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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8 2016 동남아 한인성당 청소년 연합캠프

첫째 날

신부님이 "8월에 바쁘니, 시간 괜찮으면 아이들 데리고 싱가폴 성당에서 한다는 청소년 연합캠프 좀 다녀올래?"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는 별 생각도 없이 "예"라고 대답했었다. 기억으로는 6월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한 것도 없이 8월이 다가오고 캠프가 다가왔다.

이삼년짜리 석사과정 하러 하노이 나오는 그 전날에도 아무생각 없이 속 편하게 잘 잤던 것 같은데 이박삼일 캠프가 뭐라고 잠을 못 이루고 뒤척거린건지. 잠이 오지 않는 밤을 더듬더듬거리다 핸드폰 액정에 찍힌 세시 삼십이분이란 숫자를 마지막으로 기억도 없이 스르르 잠들었다가 다섯시 반에 벌떡 일어나 부리나케 짐을 챙겨 나왔다. 공항까지는 성당 봉고차로 이동해야하니 나는 만다린 김삿갓 앞에서 봉고차를 타야한다. 택시를 잡아 타고 가는데 어째.. 시내로 들어가는데 그 뒤로 깔린 하늘이 심상치 않게 우중충해보인다. 요즘 차들은 앞 창에도 썬팅지를 이렇게 붙이나...했더니 아뿔싸 썬팅지가 아니라 먹구름이다. 먹구름 가득 낀 도시의 한 복판으로 들어가려니 어째 재난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아이들 수도 많고 짐도 많을텐데 비오면 픽업하기 힘들텐데...생각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대비가 쏟아진다.

택시에 내려서 건물 밑에 서있는데도 바람이 세다보니 비가 옆으로 흩날리며 나도 쫄딱 젖어버렸다. 늘 오토바이만 타고 다니다가 오늘 택시를 타니 내가 신경써서 운전 안해도 되고 역시 차가 좋네~했더니만.. 이럴 땐 오토바이 안장 밑에 있는 16만동짜리 내 우비가 너무 간절히 그립다. 성당 봉고차를 보고 후다닥 뛰어 재빨리 차에 올라탔는데도 물에 빠진 생쥐꼴이다. 아니나 다를까 같은 인솔교사 선생님도 홀딱 젖은 채 타신다. (ㅋㅋㅋ)

경남 케이마트 앞으로 픽업을 가는데 비바람이 거세 차가 느릿느릿 간다. 느릿느릿 가다보니 좀 전까지만해도 매섭던 비바람이 슬금슬금 잠잠해지는 기미가 보인다. 케이마트께 도착해 아이들을 태우고 미딩으로 가니 부슬비 수준으로 변해버린다. 다행이긴한데 어째 억울한 마음이 든다. 이럴거면 더 일찍 오든가.. 조금만 더 늦게 오든가 하지..

여튼 아이들을 다 태우고 미딩 파리바게트를 돌아 공항으로 향한다. 중고등부 아이들이니 초등부 주일학교를 나가는 나는 가끔 토요일 미사에서 스쳐지나가던 한 두 얼굴정도만 알고, 다들 처음 보는 얼굴들이다. 미딩을 빠져 나오며 캠프 잘 다녀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 함께 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캠프 일정을 시작했다.

꺼우져이쪽으로 빠져 나가니.. 안그래도 공사때문에 협소한 도로가 비가 와서 더 막힌다. 일찍 출발했으니 공항에 늦을 일은 없겠다만 길이 하도 막혀 답답했다. 여튼 이렇게 시간을 한참 잡아먹고도 노이바이 공항엔 제 때 도착했고, 14명이나 되었던 탓에 당당하게 그룹 체크인 카운터로 가서 티켓팅을 한다. 티켓팅을 담당하던 아잉은 귀엽게 2분 3분만 기다려달라더니 화장실에 가선 돌아올 생각을 않는다. 아이들이 "쌤 뭐해요" 하기에 화장실 간 "아잉어이 기다려..."하며 10분을 기다리니 쑥쓰러운 미소로 땡큐 하며 돌아온다.

14명 티켓팅을 다 마치고 아이들에게 여권과 티켓을 나눠주려 주섬주섬 챙기고 있으니 카운터 아잉이 "손님들 잘 데리고 다녀와~~"한다. 내가 가이드인 줄 알았는갑다.. ㅠ0ㅠ

비행시간이 빠듯해서 다들 기내 반입할 수 있는 트렁크와 배낭 위주로 짐을 싸고.. 짐검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들어온다. 탑승게이트 앞에 서니 그제서야 살짝 공항까지 잘 왔군 하는 안도감이 들며 허기가 몰려온다. 그리고 노이바이 공항에 오면 파파이스를 가야지..! 다 함께 이동해서 시간도 때우고 끼니도 때운다. 단톡에 사진을 보냈더니 햄버거를 가장 맛있게 먹던 아이 어머님이 '아침으로 미역국 먹고 또 새참으로 햄버거 먹네' 하셔서 다함께 빵 터졌다.

