세이브 6탈삼진 방어율 0.00의 성적에, 최고구속 148km로 부활을 알렸다. 이후 첫 정규리그 등판에서 1.1이닝 2볼넷 2탈삼진을 잡으며 첫 세이브를 올렸다. 그 해 5월 7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최소 경기(12경기) 10세이브에 타이 기록을 세웠다. 5월 20일 두산전에서 손시헌에게 초구 솔로 홈런을 맞으며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지만 9회 말 무사 1·2루에서 신명철의 끝내기 안타로 그 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8월 2일 넥센전에서 삼진 1개 등을 잡으며 역대 최소 경기(37경기) 30세이브 타이 기록을 세웠다.(최초 기록 보유자 1994년 정명원, 태평양 돌핀스), 8월 12일 KIA전에서는 최연소(만 29세 28일), 최소경기(334경기) 통산 200세이브를 기록하였으며 이 기록은 최소 경기 200세이브로 세계 신기록을 작성했다.[7] 8월 27일 두산전에서 16경기 연속 세이브를 달성하며 종전 2006년 두산 마무리 정재훈이 가지고 있던 15경기 연속 세이브 기록을 깨며 대한민국 신기록을 달성했다. 9월 10일 LG전에서 1이닝 1실점으로 부진했지만 역대 최소 경기(47경기) 40세이브를 달성했다. 10월 1일 SK전에서 마침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아시아 세이브 타이 기록(47세이브)을 달성했다. 오승환은 2011 정규시즌 두산(3실점, 1블론 및 1구원승), LG(1실점)를 제외한 5개 구단을 상대로 점수를 허용하지 않았다. 또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8회 무사 구원 등판하여 3탈삼진 포함하여 2.0이닝을 막았고, 한국시리즈 5차전 8회 2사 구원등판하여 1.1이닝을 틀어 막으면서 한국시리즈에서는 KS 통산 최다 세이브인 6세이브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3세이브를 올리면서 2011년 한국시리즈 MVP에 올랐다. 2011년 시즌에만 오승환은 최소 경기 10세이브(12경기), 20세이브(26경기), 30세이브(37경기), 40세이브(47경기)를 세웠고 역대 최소경기(334경기)· 최연소(만 29세 28일)200세이브를 달성과 25경기 연속 세이브(연속 경기 세이브 아시아 신기록), KBO 최초의 무패 구원왕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며 2011년에 세이브에 관련된 모든 기록을 깼다. 또 역대 세이브 1·2위간의 최대 격차 기록을 경신했으며 (2위 롯데 김사율과의 격차 27세이브) 이 해 한국시리즈에서는 KS 통산 최다 세이브인 6세이브(종전 기록 선동열, 조용준 4세이브)를 달성했다.

2012년 시즌

2011년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친 오승환은 2012년을 기대하게 했으나, 시범경기 첫 등판부터 무명의 안정광에게 2점 홈런을 맞는 등, 총 3실점하며 시범 첫 경기부터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다. 오승환이 시범경기에서 피홈런을 맞은 것은 5월 20일 두산의 손시헌에게 허용한 이후 2번째였다. 그는 4월 22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등판하여 1/3 이닝 1삼진을 잡아내며 시즌 첫 세이브를 잡아내며 자신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틀 후인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일어났다. 그는, 첫 등판부터 전준우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하더니, 곧바로 김주찬에게 역전 2타점 적시타를 맞으며 총 6실점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이 경기는 삼성이 2:6으로 패하였고 평균 자책점도 10점대로 치솟았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이틀 후인 4월 26일 롯데와의 경기에서는 1이닝 1삼진을 잡아내며 시즌 2번째 세이브를 기록하였다. 그는 5월 8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9회 전준우에게 2루타 2개를 허용하며 6실점이 악몽이 되살아 나는듯 하였으나, 곧이어 조성환을 내야 땅볼로 처리한 다음, 홍성흔과 박종윤을 연속 삼진 처리하며 3세이브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그는 5월이어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하더니, 6세이브를 기록하며 자신의 부활을 알렸다. 그는 6월 두산과의 경기에서 1세이브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타더니, 6월 9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8회에 등판하여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시즌 첫승을 거두게 된다. 그는 6월 말까지 총 6세이브를 기록했으며, 7월 1일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초반 서건창에게 안타를 허용하였으나, 이택근 등을 삼진과 뜬공으로 잡아내며 전 LG 트윈스의 김용수가 세운 통산 227세이브를 넘어서고 228세이브를 달성하게 된다. 7월 12일 열린 LG와의 경기에서는 초반 2실점하여 불안한 모습을 보였으나, 이병규를 삼진으로 처리하며 229세이브를 달성했다. 8월 열린 LG 트윈스와의 2차전 경기에서는 초반 이병규와 정성훈에게 안타와 희생플라이를 허용하면서 2점을 내줬으나, 곧이어 이진영을 삼진으로 처리하며 세이브 2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9월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는 강정호에게 2루타를 맞고 1실점했으나, 오윤과 문우람을 연속 삼진으로 처리하며 다시 세이브를 기록한다. 그리고 다음 열린 LG 트윈스와의 2차전 경기에서는 초반 이병규에게 홈런성 안타를 맞아 흔들렸으나, 흔들리지 않고 다음 타자를 연속 범타로 처리하며 같은시각 프록터가 김태균에 끝내기 2타점을 당함으로써 프록터를 제치고 최종적으로 세이브부문 1위에 등극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2012년 250세이브를 기록할거란 기대를 모았으나 시즌 막판 컨디션 조절등을 이유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 최종적으로 통산 249세이브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2012년 10월 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세이브를 획득해 PS 최다 세이브 타이기록을 세웠다. 이날 경기에서 오승환은 삼성 라이온즈가 2-1로 앞선 8회 초 2사에서 마운드에 올라 SK 와이번스의 타선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으며 PS 최다 세이브 타이기록을 수립했다.

