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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탁현민의 당당하지 못한 대응이 안타까운 까닭

그런데 그런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좀 솔직하지 못한 ‘정치적 행보’를 보여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국민들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가장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바로 ‘소통’이었다. 저잣거리 여론과 위층 높은 분들의 생각이 따로 노는 것이다. 언론에서 질타하거나, 온라인에서 들썩일 정도의 불만과 지적이 있어도 이전 보수정권은 ‘이게 국가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하는 길이다’라며 쉽게 두 귀를 열려고 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더욱 심했다. 김기춘같은 사람을 비서실장으로 데려다 놓고(절대 그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도 없는 회의를 주재하며 수석들 군기나 잡게 하는 것을 국정운영으로 착각했던 대통령의 시절을 우리는 살았다. 그래서 분노했고, 집회를 열었고, 국민의 목소리에 두 귀를 닫아버린 ‘대통령’을 탄핵까지 했던 것이다.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자,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목도했을 것이고, 자신은 절대로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거의 날마다 주기도문 외우듯 하면서 집권을 했을 것이다. 그런 문 대통령이 권좌에 올랐다. 그런데, 문 대통령도 청와대에 들어가니 좀 마음이 달라진 것인가. 이렇게 장황하게 말머리를 빼는 것은 그가 이낙연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와 관련해 하는 ‘당당하지 못한’ 대응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경선 TV토론회(3월 26일)에서 본인 입으로 “병역면탈,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논문 표절 1-2개씩은 갖고 있어야 마치 장관 자격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 이제 바꿔야 합니다. 그런 분들은 고위 공직자에서는 원천적으로 배제해야 하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이렇게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 다섯 가지 결격 사유가 있는 사람은 고위 공직에서 배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실 필자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귀를 좀 의심했다. 문 후보가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었고, 논문표절이나 위장전입 등은 우리나라에서 좀 잘 나간다 하는 사람들이 한 두 번 ‘지적질’을 당할 만한, 아주 만만한 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당당하게 그렇게 외치는 것을 보고, 사실 좀 많이 놀랐다. “그렇게까지 절박하게 도덕성에 중점을 두는구나.... 다음 정권은 적어도 그 문제만큼은 좀 바뀌겠구나” 이런 ‘순진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5월 21일 청와대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를 발표하면서 위장전입 사실을 미리 고백했다.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라 미리 이실직고를 한 것이다. 계면쩍었지만, 강경화 후보자가 워낙 똑똑한 사람이라고 하니 그런 흠결쯤은 넘기자는 게 대세였다.

그런데 이낙연 총리 후보자가 등장! 그의 위장전입 사실은 ‘재수 없게도’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이 ‘주리를 틀자’ 할 수 없이 이 후보자가 시인을 한 셈이 됐다. 그때까지 거짓해명을 한 셈이다. 청와대 총리실도 뒤통수를 맞아 난리가 났을 것이다. 강경화 후보자와 달리 이낙연 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은 사실 보기에 따라 불법의 죄질이 ‘악성’은 아닐지 몰라도 청문회 도중 발각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국민들도 살짝 빈정이 상했을 것이다. 물론 ‘문빠’들의 시각은 많이 다르겠지만. 그 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도 위장전입 문제가 쟁점이 돼 버렸다.

이쯤 되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 ‘위장전입 게이트’에 빠지는 꼴이 된 것이다. 야당은 이에 청와대의 공식 해명을 요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직접적인 해명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서부터, 필자가 앞서 말버리를 길게 빼면서까지 늘어놓은 문재인 대통령의 당당함에서 모양이 좀 빠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청와대는 야당의 요구에 즉각 반응하지 못했다. 예상컨대 비서실장 주재로 홍보수석 등이 머리를 엄청 굴렸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놓은 것이 바로 임종석 비서실장의 ‘대독 해명’이었다.

