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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가쿠레 사쿠라는 한탄하지 않는다 -1장 4. 하가쿠레라는 것 -

조용한곳

4. 하가쿠레라는 것

――여기서 멈춰 서도 싸움에 휘말려 죽을 뿐이다.

너덜너덜한 벽에 손을 기대며, 조금이라도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걷는다. 시야가 흐릿해 보이는 탓에, 곳곳에 있는 장애물을 알아보기 힘들다.

온몸을 찌르는 격통은 점점 둔한 통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감각이 마비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츠구미는 필사적으로 계속 걸어갔다. 전투음이 다소 멀게 들리는 곳에서, 적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골목 안으로 도망쳤다.

"……하하, 떨림이 멈추질 않아."

그렇게 말 하며, 자신을 야유하듯 웃는다.

……이제 이 이상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조금 전보다는 전쟁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여기서 쪼그려 앉아,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지구력 겨루기, 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그런데도 계속 견딜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자신을 다독이더라도, 마음속의 냉정한 부분은, 자신의 몸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거라고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

차츰차츰 시야가 붉게 물들어간다. 왠지 심장 주변이 뜨거워졌다.

게흑, 하고 피가 섞인 기침을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 눈꺼풀 뒤에서, 빨간 빛이 돌아다닌다. 왠지, 긴장을 늦추면 잠이 들 것만 같다.

"…분한,걸."

한숨과 같은 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죽고 싶지 않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 이상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근성으로만 어떻게 되는것은, 그야말로 만화 속 뿐이다. 만약 자신의 의지만으로 상처가 치유된다면, 이 세상에 의사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멍하니 눈을 떴다. 손발에 젖은 피의 흔적이, 마치 붉은 끈처럼 보였다. 만약 이 자리에 센스있는 사신이 있었다면, 「너에게는 죽음의 운명이 얽혀있다.」라는 식으로 말해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마음 속으로 농담을 치지만, 실제로 입으로 내뱉을 만한 기력도 없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는 것조차, 이제는 귀찮다.

만약 이 죽음의 운명을 바꾸려 한다면, 그야말로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다. 그래, 신이 일으켜주는 기적을.

그렇게 생각하며, 츠구미는 자조의 미소를 띠었다.

――기적이란, 그렇게 자주 있는것이 아니다.

재기 넘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츠구미는 평범한 인간이다. 이런 하찮은 어중이떠중이를 신이 도와줄 리 없는데.

이렇게 죽어가는 인간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그야말로 사람의 약점을 파고들려는 악마인가 무언가겠지.

……그렇지만, 사실은 악마라도 좋다. 지금 여기서 살아나갈 수만 있다면, 어떤 녀석의 손을 잡아도 상관없어. 츠구미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 만남은 확실히―― 기적이라고는 부를 수 없다.

하지만, 운명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

"소년. 너, 구원받고 싶으냐?"

갑자기, 츠구미의 귀에 그런 말이 들어왔다.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내려온다.

츠구미가 천천히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한 마리의 검은 고양이가 있었다. 검은 고양이는 금빛 눈동자로 츠구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다시 한 번 말을 반복했다.

"살아 남고 싶은가? 아니면 이대로 죽고싶은가?"

―대답에 따라서는 돕지 않을것이다. 하고, 검은 고양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 말에는, 항변하기 어려운 힘이 있었다. 당장이라도 매달리고 싶어지는 성스러움과,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는 혐오감이 뒤섞인 것 같은, 이상한 감각. 그럼에도 어딘가 끌리게 되는, 그런 무언가가.

――이것은 분명, 『악마의 거래』다.

……이 검은 고양이가 별로 좋은 녀석은 아니라는 것은, 츠구미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만든 결계도 결코 만능이 아니다. 츠구미의 지금 상황이 좋은 예시다. 결계라고 해도, 때로는 나쁜 것을 들이는 일도 가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냐.

설령 눈 앞의 존재가 악마라고 해서,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는건가. 불합리한 계약으로 자신이 괴로워하는 것 만으로 끝이 난다면, 그것으로 좋지 않을까. 그것은 이 자리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따.

