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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 옥자 언급 공감하는 이유

최근에 아주 재미 있게 봤던 드라마 중에 시카고 타자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는 다양한 책과 관련한 격언들이 나오곤 하였습니다.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에는 앙드레 지드의 다음과 같은 격언이 나옵니다. "나는 방금 한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꽂아 놓았다. 나는 이미 조금 전의 내가 아니다." 이 격언을 그대로 전폭적으로 우리 자신이 수용한다면 우리는 단순히 책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미디어 컨텐츠를 소비한다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선사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책부터 시작하여 신문이나 뉴스와 같은 것부터 시작하여 예능, 드라마, 영화와 같은 다양한 미디어 컨텐츠는 분명히 우리의 시간을 소비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의 가치관을 재고하는 것이기도 하며 우리의 생각을 정리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능, 드라마, 영화와 같은 다양한 미디어 컨텐츠는 단순히 우리의 감각 기관으로 들어왔다가 머리 속에서 재미를 주고 그대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다양한 의미를 심겨주고 나가게 됩니다.

그렇기에 미디어 컨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은 소비하기 이전의 그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시카고 타자기의 격언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하며 우리 자신이 이전에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다시 찾기도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까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다양한 물음들을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얻어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화, 드라마, 예능 그 외의 수많은 미디어 컨텐츠를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축복입니다.

황교익에 대한 대중의 호불호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를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나 과거 백종원의 요리에 대해서 그가 평가한 것을 가지고 그를 그렇게 좋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일단 그 사람에 대해서 판단이 서게 되면 그의 말, 그의 글, 그의 미디어 컨텐츠 모두에 대해서 반 이상의 평가를 이미 보기도 전에 내려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평가를 수정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단호히 배척하게 되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를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황교익의 옥자를 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평한 것을 한 번 읽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교익은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칼럼리스트입니다. 그러한 그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만의 색깔은 알뜰신잡에서도 대중성을 획득할 정도로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의 모든 이야기를 이해한다고 혹은 수긍한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 그의 생각은 한 번 들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교익은 페이스북에 넷플릭스에서 제작을 한 영화 옥자에 대해서 자신만의 색깔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황교익은 이 영화를 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옥자가 꼬마 이름인 줄 알았더니 돼지 이름이었다라는 탄성으로 글의 시작을 장식한 것입니다. 그는 그 글을 통해서 식용으로 정해놓은 가축은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이면서 이름을 붙이지 않는 이유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가축에 인격이 정해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의 글과 비슷한 글이 어린왕자라는 책에 있습니다. 책 속에서 여우와 왕자의 대화가 있는데 여우는 왕자에게 자신을 길들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길들이는 것에 성공을 하게 되면 세상에 수많은 장미가 있지만 길들여진 그 장미는 어린왕자의 단 하나뿐인 장미가 되는 것이며 세상에 수많은 여우가 있지만 길들여진 그 여우는 어린왕자의 단 하나뿐인 여우가 된다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즉 길들이는 순간, 혹은 이름을 붙이는 순간 식용이 되지 못하고 사랑하는 그 무엇, 아끼는 그 무엇, 함께하는 그 무엇이 된다라는 것입니다.

황교익이 이름을 붙여버리는 순간 닭이든, 돼지든 반 인간이 된다라는 것은 정말 인간이 된다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이름을 붙여버리는 순간 애착이 생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그 존재에게 갖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옥자가 영화에서 상영이 되었을 때 그 옥자에 사람들이 감정 이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그 돼지에게 옥자라는 이름이 붙여져서 관객이 그 돼지에게 마음을 줄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관객의 마음을, 그러한 컨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의 마음을 황교익은 정확하게 꿰뚫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from http://s-97.tistory.com/53 by cc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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