햄버거를 먹고 이십만동짜리 전화카드를 사서 충전하고 로밍도 신청한다(이때 신청한 로밍은 데이터를 단 1도 띄워주지도 않아놓고선 순식간에 잔고를 다 비워버렸다.. 비엣텔은 반성하라 ㅠㅠ). 시간을 맞춰 탑승게이트 앞으로 이동하니 "20분 있다가 와"한다. 비행기 출발이 30분가량 지연된 것이다. 싱가폴 공항으로 마중나올 차량이 걱정된다. 베트남과 다르게 딱 30분까지만 기다려주고 그 이후엔 추가요금이 붙는다던데.. 부랴부랴 연락해 약속시간을 30분 뒤로 미룬다.

겸사겸사 아이들에게 일정표도 나누어주고 화장실도 다녀오고하며 시간을 보내다 탑승한다. 그러고보니 4년 전 학부생 연수 시절에 베트남항공을 타고 왔다갔다했었는데.... 그때는 지금은 국내선 청사로 쓰이는 건물이 국제선 청사였다. 외국으로 연수온다고 두근두근하며 도착해서 나왔는데 무슨 8,90년대 시외버스 터미널 같은 곳에서 "노이바이 국제 공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는 방송과 담배연기가 나를 맞이하던 그 때의 그 충격을 잊지 못한다 ㅡ.ㅡ 여튼 이륙하니 또 창 밖으론 베트남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애들 안전벨트를 다 채우고 앉으니 싱가폴 입국신고서와 기내식을 나눠준다.

싱가폴에서 마약거래 하면 사형이다라는 빨간 문구에 괜히 쫄아서(...) 아이들에게 싱가폴에서 막 뭐 버리고 사고치고 하면 벌금폭탄이나 곤장 맞는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내 기내식을 나눠준다. 수화물이 많아서 매번 수화물요금이 저렴한 비엣젯을 타고 다녔는데.. 기내식 추가 구매 없이도 이렇게 밥을 받다니.. 기분이 묘하다. 좀 전에 파파이스에서 아무것도 안 먹은 것처럼 호로록 다 먹었다.

싱가폴 창이공항에 도착.. 짐을 챙기고 화장실에 들리고 입국카드를 작성해서 나와 버스기사를 만났다. 아이들은 한사코 카메라를 피한다(ㅋㅋㅋ)

맥도날드다..우와...우와...빅맥.. 하다가 늦었으니 냉큼 버스 기사를 따라 쫄래쫄래 이동한다.

공항-싱가폴 성당까지 이동하는 픽업버스도 우리 성당에서 지원해주셨다. 트랜스포머의 범블비가 튀어나온 것 같이 노랗고 귀여운 버스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올라탄다. 영국과 일본처럼 기사 운전석이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있다.

쓰레기 하나 없이 단정하고 깔끔한 도시에.. 아기자기한 아파트들.. 베트남과 너무 다른 느낌이라 약간 얼떨떨하다.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대부분이고 오토바이는 거의 없다. 간혹 보이는 오토바이도 전부 좀 비싸보이는 오토바이들이다. 여긴 신기하게 거의 모든 오토바이들이 뒤에 탑박스를 달았다.

택시들은 또 저렇게 생겼는데 차종별로 색이 다 달랐다. 회사마다 다른건지.. 하여튼 흰색택시는 벤츠였으니 아마 색깔별로 요금도 다르겠구나 싶었다. 도로에 노란택시 빨간택시 파란택시들이 막 지나다니니 카트라이더 같고 앙증맞게(...) 귀여웠다.

깔끔한 도로와 건물들.. 말로만 듣던 싱가폴이 이렇구나.. 동남아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한참 하다가 빵 터져버린 것이 있었으니...

정말 너무나도 깔끔하고 세련된 도시에 너무나도 중국(?)같고 동남아 같은 빨랫대... ㅋㅋㅋㅋㅋ 성당 가는 길에 나오는 아파트들마다 거의 다 저렇게 되어 있어서 한참을 웃었다.

싱가폴의 풍경들을 지나 버스는 Nativity 성당에 도착. 정신없이 아이들과 짐을 챙겨 내려서 성당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보이는 광경.

폴리네시안 여성이 하얀 순백의 성당, 성모상 앞에 무릎 꿇고 기도드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노이 한인성당같은 경우는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관공서와 주요기관이 노란 건물인데다가, 바로 옆 성요셉 대성당의 경우 공산정권 치하에서의 종교탄압으로 인해 고딕양식의 성당이 관리를 전혀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외벽이 상하고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맞받아낸 모습이다. 베트남 사람과 확연히 구분되는 피부색의 또 다른 외국인, 순백의 성당.. 이제서야 싱가폴에 온 게 실감난다.

