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01

토픽셀프 2018. 8. 27. 07:44

01

one-21guns.

오리지널 사니와 언급됩니다.

검x남사니 주의

도검난무 팬픽

캐해석 붕괴 주의

지축을 울리는 엄청난 굉음, 곳곳에서 춤추듯이 치솟아 오르는 붉은 불길, 지옥과 같은 지상의 풍경에도 저 위에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부서진 건물들과 곳곳에 널려있는 시체들 사이로 한 청년이 멍하니 걷고 있었다. 옷은 군데군데 찢어져 핏물이 배여 있었고, 검은색 두 눈은 초점을 잃은 채 떨리고 있었다. 비명이 울려퍼지는 다 부서진 골목길을 지나, 코너길을 돌았다. 그리고 그를 마주한 것은 그를 삼키려드는 붉은색 불길이였다.

불길이 청년의 몸을 휘감을 때, 비명과 함께 청년은 눈을 떳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낡은 환풍기가 돌아가는 곰팡이 낀 누런 천장. 자신이 머무는 여관의 풍경이다. 또 그 꿈이다. 청년은 몸에서 풍겨오는 비린 땀냄새에 미간을 찌푸렸다. 온몸이 땀으로 인해 끈적인다. 청년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욕실로 향했다. 옷을 벗어보니 목에 길게 그인 흉한 상흔이 눈에 뜨인다. 차가운 물로 몸을 적시니 긴장감이 가시는 것 같다. 구석에 아무렇게 구겨져 있는 갈색 가죽 코트를 걸치니 이제야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 든다. 눈을 돌려 빼놓은게 없나 다시 한번 살핀 청년은 구석에 놓인 캐리어를 들고 방을 나왔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내려와 다 쓰러져 가는 카운터에 가 보니 주인은 엎어진 채 잠을 자고 있다. 깨워봤자 일어나지도 않겠지. 한심하다는 듯 잠이 든 주인을 잠시 쏘아보던 청년은 방문 열쇠와 함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카운터에 놓고 머물던 여관을 떠났다. 멍하니 길을 걷던 청년이 발걸음을 멈춘 곳은 한 술집 앞이였다. 붉은색 와이셔츠를 입은 노인은 청년이 오는걸 기다렸다는 듯이 멋들어진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그에게로 다가가 친근하게 웃어보였다.

“생각보다 이른시간에 왔구먼. 그래 내 제안을 받아들여준다니 정말 고맙네..”

“여기 외상값.”

반갑게 두팔벌려 나가오는 노인에게 청년은 손을 내밀어 돈을 건넸다. 외상값. 갚는다고 했지? 돈을 내민채 멍하니 말하는 청년의 손을 주름이 뒤덮힌 큰 손이 뒤덮고는 조용히 청년의 손을 오므렸다. 손바닥으로 거친 청년의 흉터들이 느껴진다. 감정 없이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청년의 모습에 눈시울이 시큼해지는 것을 느끼며 노인은 슬픈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이건 필요 없네. 자네가 쓰게나.”

“빚은 갚아야해.”

“자네가 내 제안을 받아준것만 해도 이 늙은이는 충분히 기뻐. 그건 받아두게.”

노인은 자신의 말에 불쾌하다는 듯이 고운 얼굴을 구긴 채 자신을 쏘아보는 청년을 꼭 안아주었다. 팔 사이로 움찔 놀라는 청년의 몸은 또래에 비해 너무나도 말라있었다.

“가서 행복하게 살아. 뒤돌아보지 말고.”

