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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 사업실패

토픽셀프 2019. 10. 17. 18:26

박병호 사업실패

16일 방송되는 '인생다큐 마이웨이'에는 배우 박병호가 출연합니다. 대중에게 '스님 전문 배우'로 알려져 있는, 1960년대 데뷔해 어느덧 데뷔 64년 차를 맞은 배우 박병호를 만나러 가수 현미가 남해를 찾았습니다.

박병호와 현미의 연결고리는 바로 현미의 남편 故 이봉조 작곡가입니다. 故 이봉조 작곡가와 박병호는 한양대 건축과 선, 후배 사이로 살아생전 막역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박병호와 현미는 故 이봉조 작곡가와의 추억 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는 후문입니다.

박병호는 KBS 공채 직속 후배인 배우 임혁과 만나는 모습도 그려졌습니다. 임혁은 박병호에 대해 TV 드라마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밝혔습니다. 임혁의 본명은 임정혁으로 1976년 KBS 한국방송공사 공채 3기 탤런트로 데뷔했으며, 용의 눈물, 왕과 비, 오로라 공주, 신기생뎐, 천추태후, 여인천하, 대왕의 꿈, 왕의 여자, 징비록, 장영실 등에 출연했습니다.

박병호는 1938년 7월 28일생으로 82세입니다. 박병호는 KBS 1기 출신의 원로 탤런트이며 1954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했으며, 1961년 KBS1기 공채 탤런트로 정식 데뷔를 했습니다. 사극에서 스님이나 대신 역을 주로 맡았으며, 1962년 영화 원효대사에서 원효 역을 시작으로 대략 50여 편의 작품에 스님 역으로 출연하여 반야심경을 능숙하게 외울 정도라고라고 합니다.

그중 제일 유명한 배역은 용의 눈물에서 무학대사 역이며, 전설의 고향의 지나가던 스님으로도 자주 출연했습니다. 2014년 드라마 정도전에서 용의 눈물에 이어 다시 무학대사로 출연하며 오랜만에 TV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015년 징비록에서 사명대사 역으로 출연했으며, 1995년 서궁에서 사명대사 역을 맡은 후 다시 한번 같은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박병호가 진짜 스님이 됐다'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으나, 11년 전 도심을 떠나게 되어 고즈넉한 남해에서 자연을 벗 삼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박병호가 출연한 영화로는 똑바로 살아라, 눈짓에서 몸짓까지, 젊은 도시, 아빠 아빠 우리 아빠 등이 있습니다.

박병호는 1963년 배우 정혜선과 1년 열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당시 정혜선은 22살이었으며, 두 사람은 4살 나이 차이입니다. 정혜선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던 탓에 어머니가 정혜선을 의지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혜선이 결혼한다고 하자 그 충격으로 약을 드시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박병호와 정혜선은 3남매를 둘 정도로 금실이 좋았다고 합니다.

정혜선의 본명은 정영자입니다. 1942년 2월 21일생으로 78세입니다. 출생은 서울이며, 학력은 수도여자고등학교입니다. 정혜선은 1961년 KBS 공채 1기 탤런트로 연예계에 데뷔했습니다. 당시 여자 동기들로는 태현실, 박주아, 김혜자 등이 있습니다.

정혜선은 1960년대의 액션 영화에서는 암흑가의 여두목으로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았고, 젊은 나이에도 노인 역을 많이 맡았을 정도로 연기의 폭이 상당히 넓은 배우중 한 명입니다.

첫 데뷔작 그날이 오면을 시작으로, 못 잊어, 조선왕조 오백 년 설중매, 청춘의 덫, 사랑과 야망, 산너머 저쪽, 배반의 장미, 왕꽃 선녀님, 하늘이시여, 제빵왕 김탁구, 황금신부, 백 년의 유산, 신들의 만찬, 신의 선물 14일, 금 나와라 뚝딱 등의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했습니다. 영화는 연산군, 깜동,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애자, 고스트 맘마 등에 출연했습니다.

전부인 정혜선은 KBS 1기 공채 탤런트였으며, 동기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1969년 박병호는 배우 최무룡과 함께 영화 제작 사업을 시작했으나 실패하여 수억 원의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정혜선과 결혼 12년 만인 1975년 이혼을 했습니다.

이혼사유에 대해서는 성격차이였으나, 박병호의 사업실패로 갈등이 원인에 되어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정혜선 역시 박병호의 빚을 떠안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혜선은 당시 박병호의 빚 때문에 집은 경매로 넘어간 상태로 월세방을 전전긍긍하면서 3남매를 키 오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에게 남겨진 빚을 갚느라 시간을 다 보내야 했고, 10년 만에 빚을 다 갚게 되었다고 합니다.

박병호 또한 몇 년간 거리 외판원부터 밤무대 가수까지 하며 악착같이 돈을 벌며 갚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박병호는 12살 연하의 농구 선수 출신의 디자이너 박종숙과 1977년 재혼을 했습니다. 당시 남자 배우들은 결혼식에 참석을 많이 했지만 여자 연예인들은 거의 참석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거 인지도가 높았던 원로 배우들의 경우 정치판에도 많이 뛰어들었던 시절 박병호도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신민주공화당 소속으로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 공천에서 떨어진 뒤 통일 국민당 소속으로 서울 성동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낙선했습니다.

박병호는 2007년부터 부인 박종숙과 함께 남해안 시골에 정착해 거주 중입니다. 2012년에는 명예 남해군수로 위촉되기도 했습니다.

from http://opopii.tistory.com/381 by cc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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