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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 사별 이유

토픽셀프 2019. 10. 9. 06:48

김민우 사별 이유

안녕하세요 오늘의 이슈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블로그 'ZZUN' 입니다.

오늘은 '김민우' 에대해알아보려고 합니다.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 김민우 사별

과거 가수로 활동했던 김민우가 희귀병으로 아내를 잃었다고 고백했습니다.채널A '아이콘택트'에 가수에서 자동차 딜러로 직업을 바꿔 일하고 있는 김민우가 출연했습니다. 그는 아내와의 사별에 대해 고백하며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목이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갔더니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라는 희귀병이라고 했다"며 "입원 후 일주일도 안 돼 정상적이었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났다"고 말했습니다.

김민우 아내가 앓았던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은 면역 세포인 '사이토카인'의 과분비로 인해 면역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희귀성 질환을 말합니다. 이 병은 유전에 의한 '원발성'과 이차적으로 생긴 '이차성'으로 나뉘는데 원발성은 면역 시스템 비활성화와 관련된 유전자로 인해 발병합니다.

대부분의 성인 환자에서는 이차성이 흔한데, 각종 감염, 자가면역질환, 악성종양 등이 유발요인입니다. 비교적 전형적인 증상은 발열을 동반한 인두·후두·비강 감염 혹은 위장 감염입니다. 이후에 발열·혈구감소증·체중감소 등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외에 피부발진이나 황달 및 부종이 있을 수 있고 림프절비대나 통증 등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치료는 먼저 면역 기능의 과활성화를 억제하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투여합니다. 이 과정에서 각종 감염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항생제, 항진균제, 항바이러스제 등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면역요법이 효과가 없고, 재발한 경우, 혹은 원발성으로 진단된 경우에는 조혈모세포이식을 최대한 빨리 받아야 합니다. 원인이 명확하지 않아 진단과 치료에 어려움이 있지만, 환자의 절반 정도가 치료에 성공한다고 알려졌습니다.​

김민우는 “오늘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딸과 눈맞춤을 하기 위해 출연했다. 올해 11살인데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어른이 된 것 같다. 난 매일 눈물을 흘리는데 (딸은) 지금까지 눈물 흘린 적이 없다. 울지 않고 날 위로했다. 엄마가 있을 때와 똑같이 행동하는 게 날 더 슬프게 했다”고 절절한 마음을 털어놨습니다.

또 “민정이가 엄마 장례를 치르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빠 세탁기 쓰는 법 알려주세요’ 하더라. 민정이가 ‘아빠 와이셔츠는 내가 다려주고 빨아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했다고합니다. 당시 민정이 나이가 9살이었다”며 “민정이는 스스로 알아서 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어리광 부렸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김민우는 과거 20대에 가스폭발 사고로 녹음실을 잃어 수억원대의 빚을 지게 됐다고 고백했습니다.

● 김민우 프로필

김민우의 본명은 김상진이며 1969년생입니다. 1990년대에 가요계에 데뷔하며 소년같은 외모와 달리 부드러운 음색과 폭발적인 가창력을 보였던 가수입니다. 한동안 김민우 이혼루머가 있었으나, 2017년 김민우는 MBC '사람이 좋다'에 출연해서 2009년 6살 연하 일반인 아내와 결혼했지만, 8년 뒤인 2017년 아내와 사별한 안타까운 사연을 고백했습니다. 매체 인터뷰에서도 김민우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동안 못 갔던 가족 휴가를 계획했던 참이었습니다. 휴가가기 2~3주 전쯤 밥을 먹는데 아내가 목이 아프다고 하더니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피부과에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아서 낫는가 했는데 잠시뿐이었어요. 피검사, MRI로도 발견이 안돼서 척수 검사를 했는데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라는 희귀병이었습니다."

염증수치가 정상인의 200배이고, 이 정도면 이미 장기가 손상되고 뇌까지 전이됐을 거라고 했어요. 입원한지 일주일 만에 곁을 떠났죠.”아내와 사별 후 김민우는 당시 충격도 많이 받았지만, 당시 딸이 9살밖에 안된 시절이어서 어쩔수 없이 다시 시작하던 방송활동을 중단하고 가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김민우는 이후 '복면가왕', '다시쓰는 차트쇼' 등에 출연하며,"노래와 딸을 통해 극복을 하고 있다"고 밝히며 떠난 아내를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겠다고 밝혀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김민우는 대원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학원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우연히 김광수에게 발탁되어 1990년 봄에 데뷔를 하게 됩니다. 김민우 1집은 3개의 히트곡이 나온 앨범으로 당시 최고의 작사가 박주연, 프로듀서 하광훈과 작곡가 윤상의 작업물들이었습니다. SBS '힐링캠프' 윤상편에 출연한 윤상은 김민우를 언급하면서 그때 작곡가로써 독설을 많이해 강수지, 김민우에게 미안하다며 녹음당시의 일화를 공개했습니다. 윤상은 ‘입영 열차 안에서’를 녹음하면서 김민우에게 독설을 했고, 김민우가 눈물을 흘렸다고 밝혔습니다. 윤상은 당시 “녹음하다 김민우씨에게 집에 가라고 했던 적이 있다”며 “작곡가 입장에서는 본인이 듣고 ‘다시 할게요’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가수가 가장 좋은데, 부족한 듯한 결과에도 만족하는 태도를 보이는게 섭섭했었다”라며 그 당시 자신의 독설에 상처를 받았을 강수지와 김민우에게 미안함을 전했습니다.

김민우는 1992년 제대 이후, 3집을 발매하지만, 이미 가요계는 '서태지와 아이들' 1집 '난 알아요'로 댄스와 랩이 기세를 떨치고 있는 변화된 상태였습니다. 김민우는 기존의 발라드를 고수하며 3집을 발매했지만, 예전만큼 큰 인기를 얻기가 어려운 시기를 보냅니다. 가수 재기를 노리던 김민우는 1996년에 자신의 재산을 대부분을 투자해서 만든 녹음실이 가스폭발로 전소되는 사고를 당하고. 이 사건은 이후 정신병자의 방화로 밝혀지게 지만, 이로 인해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가 된 김민우는 집이 차압당하는 등 생계가 곤란해지며 밤무대에서 가수활동을 이어가는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렵게 제작한 4집 역시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하자 그는 가수 활동을 중단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게 됩니다.

김민우는 1997년 4집을 마지막으로 가수 활동을 중단하고, 메르세데스-벤츠의 국내딜러 중 하나인 한성자동차에 세일즈맨으로 취업하며 자동차 딜러가 되었습니다. 가수로 활동하던 자신의 지명도와 연예계 인맥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본인의 노력을 통해 벤츠 판매하는 기록을 세우면서, 주위에서 딜러로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담을 담은 책 '나는 희망을 세일즈한다'를 2009년 발간했으며, 자동차딜러학과 전임교수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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