어딘가 슬퍼보이는 노인에 말에 청년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등을 돌려 캐리어를 질질 끌고 어디론가 떠나기 시작했다. 매정하다고 느낄만한 청년에 태도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입가에 슬퍼보이는 미소를 지은채 청년의 모습이 안보일 때까지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윽고 청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노인은 조용히 품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ooo씨? 정신 차리세요. ooo씨?"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청년은 정신을 차리고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정신이 혼미하고 눈 앞은 흐릿하다. 제대로 뜨이지 않는 눈을 겨우 떠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은 어느새 비행기가 아닌 회색의 정체 모를 방 한가운데에 앉아있었고, 그런 자신 주변에는 자신을 흔들어 깨운 듯한 푸른 와이셔츠를 입은 땅딸막한 청년과 자신을 평가하는 듯한 눈빛으로 훑어보는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남성이 있었다. 그리고 충격에서 벗어난 청년의 머리는 상황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분명 자신은 지인의 도움을 받아 고국에 있는 모든걸 처분하고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비행기에서 스튜디어스가 오렌지 쥬스를 자신의 몸에 쏟았다. 스튜디어스는 미안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더니 다른 컵에 쥬스를 따라 그에게 권했다. 이것이 청년의 마지막 기억이였다. 납치당한건가? 위협을 감지한 청년은 자신을 깨운 땅딸막한 청년을 노려보았다. 청년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푸른 와이셔츠의 청년은 새파랗게 질리더니 양복을 입은 중년에게 뭐라 속삭이기 시작했고, 그 속삭임을 들은 중년은 피식 웃더니 청년 맞은편에 앉고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아직 일본말은 익숙하지 않을 테니 한국말로 하도록 하지요. 저는 일본 정부 관계자 입니다. 제 쪽이 나이가 더 많으니 oo군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는 말이 사실인 마냥 청년은 아까보단 살짝 누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답변이 만족스러운지 중년 남성은 품에서 담배 한갑과 재떨이와 성냥 한 상자를 꺼내 청년에게 건네었고, 그런 모습을 본 청년은 익숙하게 담배갑을 뜯고서는 한 개피를 만족스레 입에 물고 불을 붙힌 다음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불쾌하다는 듯 푸른 와이셔츠의 청년은 과장된 기침소리를 내긴 했지만 매정하게도 청년의 관심은 오직 맞은편에 앉아 있는 중년 남성에게만 향해 있었다. 청년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걸 알아채기라도 한 건지 중년의 남성은 품에서 한 서류뭉치를 꺼내서는 청년에게 읽어주기 시작했다.

"oo군의 서류는 잘 읽어봤어요. 고아원에서 청년시절까지 지냈군요. 아무 사건 사고 없이 완만한 인생이셨군요. 그리고 한국나이 20살에 일반병으로 자진입대. 요즘 한국인 치고는 군대를 가셨네요?"

"18살이지."

"두살 속이신 건가요? 서류를 고쳐야겠군요. 어찌됐든 중동으로 파병 지원하셨더군요. 국제연맹군 소속으로 말이죠."

중년에 말이 끝난 순간 청년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리고선 흥미롭다는듯이 남성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말은 안하지만 어떻게 거기까지 알아냈냐는 반응이다. 그런 청년을 중년 남성은 만족스럽다는듯이 쳐다보고서는 다시 서류 쪽지에 눈을 돌리고서는 말을 잇기 시작했다.

“중동에 4년동안 전투병으로 있으셨군요. 그리고 종전 후, 갑자기 불명예 전역을 했군요. 이유를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남성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남성은 말을 멈춘 채 뒤를 보았다. 뒤에는 청년이 집어던진 듯한 재떨이의 잔해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남성은 쯧하고 혀를 한번 차고는 맞은 편에 서있는 청년을 보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마리의 맹수마냥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말하기 싫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식으로 격한 반응을 보일줄은 몰랐다. 너무 몰아 붙인 것 같다. 남성은 혀를 끌끌차며 두손을 들어보였고, 청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고서는 걸걸한 목소리로 마치 씹어 뱉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날 도발해봤자 얻을건 없잖아? 여긴 어디야? 어떻게 그런것까지 아는거지?"

"알았습니다. 그럼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죠. 지금 저희 일본에서는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건?"

청년은 사건이라는 말에 어느새 호기심을 품고서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남성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띄고선 구석에서 벌벌 떠는 땅딸막한 청년에게 이리 오라는 듯 손짓을 하였다. 이윽고 땅딸막한 청년은 청년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일본은 역사의 개변을 노리는 역사수정주의자들에 의해 과거가 공격 받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희는 '사니와'라는 특이한 영력을 가진 사람들을 각 시대에 보내고 있죠...그들이 하는 일은.."

