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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 열애

토픽셀프 2019. 11. 8. 15:59

현미 열애

안녕하세요 오늘의 이슈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블로그 'ZZUN' 입니다.

오늘은 '현미' 에대해알아보려고 합니다.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 현미 열애

현미는 “사랑은 아름다워야한다”라며 “같이 밥 먹고 영화 보고 아침마다 이모티콘 보내주고 대화를 하는 게 엔돌핀 생성이 된다”며 사랑은 아름답다고 밝혔습니다.

현미는 ‘누나 사랑해’라고 말하는 연하들이 이해가 안됐다면서 “그런데 남자는 남자더라”며 “70대 아이들에게 의지하게 되더라”고 말했습니다. 현미는 “아름답게 남자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현미의 발언에 ‘연하 남자친구’에 대한 관심이 쏠렸습니다. 장미화는 “내가 아는데 6살 연하다”며 “부드럽고 다정다감하다”고 귀띔했습니다.

2013년 현미는 7세 연하의 남성과 열애 중임을 고백했던적이 있습니다. 방송에서 현미는 “지금 남자친구가 있다고 들었다.”라는 MC의 물음에 “그렇다.”라고 열애를 당당히 고백했습니다. 부산에 사는 7살 연하의 남자친구와 장거리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현미는 “남자친구와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영화도 보고 드라이브도 한다.”며 “사랑이라는 건 자연스러운 행위인 것 같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굉장히 의아해하는데 굉장히 떳떳하게 친구로 사귀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또한 현미는 열애 고백을 전하며 “재혼 생각은 없다. 혼자 사는 게 익숙해졌다. 외로울 때면 혼자 외출해 쇼핑도 하고 극장도 잘 간다.”라고 밝혔습니다. 당시 네티즌들은 ‘현미 열애 고백’에 대해 “행복한 사랑 했으면 좋겠다.”, “당당한 모습 보기 좋다.”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 현미 프로필

1938년생인 현미의 본명은 김명선입니다. 재즈풍의 목소리로 한국 팝 장르를 선도한 60년대 스타입니다.. 8남매 중 셋째로 1.4 후퇴 때 부모, 6남매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당시 평양의 집이 망가져 조부모댁에 두 여동생이 맡겨졌고 1.4후퇴 당시 피난하지 못하고 북에 남았습니다. 종전 직후 두 여동생은 조부모 슬하에서 컸다고 합니다. 200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될 때 친오빠와 동행해서 중국 연변에서 한번 만났는데,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가족 관계상 노사봉, 가수 노사연의 이모 그 외에 배우 한상진 역시 그녀의 조카입니다.

1980년대 후반에 '사랑은 유리같은 것'으로 유명한 인기 가수였던 원준희는 현미의 며느리입니다. 더군다나 현미의 나이는 말할 것도 없고 연예인으로서도 최불암보다 선배입니다. 21세기가 된 이후 그녀가 연예계에서 언니라고 불러 본 사람은 엄앵란 밖에 없습니다. 현미는 주로 이런 연예계 선배나 가족 관계 등으로 젊은 층에게 회자가 되는 편이지만 사실 음악계에서의 평가는 이미자, 패티 김, 그 다음이 현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고 있는 대가수입니다.

사실상 이미자는 장르 자체가 너무 다르고 패티김과 비교해 볼 수 있을텐데 보컬 능력으로만 따지면 현미를 더 높게 평가하는 이들도 다수입니다. 1962년 <밤안개>로 데뷔해서 이 노래를 통해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후 <보고싶은 얼굴>을 불러 이산가족 상봉이 한창이던 당시 그들의 아픔을 노래로 달래주었습니다.

현미가 가수로 데뷔하게 된 동기는 1957년 미8군 위문 공연 무대 칼춤 무용수였던 현미는 방송을 펑크낸 여가수 대신 무대에 오르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1958년 미8군 SHOW 무대에서도 활동하였습니다. 그 때 현미를 눈여겨봤던 작곡가 이봉조는 현미에게 '아, 목동아'라는 팝송 번안곡으로 음반을 만들어줬고 현미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데뷔곡인 셈입니다. 당시 곡을 녹음하던 현미의 성량이 너무 커 다른 가수들과는 다르게 몇 발자국 떨어져서 곡을 녹음했다는 일화는 꽤 유명합니다.

이봉조와의 별거, 사실상 이혼 이후에도 가수생활을 꾸준히 하며 인기를 유지 했는데 이 시기에 '왜 사느냐고 묻거든' '아내'를 발표하며 히트시켜 현미 독자적으로 가수로써의 능력을 입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전에는 재즈풍의 보컬로 한국가요, 팝을 불러 히트쳤다면 90년대 이후부터는 성인가요 트로트로 전향한것으로 보입니다. 2007년 데뷔 50주년 앨범을 발매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고 한국 최초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활동중이며 최근에는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주로 외부행사 및 예능 위주로 출현하고 있습니다.

예명 때문에 현미 홍보대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현미가 출연한 어느 방송 중 쌀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는데, 도중에 현미에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자 자신이 데뷔할 때는 현미라는 쌀이 없었다고 합니다.이후에 현미라는 쌀이 나와서 자신도 놀라면서도 웃겼다고 합니다

2011년에 슈퍼스타K2의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바가 있는데 현미보다 한참이나 어린 옥주현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하는데, 사실 이건 PD의 편집으로 인한 피해일 뿐. 노편집 영상을 보면 옥주현은 자기 발언을 할 때 항상 먼저 현미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 부분이 편집으로 죄다 잘려나가서 현미의 말을 끊어먹는 모습이 된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조용필도 90도 인사를 해야 할 까마득한 대 선배 앞에서 옥주현이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from http://student-zzun.tistory.com/568 by cc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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