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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법칙 조보아 19세 노렸다vs아니다

정글의법칙 조보아선주혁은 진심으로 감사의 표시를 했고, 그와 같은 광경을 연 노인은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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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에는 곰과 같은 맹수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네. 산을 넘어 다닌 지 십 년이 넘었건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지.”

선주혁이 의식을 잃고 있는 동안 연 노인은 동굴을 찾아냈다.

동굴에 그냥 들어와 코를 움켜쥐고 웩웩거리던 선주혁과는 달리 연 노인은 우선 쑥을 태워 냄새를 옅게 만들었다. 거기에 향까지 피워 올렸으니 짐승이 사는 동안 남긴 고약한 냄새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의식을 차린 선주혁이 지독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그래서 안심을 하고 넘나들던 산이건만……, 이제는 령아와 둘이서 산을 넘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겠구먼.”

연 노인은 동굴 안에 피운 모닥불을 가는 나뭇가지로 뒤적이며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타 탁 탁

정글의법칙 조보아 마른 나뭇가지가 불에 타며 비틀어지는 소리를 냈다.

“처음 자네 머리카락을 봤을 때…… 누군가가 생각이 나더군.”

“……!”

“백발…… 어쩌고 하는……, 칼을 든 무림인들이 흉흉한 표정을 지으며 그 자를 찾는다는 소문이 무성했지.”

“제가 무림인들이 찾는 악인이라고 생각하셨으면 왜 도망가지 않으셨어요?”

“정글의법칙 조보아 허허헛. 생각해 보게. 무림인들이 그 난리를 칠 정도의 인물이라면 보통 사람이 아니겠지. 그런 자가 나나 령아를 죽이겠다고 나선다면 부산을 떨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설령 자네가 그 악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해도 나로서는 태연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네.”

연 노인의 말에 선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과연 나이는 허투루 먹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연륜이 아니었다면 그처럼 태연한 모습을 보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경극을 통해 다져진 연기력일 수도 있었다.

“정글의법칙 조보아 그러다가 령아를 바라보는 자네의 눈을 봤다네. 그건 정말로 아이를 예뻐하지 않으면 보일 수 없는 눈빛이었지.”

정글의법칙 조보아 선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곤히 잠들어 있는 연령령의 얼굴을 봤다. 새록새록 숨을 쉬며 잠든 연령령의 모습은 천사처럼 귀엽기만 했다.

“그래, 그런 눈빛이었어. 적어도 난 자네가 우리 령아를 해치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는 있었다네.”

연 노인의 말에 선주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잠시 시간을 보낸 다음 입을 열었다.

“어르신 사실 제가 무림인들이…….”

선주혁의 말은 계속될 수 없었다.

연 노인이 손을 들어 말을 막았기 때문이다.

“자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상관없네. 내게 있어서 자네는 령아를 구해주고, 또 나를 구해준 생명의 은인일 뿐이야. 그 외에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남들이 자네를 뭐라 하건 그건 그 사람들의 사정일세. 적어도 령아와 나는 자네를 평생토록 은인으로 기억할 게야.”

“어르신……!”

“후훗. 설령 자네가 천하에서 가장 나쁜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그저 영웅일세. 자네는 몸을 던져 령아를 구하지 않았는가? 무공을 익혀서 그런 몸을 갖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봤을 때는 자네도 위험했다네. 결국 자신의 생명을 던져 령아를 구해낸 거지.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네.”

선주혁은 묵묵히 연 노인의 말을 들을 뿐이었다.

사실 영웅 행세를 하기 위해 몸을 던진 것은 아니었다.

만약 곰 앞에 놓인 것이 연령령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 지는 자신도 모른다. 그저 귀엽고 예쁜 연령령이 곰의 앞발에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볼 수 없었을 뿐이었다.

“내 어찌 자네한테 은혜를 갚아야 할지를 모르겠네. 혹여 이 늙은이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해보게. 평생 자네 종노릇을 하라면 할 테니 말일세.”