성당을 힐끗 들여다보니 사람은 없고.. 어디로 가야하나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일하던 현지인 분이 나와 "코리안 처치?"라고 물으신다. 웃으면서 성당 뒷쪽 건물을 가리키신다. 성당인 줄 몰랐던 건물들까지 성당이었구나.. 아이들을 불러모아 캐리어와 가방을 끌고 내려간다.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가 나와 어디서 오셨냐 묻기에 하노이 성당이라 인사드리고 들어간다. 알고보니 큰 카메라에 어마어마한 렌즈까지 들고 계셨던 그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는 아저씨가 아니라(...) 미얀마 양곤 성당에서 오신 신부님이셨다(...)

내려가는 길에 엄청나게 큰 주방시설이 있었고 몇몇 한국분들이 분주히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성당에 이런 큰 주방시설이.. 바로 앞에 있던 곳은 식당인 모양이었다. Casa Maria, 마리아의 집.. 마지막날 알게 된 것인데 현지인들 미사에서도 미사를 드리고 다들 여기와서 표를 받아 식사를 하더라. 여튼 여기에 짐을 놓고 싱가폴 선생님들이 챙겨주시는 단체티로 갈아입는다.

쨘. 아이들은 녹색티를, 선생님들은 자주색 티를 입고 강당으로 모였다.

성당마다 모이는 시간이 다 달랐다. 우리는 비행시간때문에 중간에 들어갔지만 다행히 시작한 지 얼마 된 것 같지는 않았다. 인도 첸나이 성당 같은 경우에는 이날 아침 6시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렇게 큰 강당도 있구나 우와하며 속으로 하노이안 촌티를 좀 내고..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진행하시는 남자분이 예사롭지 않았다. 여기는 레크리에이션 강사도 따로 불러와서 준비하나보다 하고 있었는데 세상에 싱가폴성당 보좌신부님이셨다(....). 우리성당 신부님은 그냥 봐도 신부님처럼(?) 생기셨는데..(ㅋㅋㅋ) 여튼 이렇게 왜 우리가 여기 모였는지, "자비"라는 주제로 무엇을 할 것인지 등등에 대한 캠프소개를 마친다.

옆에 앉은 생전 처음보는 친구들과 어색함을 덜고자 이런저런 게임들이 진행된다.

같은 성당끼리 한 줄로 앉아있으니 옆으로 돌아 다른 성당 친구들 안마해주기...를 시작으로..

명찰 뒤에 있던 스티커판을 꺼내, 다른 성당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하며 승패에 따라 얼굴에 스티커 붙이기, 그렇게 가지고 있는 스티커를 빨리 털어버리고(?) 자리에 앉기.. 게임을 시작한다.

슬슬 한두명씩 붙잡고 가위바위보를 하고...

구석으로 도망가서 아 선생님 뭘 이런걸 해요 하는 아이들도 나오고(ㅋㅋㅋ)

구석으로 도망가더니 결국 나와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친구들 붙잡고 가위바위보를 시작(...)

뭘 이런걸 하냐더니 신나게 돌아다니고 얼굴에 스티커 한가득 붙이곤 좋다고 웃는 아이들.... ㅋㅋㅋ

이제는 모여 앉아서 서로의 얼굴에 붙은 스티커를 서로 떼준다.

그 후에는 성당별로 골고루 분배되어 짜인 조별로 흩어져 앉아... 조장 한 명 뽑기 그렇잖아, 모두가 하난데! 하나의 얼굴과도 같은 우리 조의 눈, 코, 입 등등 각자의 역할을 뽑는다.

그렇게 조별 편성을 마치고.. 짐을 놓았던 까사마리아로 돌아가 저녁식사를 한다.

접시를 들고 싱가폴성당 자모회분들이 나눠주시는 밥과 국, 반찬을 받는다. 이렇게 큰 주방이 있는 것도 부럽고.. 무엇보다도 좋은건 야외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야외에서 식사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이 날씨.. 온도는 하노이와 크게 차이 안나는 것 같은데(약 30도) 습하지가 않고 되려 선선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날 저녁은 비엔나 소시지 반찬과 김치찌개였는데 나는 김치찌개를 근 두달만에 먹는 것 같아서 신나게 먹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신나있는 것 같았다(....)

