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국뷔 첫사랑 망상 20 외전 (부제: 구준회 이지은 둘의 사건 발생)

"아, 제발. 진짜 잘못했어."

사건의 발단 첫 번째 3월 27일

구준회와의 첫 등교

정국이가 태형이 오빠와 함께 등교한 뒤로 나는 혼자 등교하게 되었다.

하아... 그래도 우리가 몇 년 친구인데. 전정국 개새끼.

혼자 속으로 한탄을 하다 점점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했다.

그래, 정국이가 태형이 오빠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잖아? 그리고 너 잊는다며? 지은아, 좀 더 넓게 봐. 이제 아침 일찍 일어나서 고데기 안 한 머리로 나올 필요도 없고, 조금 더 잘 수도 있잖아. 매일 학교에서 잠 보충할 필요가 없다고 ..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갑자기 옆에 달라붙은 이 진드기만 빼면.

"야, 너 내가 같이 가 주니까 좋지."

구준회는 아침부터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졸졸 따라온다.

"상상도 자유지, 진짜..."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먼저 앞서나가자 후다닥 와서는 다시 옆에 붙는다.

"10년 지기를 한낱 전학생에게 뺏긴 기분은 어때?"

얘는 가만히 보면 사람 속을 박박 긁는 경향이 있다. 내가 남자였어도 일 대 일 맞짱 신청 날리고 쇠파이파로 몰래 뒤통수라도 칠 텐데.

"저리 가, 진짜. 너 죽일 것 같으니까."

"싫은데, 매일 같이 갈 건데."

가방을 잡고 있는 손을 내치며 약간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날씨가 더운 것도 아니고 딱 좋은 날씨에 벚꽃도 예쁘게 피어 있는 계절이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먹구름 투성이였다. 그 딱지를 박박 긁어대는 구준회가 너무 미웠다.

"아, 좀! 너 혼자 가! 너 나 좋아해?"

"응."

그때 처음으로 구준회는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걸 알았다.

사건의 발단 두 번째 4월 30일

"야, 시험은 잘 쳤냐?"

어느새 구준회와 내 사이는 가까워져 있었다. 매일 새벽에 자고 있을 때 전화를 걸어 자장가를 들어야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깨울 때만 빼면 나름 괜찮은 사이였다. 완전 이기적인 새끼. 지 자고 싶다고 나를 깨우냐.

내가 시험 보기 전부터 계속 인절미 빙수 먹으러 설빙에 가자고 노래를 불렀더니 이번 시험 점수 낮은 사람이 인절미 빙수를 사자는 내기를 걸었다.

안 하던 공부도 하는 걸 보고 와 빙수가 진짜 먹고 싶긴 했나 보구나 그래도 뭐 내가 이기겠지 이런 생각으로 안심하고 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구준회는 머리가 좋은데 노력이 없던 유형인 걸까?

무려 윤리와 사상에서 100점을 맞는 짓을 해 버리고 말았다. 항상 1등급 컷이 80점이었는데 7등급 담당이었던 구준회가 100점을 맞는 바람에 커닝으로 의심받기도 했다.

그래도 구준회가 성격이 좋은 게 나였으면 기분 나빠서 신고라도 했을 텐데, 페이스북에 "야 씨발 나 커닝으로 의심까지 받았다 엉아가 이 정도야 알겠냐? 아 기분 째지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고 올린 것이다. 성격이 좋은 게 아니라 병신인 건가?

덕분에 빙수는 내 몫이 되었고 오는 내내 티격태격 거리다가 빙수를 먹고부터 슬슬 풀리는 중이다.

"묻지 마셈. 전정국이 내 시험지 보고 누가 빨간펜으로 난도질했냐고 했어. 아니, 너무한 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슬픔에 빠진 친구의 심장에 그렇게 대못을 박냐. 너무했어, 진짜."

그러자 뭐가 좋은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껄껄 웃는 구준회다.

빙수나 먹을 것이지 기껏 사 주니까 안 먹고 저렇게 웃기만 한다.

"너 왜 웃어."

"너 귀여워서."

당황해서 귀까지 빨개진 기분으로 애꿎은 빙수만 뒤적거렸다.

대상에 대한 인식 변화이자 사건의 발단 세 번째 5월 5일

[나 지금 친구들이랑 술 마시는 중 ㅋㅋㅋㅋㅋ 왜 우리 지으니 오빠 보고 싶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5월 5일 어린이날이라고 마시는 것 같았지만 내 계획을 실행으로 옮길 수 없다는 것도 지금 술을 마시는 것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뒹굴하다 저녁이 되어서야 뻐근한 몸이나 풀어 볼까라는 생각으로 구준회랑 운동이나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기껏 연락했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이랬다.

