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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뷔 첫사랑 인생 13년 망상 15 (부제: 그건 아니지만 )

뒤도 안 돌아본 채로 학교를 빠져나왔다.

정말 막무가내였다.

구준회가 오해를 풀고 싶다며 혼자 앉은 내 옆자리였다.

분명 내가 앉으라고 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구준회의 말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근데 정국이의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 온몸이 발개벗겨진 기분이었다.

항상 그랬다.

정국이의 눈은 내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예전에는 그 점이 너무 좋았다.

따로 말은 안 해도 다 알아주는 정국이가 고맙고 좋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예전과 다르게 밝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탁한 회색이었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더러움과 상처들을 알면 모두들 다 날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국이가 날 싫어할까 봐, 정국이의 그 어릴 적 순수했던 나라는 존재가 더럽혀질까 봐 차마 눈을 제대로 마주칠 수도 없었다.

종이 치고 정국이가 자신의 책상을 보았을 때,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무작정 가방에 짐을 챙길 때 정국이가 내 손목을 잡은 채로 날 데리고 갔다.

분명히 좋은 말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는데 정국이와 마주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간질간질 거린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 더 잘생겨진 것 같아 한참을 보고 있었다.

"형."

"나한테 마음 있어요?"

당혹함이 찾아왔다.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 몰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러나 정국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런 나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형은 제가 그냥 예전의 귀여웠던 동생 같아서 챙겨 주고 그런 거겠지만,

상대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건 희망고문이에요."

역시 내가 구준회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어떻게 이렇게도 모를 수 있을까.

말하지 않아도 알아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정국이와 서로 울음을 보였던 그날, 내 손을 떼어 놓으며 힘들다는 정국이를 끝까지 붙잡아서라도 말했어야 했다.

힘들다며 우는 그 모습에 약해지지 말았어야 했다.

학교를 빠져나오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아니야, 잘못한 거 없어. 괜찮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 심호흡을 느리게 하며 나 자신을 달랬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두려움과 허탈함.

그 모든 감정이 나를 무겁게 누르고 있다.

겨우 꿈 참고 있던 울음도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자 터져 버렸다.

결국 홀로 주저앉아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아무도 없는 골목이라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되면서도 이 순간마저 나 홀로라는 게 서러워 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숨이 목에 턱 막힌 채로 나오질 않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끅끅 소리를 내면서도 울음은 멈출 생각을 안 했다.

누군가의 품이 그리웠다.

"형."

멍하니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형, 제가 다 잘못했어요."

비에 홀딱 젖은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이제는 다 들을게요. 형이 무슨 말을 해도 다 믿고,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형이 한 말이 아니라면 잊을게요."

분명 울고 있지는 않은데 그 모습은 내게 너무 슬프게 느껴졌다.

정국이가 슬픈 이유는 절뚝거리는 다리가 아파서도 비에 젖어 추워서도 이 골목이 너무 어두워 무서워서도 아니다.

나를 놓칠까 봐, 예전 그날처럼 자신을 떠날까 봐 두려운 것이다.

나도 네가 떠날까 봐 두려워, 국아.

어설프게 안아 주는 손길에 기대어 얼굴을 품에 묻고 말았다.

"이거 먹을래?"

전학을 오고 왕따가 된 지 두 달째 처음 보는 남자애가 말을 걸어왔다.

"이거 더러운 거잖아."

분명 전학교에서는 착한 애들만 있었는데, 이 학교에서는 내가 영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날 왕따시킨다.

신발장을 테이프로 막아 놓고 책도 화장실에 갔다 온 사이 창문 밖에 버려져 있다.

항상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주는 먹을 것들은 더러운 것들.

저번에 유통기한이 1년이나 지난 요플레를 먹고 하루를 꼬박 고생한 적이 있다.

"나는 너 안 싫어해."

외딴곳에서의 외톨이에게 건네지는 손길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 수 있을까.

"나는 한상혁, 너는 김태형 맞지."

한국 나이로는 중학교 2학년 새 친구가 생겼다.

그렇게 매일을 같이 보냈다.

이렇게 친구가 있으면 즐거운 곳인데, 왜 여태 그걸 몰랐을까.