“국회 청문위원들께도 송구한 마음과 넓은 이해 구합니다. 앞으로 저희는 더 스스로를 경계하는 마음으로 널리 좋은 인재 구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필자가 좀 오버해서 넘겨짚자면, 아마 문 대통령은 위장전입과 관련한 보고를 받고 (내가 생각하는 그의 인격이 맞다면) 그는 자신이 직접 나가서 해명을 하겠다고 말했을 것 같다. 하지만 청와대 ‘노련한’ 참모들이 이를 반대하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순전히 필자의 상상이니 오해는 마시라. 역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사청문회는 정권교체의 가장 고통스런 현장이었다. 절대 눈 감고 좋게 넘어간 경우가 없었다.

어찌보면 현재의 여당이 더 심했는지도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인사청문회 꼬투리 잡는 데 있어서 정치권에는 알려진 ‘선수’들이 꽤 있다. 물론 그것을 방어하는 청와대와 총리실의 노련한 공무원들도 있지만. 그 기싸움에서 밀리면 정권 초반의 개혁작업이나 국정운영은 절반은 실패한 것으로 간주된다. 또는 그렇게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절대로, 웬만해선 밀리지 않으려고 한다. 아마 이번 위장전입건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해명하자는 ‘소수 의견’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상당히 많은 ‘정무적 마사지’가 들어간 나머지 비서실장이 대신, 대충 사과하는 선에서 어물쩍 넘기려는 모양이다. 사실 문재인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도덕적으로도 흠결이 없고, 무엇보다 국민이 원하면 모두 들어줄 것 같은, 국민의 뜻이라면 모두 따를 것만 같은 그런 정권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슈퍼맨 아저씨 미담’도 그것에 큰 일조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야당(또는 일부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일단 비서실장 선에서 위장전입 논란을 대응하고 있다. 그렇다. 야당이 주장했기 때문에 비서실장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빠’들이 청와대 참모들 휴대폰으로 ‘조리돌림’을 했다면 이 정권이 비서실장 선에서 막았을까 싶기도 하다. 아마 다른 대응이 나왔을 수도 있었겠다.

필자가 좀 아쉬운 것은, 야당의 주장대로 그냥 문 대통령이 직접 해명을 하라고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당당하게 위장전입 논란이 3건이나 발생한 것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요청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참모들과 격의 없이 티타임도 하고, 윗옷도 혼자 잘 벗고, 커피도 혼자 잘 챙기는 모습까지 다 보여주면서, 왜 정작 앞으로 그들의 국정파트너가 요구하는 장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은 빠지는지 모르겠다. 지금 대통령의 소극적인 처신은 모양새가 빠진다. 적어도 권력 앞에 당당했고, 약자 앞에 따뜻했던 문재인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여기까지 온 것은 어떤 상황이 되든 ‘문재인’이라는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이 그 뒤에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위장전입과 관련해서는 그런 당당함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정치부 기자의 하찮은 센스로 볼 때, 그 정도는 해도 현재의 지지율이나 야당의 전투력, 문빠들의 폭탄문자 지원 등에 의해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도 왜 비서실장이 ‘대독’을 했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문재인은 문재인스러울 때 가장 빛이 나고 힘을 발하는 사람이다.

잘 못 했으면 ‘그 공약은 대선과정에서 나온 나의 뼈아픈 실수다’라고 하며 사과한다면 또 뭐라고 하겠는가. 앞으로 아마 장관 후보자 중에서도 위장전입 류의 하자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을 텐데. 한국의 정치구도상 보수층에서 꽃길을 걸은 엘리트들이 훨씬 많은 게 현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인재풀이 넓지도 않은데 아까운 능력이 ‘5대 결격 사유 배제’라는 올가미에 묶여버린다면 그 또한 국가의 인적자원 낭비다. 국민들 또한 그런 상황을 원하겠는가. 현실적이지 않으면 과감하게 버리고 사과하고 넘어가면 안 되나. 왜 스스로 힘들고 당당하지 못한, 어색한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게 지금까지 정치권이 익숙해진 관행 때문일 것이다. ‘자기들도 야당일 때 꼬투리 잡고 사사건건 시비 걸었으니 우리도 똑같이 되갚아주자’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 있으니 그 관행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임종석 비서실장의 ‘대독 해명’은 낡은, 구습의 정치행위라고 본다. 지금이라도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당당하게 일을 처리했으면 한다.

