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블로거의 수준은?

토픽셀프 2018. 11. 6. 19:19

블로거의 수준은?

도쿄 신문 모치즈키 기자의 질문의 수준을 묻는 블로그 글은 수준에 이르고 있는가?1/2

와다 참의원 의원이 "도쿄 신문 모치즈키 기자의 질문은 수준에 이르고 있는가?(http://blogos.com/article/240281/)"의 준수하는 자극적 제목의 기사를 업되었습니다. 오래 두면 좋겠지만, 그냥 자극적이고 재미이기 때문에 나는 한자루 이 블로그 기사 수준을 평가하겠습니다.

참고로 기자 회견에 대해서 나는 질문을 받는 입장이지만, 와다 의원의 친정팀인 NHK기자 씨 등 적잖은 기자 양이 "주간지나 다른 미디어 정보를 바탕으로 질문을 한다"라고생각되는 와다 의원의 말에 의하면"레벨이 낮다"질문을 받는 일은 상응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기자 회견에서 질문을 내 자신이 한 것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와다 의원에 일일 지장이 있는 것이니까, 와다 의원이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고 모치즈키 기자의질문을 평가된다면, 그것은 그것으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의 전직은 변호사이기도 합니다. 변호사가 일반의 분들의 감각과 달리 법정에서 변론을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문서로 자신의 주장을 상대에게 전할 일이다(재판의 주장은 거의 문서로 이루어집니다.)자신들의 주장을 상대로 제대로 전달하는 문서를 쓰는 일에 대해서는 나에게 한일의 장입니다. 이 소리에 변호사 관점에서 보고 와다 의원의이 블로그 기사가 수준에 이르렀는지, 대단히 죄송하며 멋대로 평가하겠습니다.

변호사의 문서에 않지만 어떤 사실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주장하는 문서(예를 들면 모치즈키 기자의 질문에 대한 와다 의원의 평을 주장하는 와다 의원의 이 블로그 기사가 바로 이에 해당합니다)를 쓸 때 자주 쓰는 법, ① 규범의 정립 ② 구체적 사실에 대한 기준의 대입 ③ 결론으로서의 평가의 세 단계를 밟습니다.

차례로 설명하자 ① 평가하려면 기준이 필요하므로 자신의 평가 기준이 되는 규범을 왜그 규범을 쓰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그 이유를 포함하고 설명합니다. ② 차에 그 규범에구체적 사실이 어떻게 적합한지 이유를 부치고 설명합니다. 이것이 있는 일에 의해서, 그 문서를 읽은 사람이 반박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것으로 자신의 주장이 말하기만 아니라 반박에도 부응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언론이 되는 것입니다.

③ ①과 ②의 결과를 받고, 그 현실을 어떻게 평가하거나 그 결론을 씁니다. ③의 결론으로 평가는 ①과 ②이 있는 일이며, 자의적인 것이 아닌 제대로 된 이유 있는 것인 반론에도 대응할 만한 책임 있는 주장으로,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와다 의원의 이 블로그 기사를 읽으면 어떻게 될까요?① 규범의 정립에 대해서는 일단"주간지나 다른 미디어 정보를 바탕으로 한 질문은 아마추어라도 만드는 레벨이 낮은 질문인 "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이유가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보의 소스는 별로 뭐든지 좋으시겠죠, 확인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질문할 수도 있으시겠죠, 주간지나 다른 미디어 정보를 바탕으로 하고 있더라도 좋은 질문도 나쁜 질문도있는 것은 바로 모치즈키 기자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는 왜 이 규범이 맞는지그 이유가 전혀 모르겠습니다. 이유를 말하지 않는 규범의 정립은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도 평가 받고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②의 구체적 사실의 치지만 사실 와다 의원의 기사에는 이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단지,"문춘온라인 인터뷰에서도 모치즈키 기자는 생각이 많다"와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단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모치즈키 기자의 어떤 기사가 어떤 이유로 생각으로 단정할 수 있는가, 그것이 와다 의원은 그 증명을 받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규범에 대한 구체적 사실의 대입이 없는 주장은 상대으로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무책임한 한 채로 평가 받고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③의 평가는 천명되지 않았지만(그 자체 문서로는 벌점 항목입니다.)문맥에서는 요컨대"모치즈키 기자의 질문은 질이 낮은 "라고 말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평가에는 ① 정립된 규범의 이유가 제시되지 않은 ② 구체적 사실에 대한 규범의 대입이 없어서 결국 근거 없는 믿음에 근거하여 구체적 사실을 내놓지 않고 이루어진 무책임한 표현 양식의 평가에 불과하다고 볼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는 것이고 적어도 변호사적 관점에서 보면, 와다 의원의 이 블로그 글은 수준에 이르렀다고는 좀처럼 말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밖에 평가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좋은 확률로 와다 의원에서 카운터에서 나의 이 기사에 대한 평가가 이뤄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꼭 타산(자산)의 돌로 크게 참고로 하겠다라고 생각합니다.