정국이에게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고 메일을 보내니 답 내용이 시무룩하다.

아무래도 질투가 나는가 보다.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친구의 생일 파티에도 가 봤다.

그 자리에 갔으면 안 되는 거였다.

상혁이가 뭘 좋아할지 몰라 평소에 자주 먹는 베이커리에 들어가 하얀 생크림 케이크를 골랐다.

이 케이크를 받으면 상혁이가 밝게 웃어 줄 것이다.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룰루랄라 도착한 상혁이 집 마당에서부터 내 콧노래는 이내 끊기고 말았다.

"너 진짜 호모야?"

상혁이 뒤에는 여자애들과 남자애들이 나를 더럽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몇 명은 웃음을 꾹 참으며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나를 보았다.

"상혁아, 그게 무슨 소리야..."

당황스러워 다가간 발걸음에 상혁이가 뒷걸음질 치며 나를 경계한다.

손을 뻗어 보았지만 곧 내쳐지고 말았다.

"만지지 마."

"상혁아."

"더러워."

그 말을 끝으로 상혁이는 등을 보였고 아이들은 크게 웃기 시작하였다.

내가 사 온 케이크를 뒤집어쓰게 될 줄은 몰랐다.

내게 더럽다며 발길질하는 아이들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아니야, 난 게이도 호모도 아니야..."

사실은 그들도 알고 있었을 얘기를.

살고 싶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내 왕따는 심해져만 갔고, 죽으라는 말부터 엄마 아빠의 욕까지 나오자 견딜 수가 없었다.

커터칼을 잡은 손이 벌벌 떨렸다.

아플까 무서워 차마 손목에 갖다 댄 칼에 힘을 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보다 더 아픈 짓도 많이 당했으면서 또 이건 무섭나 보다.

내가 바보가 맞긴 맞는 것 같다.

한숨을 푹 내쉬며 칼을 제 자리에 올려놓았다.

방문을 살짝 열어 확인한 엄마는 밥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는 가방에서 약을 꺼냈다.

누군가 신발장 안에 '죽고 싶을 때 먹어'라는 포스트잇과 함께 갖다 놓은 약이 들어있는 플라스틱 병이었다.

초기의 나였다면 무서워서 울었을지도 모르지만 태연하게 "그래"라고 들리지 않을 말을 내뱉은 채 가방에 챙겨 놓았다.

총 열 개다.

평소에는 알약 먹는 것도 싫어했는데 내가 열 개를 먹을 수 있을까.

그래, 이것만 먹으면 더는 아프지 않아도 되고 무시당하지 않아도 된다.

물을 입에 머금은 채로 두 개씩 꿀꺽 삼켰다.

이제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지면 된다.

그때, 엄마가 방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태형아, 밥 먹어야지~ 오늘 아버지도 일찍 오신다니까 밤에 영화나 보러 갈까?"

그 말에 고개를 살짝 저으며 오랜만에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좀 자고 일어나서 먹을게요, 나중에."

"나중에?"

"네, 나중에."

나중에요, 꼭 나중에.

"당신은 태형이가 저런 일 당하고 있을 동안 뭐했어!"

"그러는 당신은 뭘했는데?"

깨어났다.

편안하게 죽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깨어났다.

엄마가 날 발견하고 울며 응급실에 전화했다고 한다.

병원에서 급하게 위세척을 하고 고개를 돌려 본 엄마와 아빠의 모습은 절망적이었다.

그런 둘을 보며 내가 한 첫말은 평생 불효로 남을 것이다.

"왜 살렸어요..."

결국 난 누구와도 말을 섞으려고 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학교도 나가지 않아도 됐고, 학교를 나가지 않으니 왕따를 당하지 않아도 됐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내 시간은 너무나 느렸다.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거나 노래를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린 그림에는 정국이가 있었다.

그러다 문득 그리워졌다.

"엄마, 한국 가요."

내 말에 급하게 짐을 챙기고 도착한 한국, 내가 예전에 살던 그 동네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만이 정체된 느낌이었다.

이곳에는 정국이가 없겠지만 내가 정말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때 찾아가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내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싫다.