(사실 저 상이 어떤 분이신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 수도원이니까..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시겠지..? ㅡ.ㅡ)

식사를 마시고 조별로 차량을 타고 2박3일 캠프장소로 이동.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 수도원이다. 이 분은 상당히 재능이 있으셔서 젊은 나이에 교수자리를 보장받고 대학에서 강의하던 중 신부님이 되셨다. 세속적 야망과 은총의 소명 사이에 놓여있던 그런 분이다. 그렇게 예수회 창립멤버로, 인도에 넘어오셔서 "아이들"에 초점을 맞춘 선교사업을 진행하시고 일본까지 넘어가셔서 활동을 하시다 중국 선교를 목전에 두고 병으로 사망하셨다. 그렇다보니 동남아에만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를 기리는 곳들이 몇 군데 있는 모양이다. 아이들과 함께 온 신앙캠프에 장소가 마침 또 아이들을 생각하던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 수도원이니 너무 짜맞추는건지 하여튼 또 감회가 남다르더라.

들어가서 숙소를 배정하고 숙소에 짐을 가져다 놓고 다시 모이기로 한다. 중학생 아이들을 남녀 각각 20인실 도미토리(기숙사)에 배정하니 아이들의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20명이 한 방이라고요~?!?!?" "어떻게 살아요 거기서!!"

너희 그래놓고 밤 늦게까지 수다 떨거고 베개싸움 할거잖아..그래서 선생님들이 돌아다니며 재워야할거잖아.....(ㅋㅋㅋ) 남은 고학년 중등부 아이들과 고등학생 아이들은 2인/1실 혹은 3인/1실로 배정받고 선생님들도 2인/1실로 배정을 받았다. 나는 첸나이성당에서 오신 분과 같은 숙소를 쓰게 되었다. 숙소는 생각보다 허름했지만 수도원이니까.. 물욕일랑은 곱게 접어두자..

이후 수도원 내 강당으로 모여 아이들은 찬양을 배웠다. 혼자 가만히 속으로 드리는 찬양이 하나의 찬양이라면 소리내어 말로 드리는 찬양은 두 배의 찬양, 노래로 드리는 찬양은 세 배의 찬양, 몸으로 드리는 찬양은 네 배의 찬양, 율동(노래+몸)으로 드리는 찬양은 다섯 배의 찬양...이란다. 찬양 담당선생님들이 진행하시고 교사들은 따로 모여 일정과 프로그램 점검하느라 찬양 사진은 없고...

이후에 참회예절이 진행되었다. 선생님들의 연극을 보고, 자비가 뭔지 생각해보고, 불을 끄고 우리의 잘못과 죄를 생각해보고.. 아이들에게 신문지와 싸인펜을 나누어주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잘못한 일들을 적어내려가기. 나도 신문지 한 장을 내 앞으로 끌어온다. 여태껏 봐왔던 고해성사들에서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모든 죄'로 포장했던 잘못과 죄까지도 적는다. 신부님이 다 적었는지 물어보시더니 적었던 신문지를 다 찢어버리라 하신다. 아이들이 머뭇머뭇거리더니 신문지를 반으로 쭉 찢는다. 더 찢으란 말에 다시 반을 찢더니 어느순간부터인가 북북 찢기들 시작한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잘못과 죄들은 날짜가 지나버린 신문지만큼이나, 찢어진 신문지만큼이나 아무것도 아닐까?

옆 방에선 세 분의 신부님이 또 별도로 고해성사를 봐주시고,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잘못과 죄가 적혔다가 갈기갈기 찢어져 흔적도 없는 신문지조각들을 서로 던지기 시작한다. 일대 전투가 시작된다(...)

옆에 싱가폴성당 선생님이었는데.. 사진 찍는 순간 얼굴에 신문지를 정통으로 맞아버리셨다... ㅋㅋㅋㅋㅋㅋㅋ

불 꺼진 방에서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저지른 잘못과 죄들을 생각하느라 침울해졌던 분위기에서 신문지를 머뭇머뭇 찢던 애들은 다 어딜갔는지... 그래도 그런 잘못과 죄들을 참회하고 적어 내려가고 찢어버린 순간들이 본인들은 몰라도 제법 홀가분해졌던 것이겠지... 그래서 그런 것이겠지.. 나는 구석에 가만히 서서 허허 녀석들 하고 있다가 신문지 폭탄을 맞았다(...) 결국 전투에 가세해 서로들에게 신문지를 던지고 놀았다.

이어지는 순서는 떼제미사다. 떼제미사 때 부를 성가를 배우고, 미사 중 봉헌은 신문지로 십자가를 만들어 그 십자가를 제대 앞에 봉헌하기로 한다. 우리 잘못과 죄들로 만들어진 십자가인데.. 애들이 이 의미를 좀 알아야할텐데...(하긴 나도 중고등학생 때 별 생각 없었으니...)