사족으로 문재인 정권의 또 다른 어색한 장면 하나만 짚고 가겠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행정관의 여성비하 표현 논란이다. 필자가 그를 처음 본 지는 2003년경인가 그랬다. 당시 그는 아마 문화연대 간사인가 아니면 문화기획자인가 그런 직함으로 활동을 했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좀 특이한 직업이었는데, 진보적인 색채가 강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가 사회적으로 좀 더 알려지게 된 계기는 아마도 SNS가 큰 도약대가 되었을 것이다. 필자와도 온라인상에서 ‘친구’로서 친분을 맺기도 했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이른바 ‘언더그라운드의 전사’로 불리며 보수정권에 맞서는 진보지식인층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공연기획자답게 그리 무거운 주제의 메시지를 날리는 편은 아니었다. 가볍고 재기발랄한 위트로 권력자들을 한방 먹이는 사이다 역할을 많이 했다. 그런 탁현민을 따르는 사람도 꽤 있었다. 그런데 지난 2012년 문재인 대선 후보 곁에서 일을 하며 정치와 직접 인연을 맺은 것 같다. 문 대통령이 대선 패배 뒤 히말라야 트레킹을 했을 때도 양정철 전 비서관과 함께 동행을 한 ‘절친’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지난 5월 26일 자신의 저서 ‘남자마음설명서’의 여성비하 표현이 비난에 휩싸이자 결국 사과까지 했다. 내용을 보니 쉽게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꽤 된다. 탁씨는 저서에서 '대중교통 막차 시간을 맞추는 여자는 구질구질해 보인다' '이왕 입은 짧은 옷 안에 뭔가 받쳐 입지 마라' 등 여성을 폄하하고 모욕하는 내용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또한 “콘돔 사용은 섹스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열정적이고 화끈한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다면, 사고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그냥 하는 수밖에”라는 내용도 있다. 그리고 특히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사용해왔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그는 여성을 대상화하며 ‘몸을 기억하게 만드는 여자’, ‘바나나를 먹는 여자’, ‘허리를 숙였을 때 젖무덤이 보이는 여자’, ‘스킨십에 인색하지 않은 여자’ 등 야한 소설 같은 표현으로 남성이 바라는 여성상을 표현했다. 그뿐만 아니라 “등과 가슴의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건 테러를 당하는 기분”이라는 개인적인 견해까지 피력했다.

논란이 커지자 탁현민 씨는 오늘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자 마음 설명서’란 글로 불편함을 느끼고 상처를 받으신 모든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표한다”며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다. 그런데 그 뒤의 ‘해명’이 필자를 좀 실망시킨다.

“10년 전 당시 저의 부적절한 사고와 언행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 현재 저의 가치관은 달라졌지만 당시의 그릇된 사고와 언행에 대해 깊이 반성하며 사과드린다.”

‘현재 저의 가치관은 달라졌다?’. 이말 믿어도 되나?? 구차한 변명같다. 문재인 정권의 트레이드 마크인 당당함과는 거리가 좀 멀어보인다. 인생관이 이렇게 쉽게 달라지나? 여성을 보는 태도나 시각이 청와대 행정관이 되고나서부터 아주 조신하게 달라질 수 있을까. 나는 그의 여성관에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가 절박하게 썼을 책 내용을 부정하고 ‘지금은 가치관이 달라졌다’며 변명하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당당한 처신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가 어떤 착한 가치관으로 바뀌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다. 나는 차라리 그가 자신의 여성관에 대해 솔직하게 해명했으면 어땠을까, 그런 아쉬운 생각이 든다. 물론 또 다른 정치적 논란을 자초하는 측면이 있겠지만, 달콤한 권력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그 기쁨의 대가로 바치겠다는 발상에는 동의할 수 없다.

아직 탁 행정관의 휴대폰이 문자폭탄으로 가득찼다는 보도는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정말 이번만큼은 그에게 문자 메시지 하나를 남기고 싶다. 내 전화번호부에는 그의 오래된 ‘018-243-****’ 옛날 번호가 남아 있다.

“내가 지나온 길에 침을 뱉는 사람은, 다른 누군가의 길에도 그렇게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이다.”

성기노 피처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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