"과거여행? 영력"

말을 끊은 청년에 눈에는 어느새 호기심 대신 경멸이 가득 차 있었다. 과거여행과 영력이라니. 청년은 한심하다는 듯이 피식 웃고는 말을 계속하였다.

"그런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기껏 한다는 말이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법한 말이라니."

"사실입니다."

중년 남성은 입가에 미소를 지우고서는 진중한 눈빛으로 청년을 쳐다보았고, 청년은 비웃음을 지우고서는 남성에 말에 경청하기 시작했다. 남성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선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곳에는 특이한 영력을 가진 자만 출입할 수 있어서요. 아쉽지만 일반인이 들어가면 단순한 숲만 나온답니다."

"그럼 내가 그 영력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

"그럴 염려는 없습니다. 기내에 있던 스튜디어스중 oo군의 점퍼에 쥬스를 흘렸던 사람 기억하시나요? 그 사람은 사실 당신의 영력을 체크하기 위한 저희 측 인사입니다. 그녀가 체크해 본 결과 당신은 이유는 불명이지만 영력을 지니고 있어요. 간신히 턱걸이 수준이긴 하지만요."

"허. 나 참..."

청년은 허탈하다는 듯이 점퍼를 벗어서는 얼룩을 보고선 피식 웃기 시작했다. 이거 꽤나 비싼건데 고작 본인은 알지 못하는 영력을 확인한답시고 더럽혀지다니.

"그래서 제가 뭘하면 되지? 그냥 가서 앉아있기만 하라는 것은 아닐테고.."

"물론 역사수정주의자들과의 싸움을 하셔야죠. 물론 oo군 혼자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는 당신을 도울 수많은.."

싸움이라니. 남자의 입에서 싸움이라는 소리가 들린 순간, 꿈에서 들렸던 비명소리가 그대로 청년의 귀에 들려왔다. 전쟁이라면 지칠 정도로 해봤다. 청년은 한치의 재고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거절하였다. 청년의 단호한 거절에 남자는 예상했다는 듯이 다른 한장의 서류를 청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면 이건 어떻습니까? 일본에서 지내시는 동안 자택은 무료제공, 게다가 보수도 넉넉히 챙겨드리도록 하죠."

남성의 말에 청년은 고목 마냥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자조섞인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청년의 반응에 남자는 만족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선 열심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프린트기에서 드르륵 나오는 종이를 소중하게 보관한 남자는 미리 준비한 차에 청년을 태워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가는 도중에도 청년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초점 없는 눈으로 창밖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청년을 와이셔츠를 입은 청년이 불신 섞인 눈으로 여기저기 살펴보기 시작했다. 생기가 하나도 없는 것만 같은 눈에 냄새나는 낡은 가죽코트에 여기저기 터진 청바지까지. 도저히 사니와라고는 믿기지 않는 행색이다.

"저기요."

“왜. 와이셔츠.”

"제 이름은 와이셔츠가 아닙니다! 히로키라고 불러주세요. 그리고 처음보는 사인데 말투가 그게 뭡니까!"

"알았어 히로키. 왜 불러."

감정이라곤 하나도 섞이지 않은 메마른 목소리다. 청년의 말에 히로키라 불린 쳥년은 핸드폰을 꺼내서 확인하더니 청년을 쏘아봤다. 뭔가 불만이 있는 모양인데 말로 하지? 청년의 웃음 섞인 비꼬는 듯한 목소리에 히로키의 마음에는 불신이 싹트고 있었다.

“사니와의 일은 절대 편한 일이 아닙니다. 알고 계십니까?”

“편했던 날은 어제까지라는 말도 있지.”

"전 아직도 의심이 갑니다. 당신이 정말 사니와인지 아닌지. 그리고 설령 사니와라고 해도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

"그건 제가 보장하죠. 그는 잘 해낼수 있을거에요. 4년간의 경험이라는 건 쉽게 사라지는게 아니니까요."

