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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의 횡포와 빚더미 사회,<무한도전>'끝까지 간다' 특집의 메시지

참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 사이에 차두리를 비롯한 태극전사들이 선물한 감동의 아시안컵이 있었으니 조금 참을 만 하긴 했다. 그래도 역시 토요일 저녁은 <무한도전>이 아닐까? 2월 7일, 무려 3주 만에 전파를 탄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은 '끝까지 간다' 특집으로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하하가 펼친 '탐욕'의 추격전으로 꾸며졌다.

매회마다 촌철살인의 자막과 속시원한 사회풍자를 방송에 녹여내곤 하는 <무한도전>답게 이번 '끝까지 간다' 특집에도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담겼다. '끝까지 간다' 특집에서 <무한도전>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예능은 예능일 뿐'이라는 관점으로 마음껏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단순한 추격전으로 넘기지 않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 것도 <무한도전>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끝까지 간다' 특집의 첫 번째 포인트는 '갑의 횡포'였다. 촬영 현장에 모인 다섯 멤버 앞에 의문의 상자가 등장했다. 제작진은 '무한도전 10주년'을 맞아 특별상여금을 지급한다는 '미끼'를 통해 멤버들을 게임 속으로 끌어들였다. 달콤한 말에 현혹된 멤버들은 서둘러 '계약서'에 사인까지 했고, 초성 게임을 통해 100만 원을 먼저 획득한 정준하는 상자를 들고 추격전을 위한 도망을 시작했다.

곧이어 "정준하가 가져간 상금 100만원 중 1/4인 25만원이 유재석의 MBC 출연료 계좌에서 인출된다"는 문자 메시지가 멤버들에게 전해졌고,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게 된다. 멤버들은 즉각 항의했고, 정준하는 "노고를 치사하는 의미에서 상여금을 준다더니 서로의 출연료를 뺏는 게 상여금이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김태호 PD는 차분하게(!) 멤버들에게 "계약서를 자세히 살펴보라"고 말했고, 실제로 계약서의 '뒷면(!)'에는 상여금은 출연진의 출연료에서 인출된다는 내용 등이 깨알처럼 적혀 있었다. 이를 발견했을 리 만무한 멤버들은 눈 뜨고 코 베인 격이 돼버린 것이다. 애초에 공개된 계약서에 MBC가 '갑'으로 설정되어 있고, <무한도전> 멤버들이 '을'로 기재되어 있는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계약서에 사인할 때는 뒷면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교훈과 함께 최근 들어서 더욱 뜨거운 사회적 화두로 자리잡은 '갑의 횡포'에 대한 풍자이기도 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풍자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굳이 <무한도전>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실제로도 나왔고)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별다른 감흥이 없다고나 할까? 하지만 <무한도전>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서 보다 핵심적인 문제를 건드렸다.

상자를 열면 다음 상자가 나타나고, 그만큼 상금은 늘어난다. 첫 번째 상자를 열면 100만 원을 획득하고, 다음 상자를 열면 기존의 100만 원에서 상금은 200만 원으로 갱신된다. 하지만 상금을 충당하는 (멤버들의 출연료에서 지급되는) 1/4의 비용은 계속 누적된다. 상자를 열지 못한 멤버는 '25만원 + 50만 원 + 75만 원 …'으로 내야 할 돈이 늘어가는 것이다.

"이번 주는 일만하고 출연료 한 푼도 못받을 처지"라는 푸념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유재석은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자꾸 빚이 늘어나"라며 억울함을 쏟아내기도 했다. 급기야 멤버들은 상자를 획득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기 시작한다. 코믹하게 그려지긴 했지만, 배신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기본 옵션이다. 그래서 "다들 돈에 눈이 멀었어. 미쳤나봐"라는 (예고편에 담긴) 정현돈의 절규는 웃어넘기기 어려울 만큼 '현실적'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주식을 생각해봐도 알 수 있지만, 결국 돈을 버는 사람은 극히 소수의 사람들뿐이다. 오직 한 사람만이 살아남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한 사람이 얻은 이익을 채워넣기에 급급한 신세로 전락한다. 나머지 99.9%의 개미들은 0.1%가 챙기는 수익을 1/n로 충당하는 존재에 불과하지 않은가? 중산층이 붕괴되고, 서민 경제는 파탄 직전에 몰려 있다. 죽어라 일을 해도 희망이 보이기보다는 가난의 악순환을 반복할 뿐이다. 그럴수록 더욱 돈에 눈이 멀 수밖에 없지만, 돌아오는 것은 카드 명세서 등 빚더미뿐이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OECD 복지국가 지속가능성의 다차원적 평가와 지속가능 유형별 복지정책의 특성'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가정(복지) 부문 지속가능지수는 0.292로 OECD 분석 대상(2013년 기준) 27개국 중 26위로 나타났다. 석 교수는 "가정 영역의 지속가능성이 낮다는 건 개개인이 누리는 복지와 체감하는 삶의 질 수준이 매우 열악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는 경제생산 시스템에서 사회적 분배로 무게의 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뜻이다.

- 사진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한편, 앞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 대학생들도 이미 '빚더미'에 눌린 채 허덕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장학재단의 '정부학자금 대출 현황'을 보면, 대학생들의 누적 대출액이 2010년 말 3조 7,000억 원에서 2014년 10조 7,000억 원으로 2.9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자금 대출자 152만 명 기준) 1인당 평균 대출액은 704만 원에 달했다. 2010년에 비해 180만 원이나 증가한 금액이다. 대학생들뿐이겠는가? 가계부채는 이미 1000조 원이 넘어섰고, 가계부채 한계가구는 137만 구에 이른다.

경제는 더욱 악화되고 사람들은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자본주의, 단 1명만을 위한 게임은 멈출 줄을 모르고 질주하고 있다. 문제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거대한 싸움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다. 1등이 되면, 상자를 차지하게 되면 모든 빚은 청산된다는 그 망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가능성도 없지만, 설령 그리 된다고 하더라도 1명을 위한 사회적 채무는 더욱 쌓여간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말이다. 실제로 우리는 정말 '끝까지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무한도전> '끝까지 간다' 특집에 전해준 메시지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운 것이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예능은 예능일 뿐이라고? 물론 그렇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의 본질인 웃음 속에서 의미와 메시지를 찾아내 사회에 접목시키고, 그것을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나가는 것도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무한도전>은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더할나위 없이 훌륭한 '교과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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