"사가미하라 살상 사건"유족의 말에 언론의 의의를 느꼈다

▼ 〈 다시는 사가미하라 살상 사건 1년 딸의 죽음, 마주 볼 수 있는 〉 7월 22일 마이니치 신문 조간(필자=쿠니 아이)

"나는 의사 소통이 되지 않는 사람을 안락사 시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나가와 현 사가미하라시의 장애자 시설"츠쿠이 산 나리꽃원"으로 입소자 19명이 살해된 사건에서 1년. 직원 우에마츠 마사 피고(27)는 텔레비전의 취재에 대해서 모두의 문구를 쓴 편지를 대어 장애인 차별과 편견을 노골화했다. 피해자나 가족에게 사죄의 말은없었다. 체포시의 진술은 "장애자는 살아 있어도 소용이 없다". 변함 없는 주장에 광기와마음의 비뚤어짐이 엿보인다. 그리고 또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익명 보도가 주목 받으며피해자가 편견과 치욕에 시달리는 것이 부각되었다.

©getty

그런 때, 발견한 것은 마이니치 신문·쿠니 아이 기자의 "딸의 죽음 마주칠 수 있어요."이란 5단 조판의 기사였다. 35세의 장녀를 빼앗긴 카나가와 현 거주의 62세 아버지의 고백으로 큰딸이 여행지에서 아버지의 카메라를 보고 웃으며 사진, 파자마 입은 채 아침 커피를 마시고 일상 풍경도 올라왔다. 거기에는 그녀의 산 미소가 있었다.

큰딸은 신장 약 140㎝, 몸무게 35킬로로 몸집이 작고,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가족은 부모님과 5살 연상의 장남 2세 연하의 차녀. 8년 전 어머니에게 암을 발견,어머니의 입원과 치료 때문에 큰딸은 2012년 7월에 산 나리꽃원에 입소. 그러나 그 다음달에 어머니는 타계했다. 그리고 올 봄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았지만"곧 갈게"라고 매일 아침 불단에 말을 거는, 현재,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

일만 해와이었던 아버지는 50세 전에 조기 퇴직하고, 큰딸과 하루 종일 함께 지냈다. 딸은 소파에 앉아 아버지의 다리와 어깨를 딱딱 두드리는, 아기를 졸랐다고 한다. 때 토라지거나 이기적이거나. 응석둥이로 아무리 손이 걸린다 하더라도, 딸은 딸이다. 귀여워서어쩔 수 없었다.

인터뷰에는 피고에 대한 아버지의 증오의 말은 웬일인지 나오지 않는다. 저도 많은 사건취재를 해왔지만 유족의 감정은 슬픔, 분노, 불안이 나이마젠 채 점점 밀려와서는 사라진다. 그 반복의 가운데 시간이 지나면서 남는 것은 고인에 대한 끝없는 애정이다. 사건이란 있을 수 없는 "비일상"갑자기 방출된 것이 지난날의 행복한 "일상"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면소로 양치질을 하고 있다고 뒤에서 장난치고 안아 온 장녀. 화장실과 거실의 모습.집에서 함께 지낸 잔상은 마치 거기에 있게 살아난다. 아버지가 취재를 통해서 호소하고 싶었던 것은 단 하나.

"딸이 이렇게 귀여운 것을 알리고 싶다"

장녀의 추억을 이야기할 때는 간간이 미소를 보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안아 주지 못 했다. 빨리 만나고, 안아 주고 싶어"

불쑥 말하다 부친의 말을 나는 어리석게도 오열했다.

거기에는 가혹한 운명에 휘말리면서도 열심히 살아 있는 서민의 모습이 있다. 혼자서 혹은 가족에서 맞섰다고 해도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와 같다.

그것을 아는 데도 언론이 피해자, 또는 가족의 목소리를 전하는 의의는 충분히 있다. 그리고 또 피고인 같은 비뚤어진 사상의 소유자를 낳고는 안 된다고 확신하다.

사람은 남의 슬픔에 기리연우 때 공감대가 태어난다고 한다.나는 이 기사에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

신문 사설의 한자"전"의 숙어 『 전쟁 』 사용률을 철저히 검증, 실은"전쟁"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사히 사설

72번째의 종전 기념일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신문에서는 종전 기념일에 평소에는 2개 들사설을 1개로 좁혀장문의 사설을 내세우는 것이 상례입니다, 올해도 이런 느낌.