말소리가 들려온 곳은 운전석이였다. 운전석에서 차를 몰던 남성은 어느새 차를 세우고선 내리라는 듯 차 문을 열어주었다. 아마도 목적지에 다 온 모양이지. 청년은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펴고서는 목적지라는 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빽빽이 우거진 숲속에 나있는 길 하나, 영력을 가진 사람만 들락날락 할 수 있다는 곳 치고는 너무나도 평범해보였다. 조용히 앉아서 담배를 피고 있으니 어느새 남성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꼭 잡아 보였다.

"떠나시기 전에 먼저 이것들을 준비했습니다."

남성은 말을 마치고선 차의 트렁크를 열었고, 그중 몇개를 챙겨서 청년에게 건네주기 시작했다.

"먼저 이것은 기초 일본어 회화책입니다. 적어도 이 책에 있는 회화는 전부 구사가 가능하셔야지 일반적인 대화가 가능할 거라고 예상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리볼버 권총입니다. 쓰시는 방법은 알고 계시겠죠?"

"싸움터에 보내면서 주는 게 겨우 이런거라고?"

"사실 이것도 겨우 준비한 겁니다. 그닥 필요는 없으시겠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필요한 장비가 있으시면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남자에게서 권총과 권총집을 받아든 청년은 멋스레 한두차례 총을 뱅글뱅글 돌리고선 권총집에 집어넣었고, 청년의 묘기를 잘봤다는 듯이 남자는 박수를 치고선 트렁크에 남은 물품들을 가방에 담아주기 시작했다. 남자는 꽤나 준비를 잘하는 성격인지 꽤나 많은 것을 전해주기 시작했다. 망원경과 나침반, 그리고 옥편과 여벌의 옷등등. 다 담다보니 어느새 가방은 꽉 차있었다. 청년은 가득찬 가방을 땅에 질질 끌면서 숲속으로 향하려고 하였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남성은 갑자기 급한것이 생각났는지 청년을 급히 불러세웠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러고 보니 이름을 정해야합니다."

"이름? 이미 이름이 있는데 무슨 이름?"

"저 곳에서 당신을 도와주실 분들에게는 아무래도 일본식 이름이 쉬우실 겁니다. 그러니 하나 새로 짓는것도 나쁘진 않을거라 생각됩니다. 나중에 정착해서 쓰셔도 되고요."

"하지만 생각나는 이름은 없는데."

"그러면 '나오키'라는 이름은 어떻습니까? 남성이 자주 쓰는 이름이기도 하고 부르기도 편하지요."

"편하신대로. 어차피 아무거나 상관없어."

"그러면 나오키로 하도록 하죠. 자기 소개를 하실땐 반드시 저이름으로 소개해야합니다."

남성의 말을 듣는중 마는둥 청년은 손을 한번 흔들어보이고선 숲속에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걸음을 옮기면서 청년은 숲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새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나무사이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햇살이 쬐는 아주 평화로운 곳이였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전에 숲과는 다른 곳인마냥 앞에 안개가 짙게 껴오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더 걸을 수 없다고 생각한 청년은 가방에서 손전등을 꺼내서 앞길을 비추었으나 워낙 안개가 짙은 탓에 앞길이 쉽게 보이질 않았다. 결국 청년은 안개속을 뚫고 걷기 시작했고, 그렇게 10분정도 걸었을까. 안개속에서 돌연간 한 목조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 청년은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고, 땀을 흘리면서 잠시 휘청거렸다.

그러던 도중, 청년의 발밑에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청년은 목소리가 들리는 발밑을 바라보았고, 그곳에는 자그만한 여우가 있었다.

"혹시 새로 부임하신 사니와 님이신가요?"

"그건 맞는데 지금 혹시 너가 말한거야?"

"네 물론입죠! 콘노스케라고 불러주십쇼! 사니와님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나요?"

"나오키라고 해. 앞으로 잘부탁해."

뭐야. 일본어 어느정도 해야지 대화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런거 못해도 대화할 수 있잖아? 어느새 나오키란 이름을 가지게 된 청년은 콘노스케를 따라 본성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본성은 밖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고, 무기를 제작할수 있는곳부터 노천탕까지 없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본성을 한바퀴 둘러보고 난 후에 콘노스케는 나오키를 마루로 안내하였고, 그곳에는 칼 몆자루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자. 나오키님. 이제 슬슬 도검남사분을 현현시킬 시간이십니다!"