“무슨 말씀을……. 전 그저 령아가 귀엽고 사랑스러웠을 뿐입니다. 저런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여겼으니까요.”

“흠……, 그래. 정말 밝고 착한 아이지. 저 아이가 아니었으면 이 늙은이도 폐인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야.”

연 노인은 아련한 눈빛으로 연령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원래 연 노인은 사천지방에서 유명한 경극 배우였다고 했다. 연기도 뛰어나고 분장도 잘했다.

특히나 변검은 천부적인 자질을 지녔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밀려들어오고, 어딜 가나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연 노인은 자만에 빠졌다.

주색(酒色)에 빠져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부작용은 즉각적으로 드러났다. 공연 중에 실수를 하기도 하고, 아예 약속된 공연에 출연하지 않기도 했다. 그래도 연 노인은 여전히 인기 배우였고, 그 사실을 즐겼다.

아내를 얻고 자식을 나은 후에도 그와 같은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 노인은 문득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은 인기 있는 경극 배우가 아니라는 것을.

나이 들고 술에 쪄든 그를 받아주는 경극단은 없었다. 젊은 시절 화려했던 날을 생각했기에 더욱 술을 찾게 되었다. 그러던 중 아들내외가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었다.

오래전 아내를 잃은 연 노인에게 손녀가 맡겨진 것이다. 연 노인은 정신을 차려야 했다. 자신이야 그렇게 술로 세월을 보내다 죽으면 될 일이지만 강보(襁褓)에 싸인 손녀는 그래서는 안 됐다.

그는 술을 끊었다.

오래 전의 기억을 더듬어 변검을 연습했다. 술에 적은 손이 말을 듣지 않았지만 수천 번을 반복하는 고련 끝에 사람들에게 내보일 정도가 되었다.

“젊은 시절 일보삼변(一步三變)의 경지를 엿보던 실력이었다네. 하지만 지금은 한 걸음에 한 번 바꾸기도 쉽지 않지. 여보게. 성공이란 안주함과 동시에 흔적을 감추는 것이라네. 손을 내밀어 잡으려 노력하는 자에게만 보이는 것이지.”

선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 그러고 보니 어르신께 부탁드릴 게 있어요.”

“뭔가? 자네의 부탁이라면 이 늙은이가 뭔들 못하겠는가?”

“변검! 그걸 제게도 보여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늘 한 번 보고 싶었거든요.”

연 노인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선주혁의 얼굴을 봤다. 그리고 선주혁이 농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그가 환하게 웃었다.

“변검? 허허허허헛! 보여주지, 보여주고말고. 내 자네만을 위해 최고의 공연을 해 줌세.”

연 노인은 공연 준비를 했다.

마치 의식을 치르는 것과 같이 시종일관 엄숙한 자세와 동작이었다.

그리고 선주혁의 앞에 선 공연이 시작되었다.

변검이란 얇은 천으로 만든 가면을 수십 겹으로 쓰고 그 가면을 바꾸는 것이다. 손이 한번 움직이고 소매 자락이 스쳐 지나가면 눈 깜짝할 사이에 가면이 바뀌는 것이다.

연 노인의 공연을 보며 선주혁은 진실로 감탄했다.

무공을 익힌 그에게도 연 노인의 손동작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언제 어떻게 했는지도 모를 사이에 원숭이 가면이 드러났다가 어느새 사천왕의 얼굴로 바뀌었다.

무림인들의 못지않은 속도로 팔을 움직이는 것은 선명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교묘한 손가락의 움직임은 그저 안력이 뛰어난 것만으로는 구분이 안 되는 종류의 것이었다.

무려 스물다섯 번의 가면이 바뀌고서야 연 노인의 공연은 끝이었다.

선주혁은 공연이 끝나고 한참 후에야 문득 정신을 차린 다음 박수를 쳤다.

연 노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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