떼제미사는 프랑스 남부지방의 떼제라는 지역에서 기독교의 각 종파들이 모여 드리던 미사에서 유래되었다한다. 떼제미사곡의 특징은 짧은 노래를 반복해 부르는 것인데 때에 따라 조금 느려지는 부분도 있고, 허밍(흥얼거림)을 더하기도 한다. 짧은 가사를 오랫동안 계속 반복해 부름으로서 우리 안에 오롯이 와닿고, 그렇게 또 다른 하나의 묵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왼손에는 촛불을(LED촛불 사용), 오른손에는 각자 만든 십자가를 들고 둘씩 짝을 지어 들어가 제대 앞에 반달모양으로 앉는다. 무지 늦은 시간에 불을 다 꺼놓고 led촛불만 빛나고 있다시피한 상황이라 졸릴 법도 한데 아이들은 제법 잘 버틴다. 봉헌때는 십자가를 제대 앞에 봉헌하고 신자들의 기도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어떤 기도든 소리 높여 드리는 것으로 진행하였다. 아이들은 부모님, 가족, 여러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자발적으로 바쳤다. 성체는 양형성체로 성혈과 성체를 함께 모셨다. 성체를 모시고 옆으로 살짝 나와 무릎을 꿇고 십자가상을 보며 충분히 기도를 드리고 들어가는 것으로. 짧게 드리고 가는 아이들, 제법 오래 머물다 가는 아이들.. 어떤 기도들이 바쳐졌을까?

미사 후.. 떡과 음료수같은 간단한 간식을 먹고 열두시즈음 아이들은 자러 들어갔다. 남은 교사들은 강당에 모여 신문지 전투 후의 파편(...)들을 치웠다. 내가 제일 열심히 찢어서 던졌는데.. 작작 좀 할 걸 하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쓸어담고, 다함께 모여 내일 일정 점검. 숙소로 돌아오니 새벽 2시다. 내일 아침 7시 반부터 일정 시작인데... 샤워는 아침에 일어나서 하자는 생각으로 이만 닦고 옷만 갈아입고 누웠다. 몸을 뉘이니 침대가 가득 찬다. 얇고 부슬부슬한 수도원 이불을 덮는 둥 마는 둥 하고 잔다.

둘째 날

둘째 날 아침이 밝는다.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깨우는 건 싱가폴 선생님들의 몫이었다. 왜냐면 해외인솔교사 숙소는 초토화.. 피곤해 죽겠어서 샤워도 겨우겨우하고 시간도 겨우 맞춰 나왔다. 강당에 모여 간단한 기도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몸을 풀기 위해 다함께 새천년국민체조를 한다. 고등학교 다닐 때 새로 나왔다고 배운 것 같은데..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동작을 하나 하는데 뚜둑소리가 나서 어이구 하다 그냥 구석에 서서 아이들을 본다. (다른 선생님들도 슬슬 옆으로 오신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아침 식사 시간은 한 시간이 주어진다. 계란후라이와 소시지, 빵과 요플레가 보인다. 하노이와서 혼자 살다보니.. 한국과는 다르게 아침을 잘 안 챙겨먹게 된다. 한국에선 아침없인 못 살았는데.. 가만 그러고보니 아침도 못(안) 먹는데 왜 살은 15키로가 더 찐거지... 아 지구에서 차지하는 내 비중이 날로날로 늘어간다..같은 온갖 이상한 생각을 잠결에 의식의 흐름대로 하며 아침을 먹다가... 자모회분들의 '선생님들 커피있는데 커피드실래요'하는 말씀에 눈이 번쩍 띄였다. G7같은 싱가폴 커피는 어떨까 궁금해하며 갔더니 웬걸 죄다 남양 프렌치카페..정겨운 한국의 커피믹스다. 한국보다 더 한국같은 싱가폴이었다.

아침을 먹고 조금이라도 더 자보겠다고 숙소로 들어가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신나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있다. 나는 강당 옆 교사실로 모여서 다음에 이어질 활동들을 준비한다. 슬쩍 들어가니 아이들은 또 언제 졸려했냐는듯이 자비의 희년에 대해 설명하는 신부님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런데... 뭔가 쎄한 느낌이다.... 보여야 할 아이들이 안 보인다. 다른 아이들은 다 있는데 우리 성당 아이들 셋이 안 보인다(...) 싱가폴 선생님들과 열심히 숙소를 뒤지는데 있어야 할 방에는 없고 강당엔 안 나타나고... 나는 속이 타들어가는데 싱가폴 선생님들은 천하태평이다. "괜찮아요 수도원 나가지도 못하고 나가봤자 외곽이라 뭐 별 일 없을거에요. 그리고 아마 어디서 자고 있겠죠". 그래.. 문이 잠겨있던 한 방에서 선생님들이 문 두드리는 소리도 못 들을정도로 곯아 떨어져있었던 것이다. 아휴, 별 탈 없이 잠 좀 잤으니 다행이다.