검은 피로 더러워진 손으로, 검은 고양이의 앞발을 잡는다. 이젠 전혀 소리도 못 내겠다.

그래서 츠구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게, 긍정의 뜻을 표현하도록.

그것을 보고, 검은 고양이는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그 모습은, 아무리 봐도 고양이의 골격이 만들 수 있는 움직임은 아니다.

검은 고양이는 지그시 츠구미의 귓가에 얼굴을 대고, 이상한 말을 했다.

"그런가. ――그럼 깃들이겠다."

――그리고 검은 고양이는, 츠구미의 목에 그 송곳니를 세웠다.

◆◆◆

"츠구미!! 감기는 괜찮아!?"

"우왓!"

갑자기 귓전에서 들리는 큰 소리에, 츠구미는 무심코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럽게 깨어난 탓에, 심장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뛰고있다.

츠구미는 핫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잔해 속에 쓰러져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매우 본 기억이 있다――라고 할까 자택 현관 끝에 츠구미는 웅크려 있었다.

……아니, 잔해는 커녕, 엉망진창이었던 몸의 상처도 없어져 있었다. 옆구리나 다리를 만져봤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건 혹시 꿈이었던건가? 그런 생각이 가슴에 자리잡는다.

그런 츠구미의 행동을 불안하게 바라보면서, 치도리는 입을 열었다.

"진짜, 아마리 군에게 연락이 와서 나도 동아리를 쉬고 일찍 돌아왔는데, 츠구미는 현관에 쓰러져 있고. 심장이 멎는줄 알았어…… 저기, 정말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치도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츠구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불안이 어른거린다.

"에, 아, 미안. 뭔가 멍 해서……"

"역시 감기라도 걸린건가?"

치도리는 지그시 츠구미의 앞머리를 쓸어올려 자기 이마를 츠구미에게 갖다대었다. 이마에서 은은한 온기가 전해져온다.

하지만 치도리의 단정한 얼굴이 가까이에 있어, 왠지 진정이 되질 않는다. 못할 짓을 하고 있는 기분이다.

그런 츠구미의 복잡한 심경을 알 리 없는 치도리는, 이마를 떼고,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열은 없는거같아. 하지만 만약을 위해 오늘은 더 쉬는게 좋아. 배가 고프면 나중에 죽이라도 끓여줄게."

"왠지, 걱정 끼쳐서 미안……"

치도리의 미소짓는 얼굴을 보고, 갑자기 몸에서 힘이 빠져나왔다.

아, 다행이다. 오늘도 그녀는 웃을 수 있구나――정말, 다행이야.

"……미안, 치도리. 오늘은 이제 졸리니까, 저녁은 됐어. 내일 뭔가 적당히 만들테니까."

"그래? 무슨 일 있으면 말해줘. 정말, 츠구미는 틈만 나면 엉뚱한 짓을 하니까."

츠구미는 걱정 말라고 웃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문을 닫고, 벽에 등을 대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흐릿해져가는 사고를, 간신히 각성시킨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상하다.

상처도 흐트러짐도 없는 교복을 보고, 츠구미는 인상을 찌푸렸다.

잘은 말할 수 없지만, 그 상처는 확실히 진짜였다.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하지만 옷을 올려 옆구리를 봐도, 상처는 하나도 없었고, 아픔도 없었다.

만약 그것이 꿈이라면, 모순이 생긴다. 불행히도, 츠구미는 역에서 집까지 자력으로 돌아온 기억도 없다. 도대체 언제부터가 꿈이고, 어디부터가 현실인 것일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죽기 전의 꿈 속일지도 모른다.

……역시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내일이 되면 병원에 가서 검사받자.

"――그 고양이는, 대체 뭐였던걸까?"

그렇게 툭 중얼거린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치열했다.

납득이 가지 않는지, 츠구미는 벌떡 일어나 침대를 힘차게 뒹굴었다. 꿈이라면 꿈인채로 끝나는 것이 좋을것이다. 츠구미는 이렇게 상처하나 없이 살아있다. 그 사실만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츠구미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아아, 꿈이라서 다행이다, 라고.

그렇게 안도하고 눈을 감는 순간, 머리 위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뭐가 꿈이냐 이 멍청한 녀석이."