2013년 시즌

2013년 12월 3일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에서 구원투수상을 받은 오승환.

2013년 시즌에도 최고의 활약을 계속해서 보여주었고 특히 2013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는 오재일에게 결승 홈런을 허용하기 전까지는 6타자 연속 탈삼진 기록 타이 포함 4이닝을 완벽히 틀어막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같은 해 11월 22일 2년 9억 엔(한화 94억 5000만원)의 금액에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의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한신 타이거스 시절

2014년 시즌

2014년 일본 프로 야구 진출을 선언하고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한 오승환은 3월 29일 5:3 상황에서 첫 등판을 한다. 일본에서 처음 상대한 타자는 올림픽에서 만난 적이 있는 아베 신노스케였다. 아베 신노스케를 초구 플라이로 잡았지만, 다음 타자인 호세 로페즈에게 8구 안타를 맞았고, 뒤이은 야노 켄지와 하시모토 이타루를 범타처리했지만 1이닝 동안 총 32구를 던졌다. 첫 세이브를 수확한 오승환은 4월 3일 교세라 돔에서 열린 주니치와의 경기에서 등판했으나 일본 프로 야구 첫 실점을 기록했다. 5월 28일 고시엔에서 열린 세이부와의 경기에서 4:5 상황에서 등판했지만, 3실점(비자책)으로 NPB 데뷔 첫 블론세이브와 첫 패전을 기록하였다. 이날 포수였던 히다카 다케시는 오승환과 처음 호흡을 맞췄다. 일본 언론에서는 히다카 다케시가 오승환의 공에 익숙하지 않은 것을 패전의 이유로 꼽고있다.7월 21일 NPB 23세이브이자 한일통산 300세이브를 기록을 했다. 9월 21일 고시엔에서 열린 주니치와의 경기에서 3:3 무승부접전중 9회말 2사에 타자로 나와 1구를 쳐내 내야안타로 프로데뷔 첫안타를 기록했다. 9월 26일 37세이브를 기록하며 일본 센트럴리그 세이브 1위를 확정지었고 9월 27일 38세이브를 기록해 '나고야의 태양' 선동열의 일본프로야구 한국인 최다 세이브 기록을 넘어 오승환은 데뷔하자마자 센트럴리그 구원왕(39세이브 2승4패, 평균자책점 1.76)에 올랐다. 선동열(1996~1999년 주니치)과 임창용(2008~2012년 야쿠르트)도 하지 못한, 한국인 최초의 일본프로야구(NPB) 구원왕으로 39세이브는 외국인 투수 첫 시즌 최다 기록이다. 하이라이트는 2014년 9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이어진 5경기 연속 등판이었다. 이 기간 오승환은 실점 없이 세이브 3개를 올렸는데, 그 중 두 개가 2위 자리를 다투던 히로시마를 상대로 거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할 때, 가장 힘들 때 오승환이 던진 ‘돌직구’는 한신 팬들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일본은 마무리 투수를 극진하게 예우한다. 일본 특유의 세밀한 야구는 마지막 1~2점을 지키는 게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신을 가진 나라답게 뛰어난 마무리 투수를 수호신(守護神)이라 칭하며 떠받든다. 이것이 지금까지 한신의 자랑으로 칭송하는 후지카와 규지(현 미국 시카고 컵스)와 이와세 히토키(현 주니치) 등 당대 최고 마무리들은 투수 최고 연봉을 받았던 이유이다. 오승환이 한신에 입단해 등번호 22번을 받았을 때 팬들은 의아해 했다. 많은 연봉에다 후지카와의 등번호까지 줄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었다. 게다가 오승환이 삼성 시절 47세이브(2006·2011년)로 한 시즌 아시아 최다 기록을 세웠다는 것도 탐탁해 하지 않았다. 후지카와의 46세이브(2007·2011년) 기록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오승환의 한 시즌을 지켜본 팬들은 그를 ‘한신의 수호신’이라 부르고 후지카와의 등번호 22번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고시엔구장 용품점 한가운데엔 오승환 유니폼이 걸려 있다. 오승환은 11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고시엔구장에서 열린 히로시마 도요카프와 센트럴리그 클라이맥스시리즈 퍼스트스테이지 1차전에 1-0으로 앞선 9회초 등판해 세 타자를 모두 삼진 처리(3K), 이로써 1이닝 무피안타 무실점 3삼진의 퍼펙트 피칭을 한 오승환은 절친한 선배 임창용이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뛰던 2011년 11월 4일 주니치 드래건스와 센트럴리그 클라이맥스시리즈 파이널스테이지 3차전에서 세이브를 기록한 후 3년 만에 일본 포스트시즌에서 한국인 세이브 투수가 됐다. 이처럼 오승환이 이룬 성과는 일본 진출 첫해에 외국인 투수로 만든 대기록이다.