아이들이 자비의 희년 설명을 듣고 간단한 활동을 하는 동안 선생님들은 열심히 돌아다니며 보물찾기의 보물을 숨겨놓았다. 아이들이 돌아다니며 이 쪽지들을 찾아서 그 곳에 써있는 성경 구절을 적어야 하는 게임이다. 보물을 찾으면, 성경을 들고 다니는 선생님들을 또 잡아서 성경 구절을 찾아야 한다. 햇빛 쨍한데 어떤 선생님들이 성경을 들고 돌아다니냐고? 젊은 선생님(...)들이다. 신구약 합본 성경을 들고 다니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영한대역, 중국어 성경을 든 선생님도 있고 하등 도움이 안되는 매일미사(ㅋㅋㅋ)를 들고 다니는 선생님들도 있다. 여기저기 숨어있거나 아이들을 피해 도망다니는 선생님들을 잡아야한다.

기진맥진해서 강당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이 다시 조별로 흩어져서, 자기가 찾았던 성경구절으로 '몸으로 말해요' 게임을 해야 한다. 성경구절은 모두 자비와 관련된 구절들이었다. 아이들 떼거리로부터 도망다니느라 땀을 뻘뻘 흘렸더니 피곤함이 몰려온다. 마침 내가 맡은 조의 싱가폴 교사 선생님(직장인인 관계로 금요일 밤 늦게 오셨다)이 계셔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게임을 하고.. 점심을 먹는다.

점심 이후 대망의 야외게임이 진행된다. 야외에 5개의 포스트(지점)들을 만들고 아이들이 조별로 돌아다닌다. 모두 '자비'를 다시금 되새겨볼 수 있는 게임들이었다. 나는 젊은 선생님이므로 또 차출되어 한 개 포스트를 지키고 있는다. 내가 맡은 포스트는.. 바디페인팅 크레파스와 물감, 물이 있는 곳이다.

아이들이 바디페인팅 크레파스를 하나씩 들고 같은 조 친구의 얼굴에 칭찬의 문구를 하나씩 적어준다. 그리고 조별로 단어를 하나씩 뽑아 얼굴에 그 단어와 관련된 그림을 그린다. 평화 라는 단어를 뽑으면 비둘기를 그리고 사랑을 뽑으면 하트를 그리고 뭐 그런 식으로.. 이후에는 손에 바디페인팅 물감을 짜서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 시간들.... (ㅋㅋㅋ) 그 후에 조별로 뽑았던 단어의 느낌으로 포즈를 취해 사진을 찍고, 점프샷을 찍는다. 옆으로 이동해서 풀장에서 얼굴을 닦는데, 자기 얼굴을 닦는게 아니라 서로의 얼굴을 닦아주는.. 그런 게임이었다.

내가 담당한 포스트로 이동해서 준비하는동안.. 선생님들이랑 다 같이 레드불을 마시고 시작

싱가폴 레드불은 또 느낌이 남다르다.

앞쪽에는 바디페인팅 크레파스, 물감을 준비해놓고 한 켠에 대야와 폼클렌징, 물을 담을 풀장을 준비한다.

풀장이 있어도 사실상 물호스가 최고였다.

참고로 이 포스트가 있던 곳은 십자가의 길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십자가의 길을 하는 게 아니어도 한 번 돌아야겠다! 했지만.. 매일 3시간 4시간 자고 아침에 씻는 것도 바빠서 결국....흑흑...

아이들 사진을 좀 찍으려고 했으나.. 아이들도 다른 곳에서 물을 사용하고 오고 나도 아이들 씻는 것을 도와주다보니..

물때문에 핸드폰을 저 멀리 놓고 와야했다. 아이들이 얼굴만 씻겠는가.. 물감으로 선생님도 묻히고.. 대야에 물이 차있으니 물도 뿌리기도 하고..

결국 처음 온 조의 우리 아이들 사진만 조금 찍다가 싱가폴 사진담당 선생님을 믿기로 하고 맘 편히 애들 얼굴 닦는 일에 집중했다.

점프샷 찍기 등등 각 포스트에 숨어있는 미션들이 있었는데, 그 미션에 따라 아이들은 5개에서 10개 사이의 구슬을 받는다.

약 세시간 가량 진행된 게임 후 잠깐 아이스크림을 먹고.. 물총게임을 시작한다. 다들 물총과 신문지 옷을 받는데 구슬 갯수에 따라 1등부터 10등까지, 조마다 아이템을 추가로 받는다.

조끼를 받아서 신문지 옷이 절대 안 찢어질 것 같은 조가 있는가 하면.. 묵주를 받은 조(ㅋㅋㅋㅋ), 자비의 방패라는 종이방패(...)를 받은 조에 하등 상관없는 왕썬글라스를 받은 조도 있었다.