[ㄴㄴ 운동 같이 하자고 하려고 그랬지 됐수]

어쩔 수 없이 혼자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자꾸 삐죽 올라가려는 눈을 손으로 애써 당기며 나가려는 순간 카톡이 계속해서 울렸다.

[지금?]

[야 미쳤냐]

[이 시간에 너 혼자 왜 나가는데]

[돼지야 운동해도 마찬가지니까 집에서 치킨이나 먹어]

이 새끼가, 사람 속 박박 긁고 있네.

휴대폰 액정에 욕을 뱉어 봤자 애꿎은 폰만 욕먹는 입장이니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애써 달래며 주머니에 핸드폰을 쑤셔 놓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30분을 운동했을까 갑자기 구준회한테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미 부재중이 7통이나 와 있었길래 뭔 일인가 싶어 받았다.

"왜."

[너 어디야.]

"알 바?"

[존나 말하는 것 봐. 어디야.]

"안 알려 줄, 아!"

"아, 죄송해요. 안 다치셨어요? 민우, 얼른 누나한테 죄송한다고 사과해!"

아기가 나한테 부딪히는 바람에 핸드폰을 바닥에 떨궜다.

아기는 우물쭈물 내 눈치를 보더니 배꼽인사를 했다.

"잘모태써요..."

화가 난다기보다는 그냥 그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무릎을 굽혀 웃었다.

"누나 안 다쳤으니까 괜찮아요. 앞으로 조심해요, 알았죠?"

"정말 죄송해요. 애가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하루 종일 뛰어다니네요."

"아니에요, 진짜 괜찮으니까 가 보셔도 돼요."

그러자 아기는 엄마 손을 붙잡고 가다 뒤돌아서 웃고는 손을 흔든다.

"누나 안녕!"

혼자 남게 되니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에 남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까 저 아기 구준회랑 닮았다.

구준회는 싸가지가 없어서 부딪히면 오히려 욕하고 발까지 밟을 거다.

아닌가, 아기 때는 착했으려나...

어쩌면 내가 정국이보다 구준회를 먼저 만났다면 구준회를 좋아했을까라는 생각까지 가게 되자 손끝이 괜히 찌릿했다.

이런 느낌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것이었기에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어느새 혼자 생각한 시간이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것 같아 오늘 운동은 글렀다 싶어 핸드폰을 들었다.

"아, 완전 나갔네."

핸드폰 액정은 와자작 금이 가 있었다.

부딪힌 상대가 20살만 많았어도 물어내라고 달려들 텐데, 그 상대는 5살도 안 되어 보이는 꼬맹이였기에 후 한숨을 쉰 뒤 집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거리는 온통 어두컴컴해져 있었다.

괜히 무서워 발걸음을 빠르게 하였다. 예전 같았으면 정국이랑 같이 나와 운동을 하고 들어갔을 텐데, 혼자 나와서 밤에 운동하는 건 역시 무섭구나.

순간 그 자리에 우뚝 서게 되었다.

나 왜 정국이가 아닌 구준회랑 같이 운동할 생각을 했지. 여태까지 정국이랑 같이 운동을 했으면 당연히 정국이랑 같이 할 생각을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야, 이지은."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 우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왜 영화에서 귀신이나 살인범을 보고 못 도망가고 그대로 바보처럼 잡혔는지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현실 속 그 상대는 귀신도 살인범도 아닌 구준회라 천만다행인 거지.

"아, 미친놈아. 아파 죽겠네! 놀랐잖아."

엉덩이를 문지르며 일어서 본 구준회의 표정은 어쩐지 똥 씹은 표정이었다.

"진짜 너는 왜 애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걱정시키고, 네가 열 살짜리 애야? 말은 왜 더럽게 안 들어서 사람을 이렇게 고생하게 만드냐고. 존나 네가 전화 끊을 때 내가... 아, 씨발, 됐다."

처음으로 화난 표정을 하고는 끼어들 틈도 없이 말을 뱉더니 머리가 아픈지 머리를 잡으며 털썩 주저앉는다.

뭔 일인가 걱정이 돼서 쭈그려앉는 순간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오, 얼마나 마셨어. 뭔 일인데 대체."

"야."

"왜."

"정확히 한 시간 삼 분 뛰었다."

"지금 이 정신으로? 아, 진짜 냄새. 얼마나 마신 거야."

"너는 그 한 시간 삼 분 동안 내 생각 안 났냐."

갑작스럽게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구준회에 놀라 아무 말도 못한 채로 굳어 버렸다.

"네가 그렇게 전화 끊어 버리고 나서 난 아무것도 못 하고 이 동네 저 동네 뛰어다니면서 네 걱정만 할 동안 너는 내 생각 안 했냐고."

