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속 김예슬과 '투명인간' 노영수 둘은 엇갈린 선택을 했다. 하지만 선택에 따른 결과는 비슷했다. 기업에서 쓰일 '부품'을 찍어내는 하청공장이 된 대학, 체제에 대한 비판적 회의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공부하는 인문학마저 취업률 수치로 평가하는 대학에 속했던 이들 중 한 사람은 대학에 대해 거부 선언을 했고, 한 사람은 '거부' 조처를 당했다. 거부를 선언하며 대학을 박차고 나온 이는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언론은 앞다퉈 그를 인터뷰했고, 동조와 찬사, 반박과 냉소의 담론이 이어졌다. 붙였던 대자보와 같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을 단 책에 대한 리뷰와 저자 인터뷰도 곳곳에 게재됐다. 노영수(오른쪽)씨 @출처:오마이뉴스 반면 거부 조처를 당한 이는 별다른 눈길을 ..
1987년 6월, 꽃처럼 사라진 두 청춘 이한열, 박종철 열사 혹시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라는 말을 들어보신적 있으신가요? 박.종.철 열사 아마 70~80년대에만 가능했던(?) 너무나도 어이없는 말이죠. 사람이 죽은 이유를 저렇게 설명을 한다는 것은. 1987년 6월 ,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던 그 날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바로, 1987년 6월 민주항쟁 1980년대 상황 박정희가 1979년까지 거의 18년간 독재를 하다가 바로 측근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사살 당하죠. 이로써 독재시대가 저무는 듯 했지만, 1980년, 전두환은 군내 사조직(하나회)을 이용하여 쿠데타를 일으키게 되죠 이 때, 명분을 얻으려 이용한 것이 5.18 민주화 운동이죠. 북한군이 대거 침입한 것 마냥 위급한 상..
영화"1987" 전두환정부는 쿠데타·학살·고문·폭행·은폐조작·타락·독직·용공조작 등으로 점철된 전형적인 비민주적 군사정권이었다. 이는 전두환정부가 국제수지 흑자 등 경제성장의 치적에도 불구하고, 광주학살이라는 태생적 원죄와 연루된 정당성 결여와 부도덕성으로 인해 광범한 민심이반에 직면하고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1987년 4월 13일 대통령간선제를 고수하겠다는 전두환 대통령의 4·13 선언은 단임 헌법에 따라 7년을 기다려왔던 한국 국민들의 민주화 염원에 찬물을 끼얹은 것으로서 국민들로 하여금 배신감·박탈감·분노를 한꺼번에 분출시키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두환정부의 연장이냐 아니면 전면 거부냐의 양극화된 대결의 초기 국면에서는 남북한 긴장구도 상황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고 또 현대화된 막강한 ..
1987 영화 _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실화 이야기 정리 엄청나게 기대작이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바로 영화 1987이에요.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바로 1987년 민주화 항쟁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담고 있다고 해요. 대학생 한명이 죽었고, 정부는 이를 숨기기 급급했죠. 오늘은 영화 1987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서 알아볼까 해요.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스물두 살 대학생이 사망한다. 증거인멸을 위해 박처장(김윤석) 주도 하에 경찰은 시신 화장을 요청하지만, 사망 당일 당직이었던 최검사(하정우)는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인다. 단순 쇼크사인 것처럼 거짓 발표를 해나가는 경찰. 그러나 현장 흔적들과 부검 소견은 고문..
[영화 1987] 리뷰/ 스포/ 결말/ 줄거리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 " 한 사람이 죽고, 모든 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뜨거웠던 1987년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12월 말이 되니 재밌는 영화가 줄줄이 개봉하네요 신과 함께, 위대한 쇼맨, 강철비, 1987 등등 이번에는 영화 1987을 보고 왔어요~!! 1987에는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준, 이희순 등의 배우가 출연했는데요 중간부분부터 까메오? 특별 출연?으로 또 깜짝 놀랄만한 배우도 나와요 뭔가 스포가 될 것 같은 느낌에 이건 밑에서 이야기할게요~ 1987의 배경은 전두환정권때에요. 제가 태어나기도 전이죠. 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스물두 살 대학생 김종철 사망사건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
[중앙인과 한국사회 강의] 3. 4.19 혁명과 중앙대학교 1. 4.19 혁명의 전사(前史) - 1960년 2월 28일 일요일 등교 지시에 대한 경북고등학교 학생들의 항거 - '2.28 대구학생시위', 경북고등학교 영화관람, 대구고등학교 '토끼사냥', 경북사대부고 '임시시험', 대구상고와 대구여고 '졸업새 송별회' 2월 28일 거행. 각 고등학교 등교 지시. - 정치적 의도. 2.28에 열리는 '민주당의 장면 부통령 후보의 선거 유세 참여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 - 2.27 각 학교 학도호국단 학생위원들은 27일 밤 긴급 모임을 갖고 학생 시위 갖기로 사전 협의 - 경북고 8백명을 시작으로 대구고, 경북여고, 경북사대부고로 확산 - 3.8 대전고등학교 1천여명 시위 - 3.10 대전상고 3백여명, 수원농..
[중앙인과 한국사회 강의] 11. 중앙대와 서라벌예술대, 그리고 예술인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듯이 모든 예술은 서라벌로 통한다." - 임동권 서라벌 예술대 학장 1. 식민지 잔재 청산과 서라벌예술학교 설립 - 일제강점기 고등교육이나 예술교육 기관 부재 - 식민정책 필요에 따라 경성제국대학 운영 - 지식인과 예술인의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 우려 - 대부분의 예술가 일본 유학생, 식민지 교육의 영향 -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월북·납북 예술인들 다수 - 최초의 종합적 고등예술교육기관으로 ‘서라벌예술학교’ 설립 2. 서라벌예술학교 - 1953년 5월 23일 「문학 제1168호」로 재단법인 서라벌예술학교 문교부 설립 인가 - 서라벌예술학교 교육 방침 1) 문화예술의 창조 2) 민족문화의 민주적 발전 3) 예술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