"뭐야. 그건 또?"

"혹시 나오키님. 사니와분들이 하시는 일을 전혀 모르시는 겁니까?"

"알고 있어. 역사수정 뭐시기 하는 놈들이랑 싸우라며?"

"아니 그것도 있습니다만. 반드시 하셔야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콘노스케의 질문에 나오키는 모른다는듯이 어깨를 한번 으쓱여보였고, 그런 그의 반응을 본 콘노스케는 경악하면서 사니와가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입에서 속사포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콘노스케의 말은 너무 빨라서 그가 다 듣진 못했지만, 검에 깃든 신을 깨워서 역사수정주의자들과 싸운다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지 신을 깨우는데?"

"검을 받들고 정신을 집중한 채, 영력을 불어넣어보세요."

콘노스케의 말에 나오키는 두손으로 검을 조심스레 올려들은 다음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몸에서 알수없는 기운같은것이 검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불연듯 검에서 빛이 나더니 이윽고 그의 눈앞에는 제비꽃과 같은 머리색을 가진 화려한 화복을 걸친 청년이 서 있었다. 청년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나는 카센 카네사다. 풍류를 사랑하는 문과계 명도야. 잘 부탁한다. 혹시 그쪽이 내가 모실 주군인가?"

자신을 카센 카네사다라고 소개한 청년은 싱긋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나오키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나오키는 인사를 건넨 그에게 답하는 대신, 옆에 자신을 만족스럽게 쳐다보는 콘노스케를 툭툭치면서 뭐라 말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 뭐라고 하는거지?"

"저분은 카센 카네사다라고 하시는 분이십니다만. 설마 말을 못알아들으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나 일본어 못해."

"자,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런 케이스는 처음이라.."

콘노스케는 말을 마치고 나서는 카센의 어깨를 쪼르륵 타고 올라가서는 둘이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중간중간에 카센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보니 분명 좋은 내용의 대화를 하는건 아닐거라고 나오키는 생각했다. 그렇게 둘이서 얼마나 대화했을까, 콘노스케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카센의 어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사니와님 카센님께서 혹시 대화에 도움되는 책이나 물품같은것은 없냐고 여쭤보셨습니다."

콘노스케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오키는 가방에서 중년 남성이 챙겨준 책을 콘노스케에게 펼쳐주었고, 콘노스케는 그 책을 물고서는 카센에게 전해주고선 둘이서 또 다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책을 몇번 펼쳐본 카센은 다행이라는 듯이 인상을 살짝 풀고서는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사니와님! 카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하루에 시간을 어느정도 내서 저 책을 중심으로 직접 가르쳐주신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콘노스케는 다행이라는 듯이 눈가에 눈물을 글썽이며 앞발로 눈물을 훔치는듯한 시늉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런 콘노스케의 마음과는 달리 나오키의 얼굴은 구겨지기 시작했다. 자신은 일하러 왔지 공부라니 이게 왠말인가. 저쪽 세상에 있었을때도 자신이 제일 자신없어하는것은 바로 공부였다.

"콘노스케."

"네! 사니와님 말씀하십시오."

"가서 카센에게 그냥 이름쓰는법만 가르쳐달라고 해."

"네?! 하지만 적어도 대화법정도는 익혀두시는게 좋지 않겠습니까?"

"나 공부 못해."

나오키에 말에 콘노스케는 앞발로 머리통을 신경질적으로 긁고서는 이쪽을 빤히 보는 카센 카네사다에게 가서 속삭였고, 그 말을 들은 카센의 얼굴은 갑자기 엄격하게 변하더니 콘노스케에게 뭐라고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카센님이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책임지고 가르쳐주신다고 했습니다."