첫 등교 날, 낯선 교실과 낯선 애들로 가득하다.

그러다 웬 여자애가 와서 등을 때리더니 이름을 물어본다.

당황스러웠지만 이런 관심이 싫지는 않았다.

다만 어색했을 뿐.

"김태형이야."

이름을 말해 주니 방방 뛰며 좋아한다.

이게 그렇게 좋을 일인가, 나도 모르게 살짝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내 옆에 낯선 남자애가 앉았다.

그냥 옆에 앉는가 보다라고 생각하고는 책에 시선을 박았다.

"이름이 김태형이야?"

어? 어떻게 알았지.

아까 걔가 말해 줬나.

"나 모르겠어?"

불안감이 나를 덮쳤다.

"나 정국이야."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손을 꾹 참으며 애써 책을 잡았다.

"모르겠어."

그러다 책을 펴 급하게 글씨를 쓴다.

하지 마, 국아.

제발 하지 마.

'형, 나예요. 전정국. 진짜로 모르겠어?'

'국이예요. 형이 나 국이라고 불렀잖아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정국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많이 달라졌지만 눈은 그대로였다.

난 이렇게 형편없어졌지만 넌 아니구나, 국아.

다행이야.

'미안해 모르겠어'

그러다 다음날 집 앞에서부터 정국이를 보았다.

"형, 안녕하세요."

처음에는 무시하려고 했다.

그런데 나를 끝까지 따라왔다.

발걸음까지 맞춰 가며.

정국아 제발 그만 다가와.

"나 불편해요?"

"정국아."

힘들게 이름을 꺼냈다.

"네."

"너 이러는 거 불편해. 나 모르는 척해 주면 안 돼?"

"그러면 형 저 기억하는 거예요?"

보고 싶었다는 말을 꾹 참은 채 내 마음과 정반대의 대답을 꺼냈다.

"응, 그러니까 나 아는 척하지 마."

어쩐지 미국에서보다 더 아픈 일만 생기는 것 같다.

머리가 아파 잠깐 밖이나 나갈까 생각하고 나선 길이었다.

살짝 춥기는 하지만 또 겉옷을 가지러 다시 들어가기는 귀찮았다.

근처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이나 사야겠다.

그렇게 한참을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있었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등에 계속해서 꽂혔다.

휙 등을 돌려 본 시선의 주인공은 정국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살짝 움찔하고는 다가와 말을 건넨다.

"형 따라온 거 아니에요."

그 모습이 귀여워 정국이가 멀리 간 후에야 혼자 작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날 저녁, 정국이가 자신의 얘기를 해 주었고 나는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정국이가 이겼다.

내 마음이 열렸다.

굳게 닫혀 열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는데 정국이는 단번에 열어 줬다.

정국이에게 열린 마음은 쉽게 다른 사람도 다가올 수 있었다.

구준회와 배수지.

둘 다 시끄럽기는 엄청 시끄러운데 밝은 모습이 좋다.

그러다 어느 날 처음 보는 여자애가 말을 걸었다.

아니, 정확히는 정국이의 친구인 것 같은 여자애.

"오빠, 오빠 전정국 좋아하죠."

"어?"

분명 명찰을 보니 나와 같은 색인데 나에게 오빠라고 한다.

나를 아는 건가.

그것보다도 내가 정국이를 좋아한다고 그런다.

"있지, 나 남자 안 좋아해."

그러자 손에 쪽지를 쥐여주고는 떠난다.

"근데 오빠 저 정국이 좋아하거든요. 그러니까 마음 잘 정하셔야 돼요."

정국이를 좋아한다고?

얼떨떨한 마음에 펴 본 쪽지에는 전화번호와 ps가 적혀 있었다.

ps. 정국이는 오빠 좋아해요. 정국이 아프니까 내일 약 사다 주면 정국이가 좋아할 거예요. 집도 같이 가자고 그러면 혼자 좋아서 죽을지도...

나도 모르게 정국이에게 약도 사다 주고 집도 같이 가자고 말했다.

비록 아까 잠시 멱살을 잡히는 바람에 당황스러웠지만...