반사적으로 상반신을 일으켰다.

"에…… 어, 어라?"

"뭘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있는게냐. 네 주인이 이렇게 모습을 보였는데. 땅바닥에 머리를 깊게 숙여 엎드려야지."

등에 잠자리와 같은 얇은 4장의 날개를 가진 검은 고양이는, 츠구미에의 앞에 날아다니면서 그렇게 말을 했다.

츠구미는 현재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지, 입을 쩍 벌린 채 기묘한 생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

"그러니까, 건방지다고 말 하잖느냐!"

검은 고양이는 그렇게 고함을 지르고는, 말랑말랑할 것 같은 육구가 붙은 앞발을 들어올려, 힘차게 츠구미의 빰을 쳤다.

"으악!?"

그 귀여운 모습과는 달리, 그 공격은 강렬했다.

츠구미는 얻어맞고 침대 위로 엎어졌다. 저릿저릿 하고 뺨이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흠, 느려터진 녀석. 이제야 머리를 숙일 생각이 들었는가."

――아니, 네가 때려서 엎어진거 뿐인데.

츠구미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으로는 내뱉지 않았다. 현명하다.

"너, ……아니,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츠구미는 지금의 상황에 혼란해 하면서도, 그렇게 말을 꺼냈다.

"뭐냐. 너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게냐? 완전 무능하구나. ――아니면, 잊은 척을 하는건가?"

검은 고양이의 가차없는 말에 츠구미는 입을 다물었다. 무슨 대답을 해야 할 지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렴풋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 살을 에는 듯한 고통. ――그리고 구세주처럼 들려온, 그 말.

『구원받고 싶으냐?』

그 말에, 츠구미는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 검은 고양이는――.

"당신이, 나를 살려준건가."

"핫, 이제야 생각난게냐?"

검은 고양이는 내뱉듯이 말하고,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시니컬하게 웃었다.

"나야말로 신. 나야말로 왕. 나야말로 네놈의 주인.――기뻐해라 하인. 너는 정식으로 나의 장난감으로 선택되었다."

"장난감? 대체 내게 뭘 시킬 생각이야?"

형언할 수 없는 오한이, 등골을 타고 오른다. 이런 예감은 기억에 있다. 그래, 마치 유키타카의 간계에 말려들었을 때와 같은――.

"목숨을 구원받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시키는 대로 죄를 짓거나 하는 것은 싫어. 나만이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짓은 하고싶지 않아. ……자기좋은 소릴 하고 있다는건 알고 있어.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죽어도 좋아."

……모처럼 살아남은 목숨이지만, 치도리의 해가 되는 것 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 죽고싶지는 않지만, 치도리에게 폐를 끼치게 될 것이라면 죽는 편이 낫다. 불합리한 죽음임은 변함이 없지만, 마법소녀와 관련된 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자살이 훨씬 나을 것이다.

하지만, 검은 고양이――신의 반응은 츠구미의 상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바보같은 소리 말아라. 애송이! 이 내가 네놈 정도의 인간, 그것도 단 한 명밖에 둘 수 없는 장기말을 써서 나쁜짓을 할 거라고 말하고 싶은게냐! 그런 짓을 하면 과거의 부하들에게 비웃음만 살게다!"

――그런 짓을 저지르면 군단의 규범은 있으나 마나라는 본보기가 되겠지! 라며, 신은 츠구미는 알 수 없는 방향성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에 그럼, 즉 내 가족에게 잔인한 짓을 하거나, 범죄행위를 강요하지 않는다, 라고 해석하면 되는건가?"

"뭐, 그렇게 되겠지. 네놈의 동포들 따위, 나는 관심 없다."

"그럼 대체, 나는 뭘 하면 되는거야?"

츠구미가 할 수 있는 일 따위, 뻔하다. 분명히 말 하면, 이 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일을 자신이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츠구미가 그러는 사이, 신은 그 금빛 눈동자를 가늘게 뜨며 웃었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츠구미에게 내뱉은 것이다.

"이 유기장에서는, 장난감을 『마법소녀』라고 부른다지? 안성맞춤으로 적까지 준비되어 있고. 이런 즐거운 행사에, 불참하는 녀석은 촌뜨기지."