[아사히 사설]72년째인 8월 15일 빛이 바랜 역사의 교훈

http://www.asahi.com/articles/DA3S13087266.html?ref=editorial_backnumber

[요미우리 사설]종전의 날 평화의 유지에 마음을 새롭게

http://www.yomiuri.co.jp/editorial/20170814-OYT1T50098.html

[매일 사설]오늘 종전의 날 지향해야 할 추모의 모습과는

https://mainichi.jp/articles/20170815/ddm/005/070/097000c

[산케이 사설]종전의 날"명예"가 지켜지고 있나 진정한 역사 알위기에 대비하고 싶어

http://www.sankei.com/column/news/170815/clm1708150001-n3.html

[닛케이 사설]부담 없이 전몰자를 추모하고 싶다

http://www.nikkei.com/article/DGXKZO19988080V10C17A8EA1000/

그런데 여름 방학 독자도 많겠지요 때문에 시간의 한 독자는 꼭 신문"역작"을 직접 읽어 주시기로 하고 해당 블로그는 조금 각도를 바꾸어 이 매스 미디어 5지의 종전 기념일 사설을 독미비베고 싶어요.

각각의 사설은 장문인데 대체로 종전 기념일에 해당하는 내용은 각지의 자세가 반영됐고, 어쩜 그 내용은 바꾼 보람이 없다.(실례)라고 합니까, 독자의 상상대론 것인데, 여기에서 이 블로그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전"이란 한자의 쓰임새 및 사용 빈도입니다.

5대 종이를 보수, 진보 계열로 분류하면 진보 색채가 강한 순서로

아사히>매일>닛케이>요미우리>산케이

의 및이 될까요, 그냥 이론 밝은 독자도 안에 들어갈지도 그렇지만,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 평가라고 봅니다.

그래서 각지의 종전 기념일 사설에서 "전"이란 한자의 쓰임새 및 사용 빈도인 것입니다.

이것 좀 알아봤는데 분명히 흥미로운 경향이 보이는 것입니다.

우선 아사히 사설, 출현 회수는 20회요, 다음 출현 차례로 열거.

전전

전쟁

이상 종전 기념일의 사설에서 "전"라는 한자가 사용된 것은 5지의 사설 모두 90회인 것인데, 이번에는 그 쓰임새에 주목하는 흥미로운 경향이 뚜렷하게 솟아 오겠습니다.

"전쟁"라는 숙어의 출현 빈도에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전쟁"출현 수 많은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아사히 11회/20회 55.0%

매일 8회/26회 30.8%

닛케이 3회/19회 15.8%

산케이 2회/12회 16.7%

요미우리 1회/13회 7.7%

상기 표의 행의%표시는 "전"이란 한자의 출현 회수 중"전쟁"라는 숙어에서 출현한 "한자"전"의 숙어 『 전쟁 』 사용률"아아, 알기 어렵다(쓴웃음)입니다, 아사히 사설을 보세요, 큰 차이의 55%입니다.

종전 기념일의 사설에서 "『 전쟁 』 출현 회수"를 비교하면 어떨까요,

아사히>매일>닛케이>산케이>요미우리

과 멋지게 리버럴계>보수의 색깔이 뚜렷이 떠오르다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 블로그의 고찰은 단순하구, 그것은 "전쟁"이라는 단어가 이미 리버럴계의 "인상 조작"이 반복되면서 안타깝게도 고소한 "향기"가 부착된다 사용하기 어려운 단어로 되었습니다.

과거"반전""평화"등 수많은 단어가 일부 리버럴계의 그 활동의 주장에 남용된 모종의"인상 조작"으로 본래의 순수한 의미를 잃고 안타깝게도 모종의 향긋한 "향기"가 붙어버린 것은 모두 잘 아실 것입니다.

최근에는 "민주"라는 전통 있는 단어가 같은 운명에 만났습니다, 일부 리버럴계의 악의꼬리표를 달고 버린 것입니다.

지금 바로"전쟁"이란 말이 "전쟁=악"라는 단순한 구조를 가진 리버럴계의 논설로 사용하기 어려운 향긋한 단어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할수록 현실을 응시한 안전 보장상의 냉정하게 논의하기 어렵게 되는 경향이 있지 않을까요?

이상 반전과 달리"전쟁"이라는 단어가 좋아하는 것은 사실은 아사히 사설임이 실증된 것입니다.

뭔지.....

from http://bokukkk.tistory.com/21 by ccl(A)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