생각해 보니까 내가 아까 아기가 부딪히는 바람에 그냥 그렇게 끊겼구나.

분명 미안해서 죽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야 정상일 텐데 쿵쾅쿵쾅 이건 미안함보다는 좀 더 좋은 기분이다.

"다 몰라도 되니까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긴 알아?"

온통 얼었던 몸을 갑자기 펄펄 끓는 물에 던져도 이렇게 무너지지는 않을 거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숨을 훅 내쉬고는 볼이 빨개지기 시작했다.

"알면 끄덕끄덕해, 지금 머리 아파서 이렇다 저렇다 설명할 정신도 없으니까."

사실 대충은 알았던 것 같다. 하루라도 안 치대면 병이라도 걸릴 것처럼 치대는 애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한테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면 어떤 여자라도 쉽게 착각할 것이다. 나도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는 착각 아닌 착각을 한 것 같다.

얼떨결에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었더니 그제야 웃는다.

"넌 어때."

"뭐가."

사실 마음은 떨려서 입까지 벌벌 떨리는데 애써 아무렇지 않게 말하려는 덕분에 침을 꼴딱 삼켰다.

"내가 좋냐고 그냥 그렇냐고."

인간적으로 누가 여기에서 좋아도 좋다고 말하나 싶다. 여자 마음을 하나도 모르는 건지 내가 다른 여자들과 다른 건지, 분명 나도 구준회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 안 나오지. 지금 심장 떨려서 세상이 어질어질하지."

아, 진짜. 뭔가 괜히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분명 좋은데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 입을 앙 다물고는 고개를 끄덕이자 앉아 있는 채로 나를 안으며 웃음을 터뜨린다.

"헛고생으로 만들지 않아 줘서 고마워. 내일부터는 나 볼 때 예전과는 다른 기분으로 보도록."

밉상에서 설렘을 주는 사람으로 변하는 시간은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았다.

사건 발생 6월 8일

"아니, 나 분명히 봤다니까. 구준회 맞았어. 그리고 걔 옆에 예쁜 여자가 있었다고!"

사귄 지 겨우 한 달이 넘었다. 근데 그 한 달이 겨우 넘자마자 바람의 신호가 온 것이다.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해 봤지만 역시나 받질 않는다.

[왜 나 영호ㅏ 본다]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뱉고 싶은 기분이었다.

[누구랑]

[ALONE LONELY LONELY]

구준회 성격상 영화를 혼자 볼 정도의 문화인은 아니다. 그런데 그 상대방이 누군지를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 본다는 구라를 치는 것은 어쩌면 100% 바람이겠지.

[헤어져]

어쩌면 너무 섣부른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거짓말을 하는 건 싫었다. 나를 바보로 아는 것도 아니고.

카톡이 잇달아서 오긴 했지만 바로 배터리를 분리시켜 버렸다.

혼자 입 밖으로는 뱉지 못하고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속으로 씹새끼 개새끼 천하의 나쁜 놈 등등 저주를 퍼부었다.

코끝이 시큰거렸다. 겨우 한 달인데 왜 뭐가 아쉽다고 이러고 있는 건지.

애초에 구준회를 받아 주는 게 아니었다. 내가 왜 그 밉상을 받아 준 건지 모르겠다. 꼴통에 날라리에 하는 짓은 온통 실수투성이에 그 말 하나 예쁘게 할 줄 모르는 놈을 내가 왜 받아 준 걸까.

침대에 발을 구르며 애처럼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속이 텅텅 비어 있는 기분, 뭐가 부족한 걸까. 그건 아마 구준회라는 걸 알면서도 입은 다른 말을 뱉었다.

"배고프다."

불을 꺼 놓은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공포영화를 보고 있을 때였다.

"아, 썅. 깜짝이야. 귀신인 줄 알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방금 들어온 것 같은 옷차림을 한 언니가 놀랐는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뭐."

"너 왜 그 지랄인데, 혹시 구준회랑 헤어진 것 때문,"

"나가!!!!!!"

발로 언니의 엉덩이를 빵 차고는 문을 꽝 닫아 버렸다.

오늘은 걔 이름만 들으면 울음이 터질 것 같단 말이야.

6월 8일 갈등 해소

"아, 제발. 진짜 잘못했어."

수업 시작하기까지 겨우 3분 남았는데 내 앞에서 안절부절 못 하고 손을 싹싹 비는 구준회다.

"넌 바람피워 놓고 미안하다고 하면 끝이야? 인생 쉽게 산다. 너랑 뭐 이렇게 저렇게 다시 붙을 생각 없으니까 가."

"아니, 씨발. 그게 왜 바람이냐고. 그냥 아는 누나라니까."