"자, 잠깐만 기다려. 마법소녀라니……나는 남자라고? 적성도 없을 뿐더러, 그 권리도 없어. 터무니없다고!"

"다물어라. 네게 거부권따윈 없어. 내가 하라면 하는거다. 그 외의 행동은 필요치 않다."

위압이 담긴 목소리로, 검은 고양이는 말했다. 그 중압에, 츠구미는 무심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 태양신에게 주목받는 것은 내 본의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이곳의 룰 범위내에서 눈에 띄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뭐, 일반 장난감과 동등하게 취급은 해 주겠다만."

"하지만, 아까도 말 했듯이 나는 남자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남자가 마법소녀가 된 전례는 없고, 신의 힘을 받기 위한 그릇에는 맞지 않겠지? 게다가 남자가 마법소녀를 하면 반드시 눈에 띌 거라고 생각해."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다. 외형은 내 권능으로 변신할 때만 건드리면 되고, 그릇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게다가 계약하고 나서 알게 되었는데, 너는 보통 여자들보다 신력의 침투율이 좋다. 무녀들과 같이 수업이라도 받은게냐?"

"그런 적 없, ……을거라고 생각해."

있을 수 없다, 고 생각하지만 유소년기의 기억이 없으니 단언할 수는 없다. 과거의 호적도 10년 전 대재해 때에 불타버렸고, 데이터도 일부 날라갔기 때문에, 자신의 과거는 이제 알 수가 없다.

"뭐 됐다. 내일, 실제로 변신해서 마수와 싸운다. 그렇게 하면 싫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

그런 어처구니 없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긴 했지만, 츠구미에게 거부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츠구미는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물어볼 게 없는것은 아니다.

"도와준것은 정말로 감사하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쁘……게는 아니지만, 뭐든지 하겠어. ――하지만, 어째서 나를 선택한거야? 보아하니, 당신은 신 중에서도 고위의 존재겠지? 더 우수한 여자아이를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었을텐데."

"공교롭게도 나는 다른 신들과 달리, 아양떠는 여자는 좋아하지 않는다."

"즉, 당신은 여자가 싫다는거지……"

이 일본에서는 주제신이 아마테리스 오미카미―― 즉 여신이기 때문에, 신의 힘을 받아 쓸 수 있는것은 기본적으로 여성이다. 그래서, 세간에서는 『신은 여성을 좋아한다』라는 인식이 강하다. 게다가 무녀가 좀 더 특별한 느낌이 들고.

"몇 번인가 정부의 선발자를 만나보았지만, 이야기가 되질 않는다. 놈들은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고, 비굴하게 바짝 다가와 아양을 떨지. 그것도, 웃는 얼굴의 뒤에 추레한 본성을 숨기고. ――그 모습은, 권력자를 시중드는 종교인을 닮아서 구역질이 난다."

퉷, 하고 토해내듯이 신이 말을 내뱉는다. 뭔가 종교인에게 큰 트라우마라도 가지고 있는걸까.

"전부가 다 그런 사람은 아니겠지만…… 선발자가 아니어도, 마법소녀가 되고 싶은 여자아이는 일본에서 많이 있었을거아냐. 그 중에는 마음이 순수한 아이도 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론이라면, 치도리는 여유롭게 합격선에 도달하는거 아닐까. 아니, 그녀가 마법소녀가 되는건 단호하게 저지하겠지만.

그런 식으로 신에게 말을 하자, 그는 오만상을 찌푸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고양이의 용모로도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건가, 하고 잠깐 놀랐다.

"유감이다만 마법소녀로 계약할 수 있는 것은 열두살 이후…… 그렇기에 녀석들로 손을 쓸 생각도 했었지만, 아무래도 순수함이 충분치 않다. 그러면 좀 터무니없지만 남자에게 손을 쓸까 생각했지."

"……신 님은 혹시, 로리코…"

로리콤, 이라고 말을 하려 할 때, 검은 고양이의 꼬리가 얼굴을 강타했다. 아프다.

"기분 나쁜 소릴 지껄이지 마라 바보같은 놈……!! 나는 단지 허용범위가 좁을 뿐이다!!"