2015년 시즌

2015년 4월 29일 야쿠르트 전에서 9회에 등판해 1이닝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기록하며 한신 타이거스의 외국인 개인 통산 최다 세이브(48세이브) 신기록을 작성했다.

메이저 리그 시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시절

메이저리그 첫 시즌을 종료한 오승환 귀국 인터뷰.

오승환은 2016년 4월 11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첫 승을 신고하였다. 7회말 마운드에 올라 무피안타 2탈삼진 무실점으로 퍼펙트 피칭을 하였다. 시즌 초에는 셋업맨으로 나섰지만 전반기 끝나기 전에 기존 마무리 투수 트레버 로젠탈의 부진으로, 그를 대신해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변경하였다. 2016년 7월 21일에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상대로 더블헤더 1차전과 2차전에 모두 세이브를 따내면서 한국인 투수 최초로 더블헤더 경기에 모두 나와 세이브를 기록하게 된 선수가 되었다. 그리고, 2016년 9월 4일을 기준으로 17경기에서 14세이브 기록을 보유중인 그는, 팀내에서 18년만에 한 시즌 14세이브 기록을 세우게 된 마무리 투수로 자리매김한다. 그의 활약상을 보면 이번 신인왕 투표에서도 상당한 표심을 몰 것으로 예상된다.

구종

현재 속구의 최고 구속은 시속 159km이며 (2012년 6월 16일 잠실 두산전 9회말 2사 후 이성열 타석에서 2구째 몸쪽 높은 직구가 두산 전력분석원의 스피드건에 159km로가 기록됐다. 전광판과 방송 카메라에는 156㎞로 측정됐으며 삼성 전력분석원은 "155㎞로 기록됐다"고 했다.) 평균 구속은 시속 150.02km이다(2013년). 직구의 볼 끝이 좋아서 약간 떠오르는 듯한 라이징 패스트볼 형의 모습을 보인다.(회전수에 비례해 확인한 바 뜨려는 성질을 보인다). 변화구는 슬라이더와 커브, 슬로우 속구, 체인지업을 가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적은 구종으로 뛰어난 피칭을 보일 수 있던 이유는 속구의 구위이다. 투구 스타일은 배트에 맞아도 범타가 될 만큼 좋은 속구를 가지고 제구력 또한 갖추고 있어서 초구부터 유리한 볼 카운트를 잡고 나간다. 또한 2008년 전지훈련에는 체인지업을 배웠고, 타자들이 타이밍 포착을 어렵게 하기 위해, 2008년 시즌 초반 슬로우포심(128km~136km)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9년 전지 훈련 때는 구속증가를 위해 평소보다 2배 많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소화했고 신인 때와 2006년 최다 세이브 때보다 구속이 2km~4km 증가한 모습을 보였으나, 변화구의 변화가 무뎌지고, 예전 '돌직구'를 던질 때보다 속구 볼끝이 약간 무뎌져서, 홈런을 많이 맞는 모습을 보여 줬다.

“ Wow, the guy he looked like he was throwing 110 mph. (우와, 그 친구 110마일을 던지는것 같았어.)”

— 메이저 리그 시카고 컵스 포수 마이클 바렛 (Michael Barret)

하지만 2년간의 부상과 부진 끝에 2011년 부활하여 '돌직구'로 불리는 150KM가 넘는 구속과 '돌부처'의 별명을 되찾게 되었다

2015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 연루

2015년 12월 7일 해외 원정 도박 사건에 연루되어 검찰에 소환되었다. 이후 2015년 12월 9일 도박 혐의를 시인하였다. 검찰은 오승환과 임창용을 벌금형 700만원으로 약식기소했다. KBO는 오승환의 국내 복귀시 해당 시즌의 50%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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