피곤에 지쳐서 에휴 니들은 놀아라.. 나는 놀 때가 지났다하는 마인드로 멀찍이 서있는데 누가 물을 확 뿌린다. 어푸어푸하다 누구야하고 보니 싱가폴성당 주임신부님이시다. 어떻게든 덜 젖고 싶어서 도망다녔는데 신부님이 계속 여기저기 물을 뿌리시며 공격을 감행하신다. 아이들도 선생님한테 물총 쏜다고 정신이 없다. 시계를 풀고 핸드폰을 꺼내 실내에 계신 선생님께 맡기고 물총을 들고 뛰어들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며 아이들과 신부님께 한바탕 물을 쏘고 다녔다. 하긴...내가 언제 신부님한테 물총을 쏴보겠어.. 젖어도 후회가 없다..하며...

미칠듯이 쨍하다가 어느순간부터 구름이 끼고 간간히 천둥소리가 들려오더니.. 물총게임 끝물에 천둥이 잦아진다. 그래도 계획한 시간동안 즐겁게 잘 놀고 아이들은 숙소로 돌아가서 샤워를 한다. 나중에 듣다보니 여긴 비 내리는 게 큰 문제는 아니고 오히려 번개(벼락)이 더 문제라 한다. 세계에서 낙뢰로 죽는 사람이 가장 많은 국가라는 이야기도 한다. 비 내렸어도 물총게임을 했을테지만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면 바로 중단했을 것이라는 다른 선생님의 말도 들었다.

저녁 먹기 전, 저녁에 드릴 미사가 열린미사로 봉헌될 예정이므로.. 조별로 각자 담당할 부분을 뽑는다. 복음환호송을 랩으로 드린다든가.. 주님의 기도를 마임으로 드린다든가.. 우선 저녁을 먹으며 곰곰히 생각하고.. 저녁을 먹고도 모여서 맡은 부분 아이디어를 짜내고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조는 복음환호송에 랩을 뽑았는데.. 참 신기하게도 성당별로 나눠서 무작위로 짠 조일텐데.. 마침 조에 비트박스를 할 수 있는 아이, 랩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있어서 어떻게 준비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준비하여 봉헌한 열린미사...

열린미사를 마치고 옆 캔틴으로 이동하여 포도주스와 빵을 나누어주고, 포도쥬스에 빵을 적셔 서로에게 나누어주는 아가페 시간을 가졌다. 소시지 빵을 들고 아이들은 숙소로 돌아가고... 선생님들은 다시 모여서 프로그램 체크... 하다가 아이들이 잘 있나 아이들 숙소로 건너가니 아니나다를까 남자 단체방은 베개싸움에 햄버거게임이랍시고 깔아뭉개고.. 여자아이들은 신나서 사진을 찍고.. 그렇게 다들 잘 있고.....

몸을 뉘이면 가득 차는 침대에서 마지막 날 밤을 마무리~

마지막 날

셋째 날은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모두 조금 늦은 기상.. 이라지만 네시간정도 잔 것 같은 느낌.. 쨌든 강당에 모여 아침 기도 후 바로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 건너뛰는 아이들도 종종있는 것 같았지만.. (아마 밤새 얘기하고 논 아이들이 졸려서 더 자러 간게지..) 나는 한끼도 놓칠 수 없는 소중한 한식(...)이라 맛있게 먹고 한그릇 더 받아 먹었다. 잠도 못자고 야외에서 고생해서 살 빠지겠거니하고 갔는데 싱가폴 한인공동체 자모회분들의 봉사덕분에.. 2키로가 쪄서 돌아왔다 ㅡ.ㅡ

식사 후 아이들은 강당에 모여 자비와 나눔에 대한 비디오를 보고.. 서로를 생각하며 실팔찌를 만든다. 자비의 희년 로고에 있는 3색이 들어간 실 세가닥으로 팔찌를 꼬고.. 친구들을 생각하며 자비의 희년이 끝날 때까지 하기로 했다. (선생님들은 짐 챙기고 뒷정리 하기 바빠 왔다갔다 정신이 없었고...)

하노이 성당은 비행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12시 45분에 싱가폴 성당에서 한인공동체와 같이 미사를 드리기가 어려워졌다. 프로그램 중간에 살짝 빠져나와.. 역시 시간이 촉박한 양곤성당과 함께 경당에서 따로 미사를 드렸다. 양곤성당 공동체는 아주 작은 공동체였나보다. 우리조에 있는 양곤성당에서 온 아이는 아이들끼리 공연을 하고 그 수익금으로 비행기표를 사서 왔다고 했다. 인솔교사가 없어 신부님이 직접 오셨다(첫날 신부님인 줄 몰랐던 신부님들 중 한 분).

비행시간때문에 싱가폴 성당에서 미사드릴 기회를 놓쳐서 아쉬워하던 차에.. 인원이 적다보니 생전 처음 드리는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의자를 가지고 올라와 제대를 바로 가까이에서 둥그렇게 둘러 앉아 미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시간관계상 아주 단촐하게 미사를 드렸는데.. 그 자리에서 양곤성당 아이들이 복사를 하고 해설을 한다. 하노이 성당...에헴.. 으흠.. 음.. ㅋㅋ

평화의 인사도 서로 돌아가며 모두 한 번씩 안으며 평화를 빌고, 영성체도 양형영성체로 모셨다. 언제 이런 미사를 드려볼 수 있을까 싶었다.

