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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야구선수 이동현 연봉 결혼 fa

영남중 시절까지 외야수로 활약하던 이동현은 서울고 진학 후 투수로 전향했고 2학년때 경기고로 전학을 가면서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답니다. 특히 3학년 때는 황금사자기에서 경기고를 우승으로 이끌며 MVP와 우수 투수상을 휩쓸었습니다. 이동현은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김태균, 정근우(이상 한화 이글스) 등과 함께 2001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끈 '에드먼턴 키즈'이기도 합니다.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LG에 입단한 이동현은 2001년 개막전에서 선발로 등판할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물론 고졸 신인이었던 이동현이 개막전 선발로 낙점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LG마운드가 김용수의 은퇴와 장문석, 최향남, 최원호 등 주축 투수들의 부상으로 시작 전부터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랍니다. 실제 이동현은 입단 첫 해 4승 6패 평균자책점 5.37에 그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동현이 날개를 단 것은 김성근 감독이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2002년이었습니다. 마무리와 중간 계투를 오가며 전천후로 활약한 이동현은 8승 3패 7세이브 6홀드 2.67의 성적으로 LG의 준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답니다. 하지만 선발 등판 없이 불펜으로만 78경기에 등판해 124.2이닝을 던진 이동현의 팔꿈치는 이미 고장의 징조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2004년부터 이동현의 오랜 재활이 시작됐습니다.

2004년 12월 첫 번째 팔꿈치 수술을 받은 이동현은 재활을 서두르다가 통증이 재발했고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친 2007년 11월 두 번째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았답니다. 그렇게 이동현은 수술과 군복무, 다시 수술로 이어지는 기나긴 재활의 시간을 보냈고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4년이나 마운드를 비웠습니다. 그 사이 LG는 두 번이나 최하위를 기록하며 창단 후 최악의 암흑기를 보냈답니다.

2009년 기적처럼 마운드에 복귀한 이동현은 2010년 7승 3패 4세이브 15홀드 3.53의 성적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답니다. 그리고 2013년과 2014년 LG의 가을야구 재입성의 순간 이동현은 LG불펜의 중심으로 맹활약했습니다. 반면에 이동현이 5승 5패 4세이브 11홀드 4.40으로 주춤한 2015년에는 9위로 추락했습니다. LG는 2015 시즌이 끝난 후 프로 입단해 15년 동안 LG를 위해 헌신한 이동현에게 3년 총액 30억 원의 FA 계약을 선물했답니다.

from http://325235.tistory.com/6 by cc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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