오늘 기분은 최고다.

봄바람이 눈에 보이는 기분이었다.

벚꽃도 피면 정국이랑 같이 갈까.

"아, 씨발년아. 그러니까 지금 헤어지자고?"

고개를 휙 돌린 자리에는 내 뒷번호인 애가 얼굴이 시뻘개서는 핸드폰에 욕을 내뱉고 있었다.

"그래. 너 내 눈에 띄는 순간 끝이니까 그것만 알아. 알겠어?"

대화 내용을 보니 여자 친구한테 차인 것 같다.

그래도 예전에는 좋아하는 사이였을 텐데, 저렇게 욕을 내뱉고 참 무섭다.

혼자 쉬쉬하며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모르고 대걸레가 그 남자애의 신발에 닿았다.

"썅."

"헐, 미안해. 괜찮아?"

그러자 나를 보더니 어깨를 툭 친다.

"야, 너 왕따였다며?"

온몸이 굳는 기분이었다.

"너 왕따라서 자살시도도 했다고 담임이 존나 충고해 주더라."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하여간 왕따라고 자살시도하고 유난 떠는 새끼들이 문제야, 문제."

그 말에 덜덜 떨리는 주먹으로 뺨을 세게 때렸다.

"미친 새끼가, 돌았냐? 뒤지고 싶어?"

"사과해."

그런데 구준회도 알고 있다고 한다.

순간 허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냥 내가 불쌍해서 잘해 준 거구나.

배수지도 마찬가지겠지.

내게 날아오는 주먹에 눈을 감았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광경은 굳은 표정으로 남자애를 때리는 정국이었다.

정국이도 그 얘기를 다 들었을까?

나를 떠나겠지, 정국이도.

고개를 들어 정국이를 바라보았다.

정국이는 아무 말도 않은 채로 땅을 바라보다 나를 보았다.

괜찮다, 내 모든 얘기를 끝냈으니 이제 정국이가 나를 떠나도 떠나지 않아도 어느 쪽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우리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형, 미안해요."

힘을 주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렸다.

이제 나는 정말 혼자가 되는구나.

아니야, 괜찮아.

정국아 너는 잘못한 거 없어.

허탈함에 한숨이 푹 나왔다.

그간 잡고 있던 긴장감이 훅 풀리는 것 같았다. 모든 걸 놓아버리면 편해진다는 말처럼 분명 머리는 편안해졌는데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이제 나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건데, 혼자 있을 시간이 두려워 다시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제야 알아줘서 형 미안해요."

정국이가 나를 품에 넣은 채로 등을 쓰다듬었다.

"나는 형이 어떤 사람이라도 좋아요."

내가 어떤 사람이라도 좋아해 주는 사람이 생겼다.

그 말에 겨우 참던 눈물이 툭 터졌다.

왜 이렇게 요즘은 울기만 하지.

도저히 벅차오르는 감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형은 제가 예전부터 지켜야 할 존재였으니까 무너져도 괜찮아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채로 정국이를 꽉 껴안았다.

"넘어지면 일으키고, 무너지면 제가 안을게요."

그토록 그리웠던 품이었다.

이제 비로소 나는 내 마음의 종착지를 깨달았다.

"국아, 나는 게이도 호모도 아니야."

"알아요, 아니어도 괜찮아요. 저는 짝사랑도 괜찮아요."

정국이를 살짝 떼어놓고 고개를 들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는 게이도 호모도 아닌데... "

정국아, 너는 좋아."

정말로 그랬다.

나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내 마음에 단단히 박혀 있는 대상은 다른 사람도 아닌 정국이었다.

내 말에 살짝 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치면 저도 게이도 호모도 아니에요. 그냥 형이 좋은 거니까."

비록 밤이었지만 벚꽃이 핀 날 정국이와 나는 한 공간에 있었다.

정국이가 조심스럽게 한 손으로 내 눈을 가렸다.

그리고 곧바로 내 입술 위로 따듯한 감촉이 느껴졌다.

"형, 아직 안 늦었죠."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투름으로 가득했던 둘의 비어있던 공간이 서서히 서로의 마음으로 메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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