나오키는 멍하니 자신을 엄격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카센 카네사다를 쳐다보았다. 카센 카네사다의 결의를 담은 녹색 눈과 시선이 마주치자 나오키는 졌다는 듯이 두 손을 들어올렸고, 카센 카네사다와 콘노스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니와님! 원래대로라면 전 이쯤에서 다른 곳으로 가봐야 하지만 특별히 도검을 제작하시는 것까지 도와드린다음에 가겠습니다!"

"그냥 여기서 내 통역역활 해주면 안되나? 그게 더 빠를것 같은데."

"안됍니다!"

콘노스케는 그렇게 쏘아붙인 다음, 따라오라는 듯이 고개를 까닥인다음, 도검을 제작하는 곳으로 발을 향했고, 그곳에는 작달한한 난쟁이 비스무리한 것들이 망치를 들고 주인의 지시를 기다리는 듯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저기 망치를 들고 있는 분은 사니와님의 도검제작을 대신해주실 도공입니다."

"저게 도공이라고?"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제작을 의뢰해 보시죠! 아 명심하실게 있다면 자원은 자동적으로 정부측에서 일정기간마다 지원해주긴 하지만 낭비는 안하시는게 좋습니다."

콘노스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오키는 조용히 두 도공을 빤히 쳐다보고 명령을 내렸다. 한쪽은 최소 자원으로, 한쪽은 최대자원으로 제작을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두 도공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원을 가져와 불에 넣었고, 자원이 쑥쑥 빠져나가는 걸 보자 콘노스케는 다급히 나오키의 어깨로 쪼르르 올라가 캥캥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사니와님! 자원을 그렇게 낭비하면 안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 수학 못해. 지원해준다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귀한 자원을 이렇게 낭비하시면!"

"됐고 쟤네가 약 3시간 이상 걸린다고 했거든? 난 낮잠이나 자려고 하는데 어디서 자면 되냐?"

세 시간이라는 말에 콘노스케의 눈이 갑자기 빛나더니 카센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뭐라고 한 다음, 같이 어디론가 가기 시작했고, 잠시 후 나오키가 따라간 곳에는 책상과 자신이 들고온 책, 그리고 필기구들이 놓여있었다.

"주군. 이리로 와서 앉아라. 마침 시간도 공부하기 좋을때구나."

"사니와님! 카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공부를 시작하자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 떨어지는소리지? 나오키는 영문 모를 표정으로 책상앞에 가부좌를 한채 자신을 바라보는 카센과 그 옆에서 꼬리를 살랑이는 콘노스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안그래도 이곳에 들어올때 알지 못하는 이유로 힘이 쭉 빠졌고, 그 후에 쉬지도 못하고 카센이란 청년을 현현시키느라 힘이 또 빠져버린 그였다. 그래서 체력도 회복할겸 낮잠이라도 잘까 생각했는데 공부라니. 나오키는 한숨을 쉬면서 카센을 바라보았지만 카센 카네사다는 봐주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 시작했다.

"주군. 글씨가 삐뚤어지지 않았나. 다시 한번 써보도록."

"사니와님! 카센님께서 사니와님의 글씨가 삐뚤어졌다고 다시 쓰시라고 하십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첫날부터 공부의 강도는 장난이 아니였다. 앉은지 한시간이 지난것 같건만 휴식은 커녕 물 한잔도 못마셨고, 슬슬 앉은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아는지 모르는지 앞에 앉아있는 카센 카네사다는 계속해서 글씨만 쓸것을 요구하였고, 결국 참다못한 나오키는 자신 옆에서 쫑알대는 콘노스케를 부여잡고 조용히 협박하기 시작했다.

"야. 난 여기 싸우러 왔지. 이렇게 시간만 버리러 온게 아닌데?"

"하지만 사니와님! 아직 자리에 앉으신지 십분밖에 안됐습니다!"

"십분? 겨우 십분 지났다고?"

"주군. 빨리 그 여우를 내려놓고 글을 쓰거라. 하루라도 빨리 글을 익혀야한다."

"사니와님! 카센 카네사다님께서 빨리 저를 내려놓으시고 어서 글을 쓰시라고 합니다!"