부글부글 끓던 속이 확 터지는 순간이었다. 구준회의 손을 끌고 아무도 없는 계단에서 정강이를 발로 까 버렸다.

"아!"

"아는 누나인데 왜 혼자라고 했냐고. 우선 거기에서부터 거짓말이잖아. 난 너 안 믿어."

"야, 사람 말은 끝까지 좀 듣, 아오!"

발로 나머지 정강이도 까 버린 뒤 엿을 날리고는 내 자리에 돌아와 털썩 누웠다.

잘했어, 잘한 거야.

그렇게 1교시 2교시 시간은 훌쩍 넘어 점심시간까지 가게 되었다.

뭐 허전해 죽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다. 그냥, 기운이 좀 떨어질 뿐.

"너 껌 좋아하냐."

같이 점심을 먹고 축구하는 모습을 보며 스탠딩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배수지가 껌을 좋아하냐고 묻는다.

"아니."

"이런 썅, 닥치고 먹어."

그리고는 내 치마 위에 껌 한 통을 올려놓는다.

내 친구지만 정말 가끔은 알 수 없다.

5교시 시작 종이 울리고 애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세계사, 완전 관심 밖인 수업이었다. 하품을 하며 고개를 돌려 본 창밖에서는 애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정국이랑 태형이 오빠랑 구준회 반이네.

사람 버릇이 한순간에 확 변하지는 않는다고 자연스럽게 구준회를 찾게 되었다. 근데 구준회를 찾자마자 본 모습은 발에 걸려 넘어지는 모습이었다.

"아."

꽤 크케 넘어졌는지 표정을 온통 찡그리고는 욕을 뱉는다. 대충 입모양을 보았을 때 저 욕의 내용은 "씨발아, 이렇게 발 거는 건 반칙이야. 발목 끊기고 싶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욕할 정신은 있는 거 보면 덜 아픈가 보네. 크게 다친 게 아니라는 사실에 다행스럽기도 하면서도 구준회스러운 대처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 또 정신 놨네.

지은아, 저 새끼는 바람피우다가 걸린 새끼야. 그런 새끼가 뭐가 예쁘다고 그렇게 웃어. 정신차리자.

뺨을 가볍게 툭툭 치고 난 뒤 눈을 번쩍 뜨니 그나마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수지가 아까 준 껌이나 씹어야겠다.

세계사 선생님의 눈을 피해 뒤적뒤적 껌을 꺼냈을 때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첫 번째

야 진짜로 그냥 누나라고 나 좀 믿어라 내가 너 두고 웬 바람

두 번째

네가 헤어지자고 해서 그래라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거 아니거든

세 번째

내가 존나 몇 달을 매달렸는데 헤어지냐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해도 좋으니까 난 못 헤어져

네 번째

카톡 즐찾 다시 추가해라 아니 그전에 차단부터 좀 풀고 씨발 스팸도 좀 풀어 줄래?

다섯 번째

그냥 난 너 많이 좋아해 지은아 잘할게

이렇게 또 살살 풀린다.

정말 싫은데 정말 미운데, 미워할 수가 없다.

자꾸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겨우 참으며 고개를 돌려 본 구준회는 골을 넣은 뒤 신이 나서는 방방 뛰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반지 키스를 날린다.

시력은 또 엄청 좋네.

에필로그

"야, 내 쌍액 다 썼으면 내놔라."

"너 쌍액 좋은 거 쓰나 보다. 껌봉투 똥꼬 하나도 티 안 나."

저 씹새끼가 지 연애 좀 해 보겠다고 내 소중한 쌍액을 겨우 껌봉투 똥꼬에 칠했다.

"다이소에서 샀다. 근데 너 진짜 병신이냐. 왜 아는 누나랑 영화를 봐."

그러자 룰루랄라 휘파람을 부르며 껌을 돌린다.

"아는 누나도 아냐. 지은이네 언니인데? 지은이네 이번 여름에 바다 가는데 거가에 나도 끼워 달라고 했더니 지민이 누나가 자기 친구가 약속 취소해서 심심하다고 놀아 주면 끼워 준다길래 영화만 보고 헤어진 거야. 그 누나는 영화도 안 보고 자더만."

"???"

"뭘 야리는데."

"근데 왜 안 말했어?"

그러자 지 혼자 골똘한 표정을 지으며 온갖 똥폼은 다 잡는다.

"질투하는 게 귀여워서."

"또라이네."

세상에 헤어짐까지 당하면서까지 지 여친 귀여움 감상하는 새끼는 처음 본다.

"이거 지은이한테 줘라."

"뭐라고 줘?"

"닥치고 먹어."

from http://vgeul.tistory.com/29 by ccl(A)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