미사가 끝나고 양곤성당은 급하게 공항으로 날아갔다. 우리는 미사까지는 못 드리지만 싱가폴 성당으로 함께 돌아가 점심까지만 같이 하기로 한다.

이 제대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미사를 드렸다. 수도원 내 경당이었는데 이 제대 참 아름다웠다,,,

수도원을 정리하고 다시 성당으로 돌아온다.

하노이 성당은 시간이 없는 관계로.. 먼저 점심만 먹었다.. 서브웨이 샌드위치였는데 학교다닐 때 무지 자주 먹던 건데.. 일년만에 먹으니 또 감동의 눈물이...

여튼 성당을 조금이라도 둘러보기 위해 재빨리 샌드위치를 먹고 여기저기 구경을 한다.

현지인 미사가 먼저 있고, 현지인 미사가 끝나고 바로 12시 45분에 한인미사가 있다고 한다.

현지인들이 미사 후 묵상을 하고 뒷정리를 해서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성당 뒤로 가서 점심을 먹고 가기도 하고..)

한인분들이 들어오셔서 미사 준비를 시작..

뒤에 저건 뭘까 또 독특해서 저게 뭐냐 여쭙고 싶었는데 곧 출발이라 옆으로 부지런히 움직여서 예수상 성모상 앞에서 잠깐 기도만 하고 나왔다.

예수상 성모상 옆에 저렇게 한자가 딱 적혀있으니.. 뭐지 이 낯선 느낌은... ㅋㅋㅋ

제단을 마주보고 오른쪽으론 성모상이 왼쪽으론 예수상이 있었다. 벽에는 성인들 상이 있었는데 미처 사진은 못 찍었다...

사무실도 있던데.. 사무실에서 성물도 많이 판매하고 있었다. 지금 있는 묵주팔찌는 이년 전에 서울 성모병원에서 수술받고 밑에 성물방에서 어머니가 사주셨던 것인데.. 고무줄(?)이 풀리기 시작하여 간신히 버티고 있다. 여기서 묵주팔찌를 살까했는데 싱가폴 달러 환전을 안 했더니... 지금 차고 있는 의미가 각별한 그 묵주팔찌를 계속 차라는 뜻인가보다 하고 나오니 정원에서 미처 못 본 성모상이 나를 반겨준다.

성모상 한 번 보고... 아이들과 함께 짐을 챙겨 버스로 이동한다.

함께 미사드리고 파견식도 못하고 가는 아쉬움이 큰데.. 싱가폴 선생님들도 큰지 아이들 손 한번씩 일일이 다 잡아주고 버스까지 올라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같이 간 인솔교사선생님이 버스기사에게 사진을 부탁했는데.. 혹시나해서 직접 한 번 더 찍으셨는데.. 아니나다를까 기사가 찍어준 사진은 별로고 선생님이 빠지신 사진이 잘 나왔다 ㅡ.ㅡ;;

공항으로 가서 탑승수속을 하는데.. 하노이 공항이랑 다르게 웬걸 그룹 단체 체크인이 안되고 따로따로 한 명씩 오라한다. 늦게 왔으면 큰일날 뻔 했다. 한참을 걸려 그렇게 들어가니 시간이 많지 않다. 아이들이랑 면세점 구경만 슥하고 탑승을 시작한다. 그 짧은 시간에도 선글라스를 사러 부리나케 뛰어 다녀오는 아이들.. 이럴 땐 조그마한 노이바이 공항이 좋은가벼~~

그렇게 하노이로 돌아오는 비행기.. 책을 읽으려고 책을 꺼내놨는데 웬걸 그간의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미친듯이 피곤함이 몰려와 열심히 머리를 돌리며 잤다. 전생에 무슨 사물놀이에서 상모돌리기를 담당했나... 앉자마자 그래서 기내식도 옆에 앉은 아이들이 "선생님.. 밥..먹어요..?"하며 깨워서 겨우 먹었다. 쨌든 그렇게 하노이로 돌아와 입국심사를 기다리는데 줄이 어마어마하다.. 환승객들 겹치고, 줄어들 생각을 않는 줄에 족히 한시간은 기다린 것 같고.. 겨우겨우 빠져나와 아이들과 성당 봉고차에 올라 집으로 돌아간다. 미딩에 잠시 들러 신부님 뵙고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두운 색 옷들만 먼저 빨래를 돌리고 맥주 한 병을 따서 마시고 간신히 세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빨래를 널곤 기절하듯 잠들었다. 사고없이 잘 다녀온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애들보다 선생인 내가 더 배우고 온 것 같다. 정신차리고보니 또 8월 초순이 훅 지나가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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