그래 어쩌겠냐. 이것도 내 운명인 것을. 나오키는 자포자기한 얼굴로 카센이 가르치는 대로 글을 쓰고 읽기 시작했다. 카센 카네사다는 자신이 가르친 것과는 달리 삐뚤빼뚤 붓가는대로 글씨를 쓰고 있는 나오키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았다. 나오키의 첫 인상은 그리 좋은편이 아니였다.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다 찢어진 복장에 곱상하고 여리여리하게 생긴 얼굴과는 달리 한쪽 목에는 기나긴 검상이 나 있었고, 작은 흉터들이 빼곡히 자리잡은 손은 매우 거칠어 보였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검은색 마노석과도 같은 검은 눈이다. 카센의 눈과 마주친 그의 눈에는 자조와 왠지 모를 슬픔만이 가득 차 있다.

카센 카네사다가 자신을 빤히 바라본다는 걸 알자마자 나오키의 눈썹이 불쾌하다는 듯이 꿈틀거린다. 안그래도 지쳐죽겠는데 저런 사람을 관찰하는 눈빛이라니. 불쾌한 마음이 든다. 뭐라고 따지려고 입을 열려던 찰나, 눈 앞의 카센의 입가가 쓰윽 올라간다. 입가는 웃고 있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초록색 두 눈에는 연민과 안타까움이 가득 차 있었다. 할 말을 잃은 채 서로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을 때, 콘노스케의 캥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단도가 완료 되었다며 꼬리를 살랑인다.

콘노스케를 따라가 보니 단도실 안에는 어느새 조그만한 단도 하나와 전신이 하얀 긴 검이 하나 놓여 있었다. 먼저 작은 것부터 해볼까? 조용히 자그마한 단도를 손에 잡고 아까처럼 힘을 불어넣으니 하얀 빛이 터져나오더니 자그마한 소년이 서있다. 검은색 머리카락의 소년은 나오키를 보자마자 보라색 눈을 곱게 휘며 곱게 웃어보였다.

“여어 대장. 나는 야겐 토시로다. 형제랑 함께 잘 부탁해.”

“방금 뭐라고 한거지?”

“저분은 야겐 토시로라고 하옵니다. 아와타구치의 구성원들중 한분이시죠.”

“아와타..뭐?”

“나중에 곧 알게 되실것이옵니다!”

콘노스케는 설명을 마친 뒤, 야겐 토시로의 어깨로 쪼르륵 올라가 야겐 토시로의 귀에 카센 카네사다때와 같은 설명을 해 주었고 콘노스케의 설명을 듣자마자 웃음끼를 띈 야겐 토시로의 보랏빛눈은 어느새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게 왠지 열받는다. 그래도 해야할 일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옆에 놓인 하얀색 검을 들어 힘을 불어넣는다. 힘을 불어넣자마자 하얀빛 빛 안에서 허연 물체가 고함과 함께 쑥 튀어나온다.

“와악!”

“..뭐야?”

“쳇. 뭔가? 그 재미없는 얼굴은. 어쨌든 츠루마루 쿠니나가다. 헤이안 시대에 만들어지고 나서부터, 이 주인 저 주인을 전전하면서 지금껏 살았지.”

“저건 또 뭐래냐.”

“저분은 고죠의 츠루마루 쿠니나가 님이십니다. 헤이안 시대의 태도시죠.”

분명 들리는 건 한국말인데 하나도 못알아먹겠다. 콘노스케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북적대는 나오키를 내버려두고 츠루마루 쿠니나가의 어깨로 올라가 아까와 똑같은 설명을 해 주었다. 콘노스케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츠루마루의 장난끼 어린 황금빛 눈이 그에게 향한다. 츠루마루의 킬킬대는 웃음소리에 나오키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세명의 도검 남사를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맨 먼저 자신이 현현시킨 카센 카네사다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심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고, 두 번째로 현현시킨 야겐 토시로는 보랏빛 눈에 걱정을 한가득 담은채 자신을 향해 뭐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현시킨 츠루마루 쿠니나가는 짖궂게 웃고 있다. 이 세명과 함께 일해야 한다니. 귀찮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공감 sns 신고 저작자표시

from http://frydaymorning.tistory.com/65 by ccl(A)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