"……그, 그렇습니까."

――그게 자랑이냐? 라고 묻고 싶어졌지만, 겨우 꾹 눌러참았다. 침묵은 금이다.

"――그러니까 네녀석으로 타협한 것이다. 울면서 감사해도 좋다."

"……네, 감사합니다."

즉, 이 신은 마법소녀와 계약하고 싶었지만, 열두살 이상의 여성은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약점을 잡을 수 있을것 같은 죽어가는 츠구미로 타협했다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츠구미는 신에게 도망갈 수 없다. 왜냐면 이미 계약이 되어버린 것이다.

도리가 아닌, 미음이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 이 검은 고양이는 틀림없이 츠구미의 주인이라고.

입을 다문 츠구미에게, 검은 고양이는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구나? 그렇지 않느냐, 나의 비참한 계약자여."

"그 전에, 하나 좋을까."

"……아까부터 생각한 것이다만, 너는 말투가 무례하구나. 하지만 됐다. 나는 관대하다. 오랫동안 이어질 관계이니, 다소의 자질구레한 일 정도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용서해주마."

"당신을, 나는 뭐라고 부르면 돼?"

츠구미의 그 물음에, 신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갸웃 하고 그 작은 머리를 기울였다.

"응? 아직 말 하지 않았던가? 그렇군, ――나는 『벨』이라고 부르면 된다."

"벨……"

그런 이름을 가진 신, 혹은 악마가 있었던가? 적어도 츠구미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님을 붙여라. 네녀석에게는 섬기는 것으로서의 예의가 부족해."

"저기, 나에게는 츠구미라는 이름이 있는데……"

"그래서 어쩌라는거지. ――아아, 그러고보니 깜빡 잊고 있었다. 마법소녀 등록시에, 가명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했다. 그런 부분에서는 융통성이 있더군. 이것이라면 변신할 때의 모습을 보지 않는 한 네가 마법소녀라는걸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매정하게 돌아오는 말에, 조금 침울해졌다. ……아니 잠깐, 흘릴 수 없는 소리를 들은거 같은데.

"가명? 어떤 이름이야?"

그것이 말 하기도 부끄러운 키라키라 네임이라면 어떻게 해야하지. 어떤 의미론,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하가쿠레 사쿠라. 내가 지은 이름이지만, 좋은 이름이지 않느냐?"

"무사도라고 하는 것은 죽는 일을 마주하는것, 이라던가. 『하가쿠레기록(葉隠聞書)』이라니, 꽤 수수한 것에서 따 왔는걸. 분명 한 번 죽을뻔 한 나에게는 딱 맞을지도."

흔히 세간에서는 오해를 받고 있지만, 하가쿠레 기록의 마음가짐의 입문서의 한 구절――『무사도라고 하는 것은 죽는 일을 마주하는것』은 목적을 위해 결사의 각오로 도전하는 것, 이 아니다.

본래의 의미는, 이미 죽은 몸이라는 심경으로부터의 판단이야말로,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 라는 것이다.

아마도 외국의 신일 그가, 이렇게까지 일본에 조예가 깊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츠구미가 감탄하자, 벨은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그냥 멋지다고 생각한거 뿐이다만."

"………"

"어이, 뭐라고 말 좀 해라."

"……이야! 최고로 멋진 이름이잖아! 역시 벨님 센스가 뛰어난걸!"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설명을 한 자신이 부끄러워……

"아아, 그렇고 말고! 더 칭찬하도록!"

"에헴, 하고 가슴을 펴는 신에게 찬사를 보내면서, 츠구미는 휴우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래도 이 신은 츠구미가 생각했던 것 보다도 꽤―― 아니, 선량한 신일지도 모른다.

"벨 님."

"뭐냐 하인."

"――앞으로, 잘 부탁 드려요."

"음. 열심히 노력하도록."

변함없이, 거만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싫지는 않았다.

자신을 구해준 것이, 이 신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것이 츠구미와 『마신』―― 벨과의 만남이었고, 모든 것의 시작이기도 했다.

이것은, 신에게 구원을 받은 한 소년의 이야기.

그리고, 악마에게 깃들여진 마법소녀――하가쿠레 사쿠라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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