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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망치는 종북귀신> 1. 역사적으로 검증된 종북공세의 허구성

[원문출처] 우리사회연구소

<나라를 망치는 종북귀신> 1. 역사적으로 검증된 종북공세의 허구성

[연재서문]

역설적으로 우리 대한민국만큼 북한을 무서워하는 나라가 또 있을 지 의문입니다. 바로 서울 한복판에서 “종북” 귀신이 춤을 추는 것을 말합니다. 평소에는 국정원 등 공안당국을 그리도 업신여기고 불신의 눈길을 보내다가도, 우리사회 누군가가 북한과 연루되었다는 공안당국의 발표만큼은 “사실이라면 큰일”이라며 확 기울어버리는 이런 콘크리트 같은 영향력은 어찌보아야 하나요.

의심은 우리생활 전반에 젖었습니다. 국민들은 술자리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말을 장난스럽게 끄집어냅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절차상의 민주화가 정착되었다고 하는 대한민국에서, 자기의견과 주의주장도 없이 북한의 지시사항 (그것조차 무엇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을 파악해내려 애쓰고 또 제 멋대로 설정한 북한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가난과 멸시, 심지어는 감옥행도 감수한다는 “종북”주의자가 있다는 주장만큼 어리석은 견해가 또 있을까요.

어쩌다 한두 명, 정말로 그런 사회부적응자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사람이 수 만 명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어찌 믿겠습니까. 그것도 그 수 만 명이 정당을 이루어서 지난 총선 때는 전체 유권자의 10% 가까운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면 이처럼 허무맹랑한 소설은 또 없을 것입니다.

지금 야권은 국가보안법과 종북 색깔론에 휘말릴까 두려워 선거에 번번히 패하면서도 매번 종북공세에 넘어가 단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치인들만큼 북한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또 있겠습니까? 자기 경력에 “북한”이 튀면, 정치생명이 끝장난다는 두려움입니다. 그리하여 그 종북이 무엇이길래 세계적으로 손가락질 받는 국가보안법 하나 못 건드리고 이제는 나라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상황에 이르도록 종북마녀사냥을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역사에서 있었던 수많은 “종북공세”는 거의 대부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솝우화에 양치기 소년도 거짓말을 세 번 하면 사람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종북 거짓말은 세 번, 네 번도 아니고 무려 70년 가까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지고 있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1. 역사적으로 검증된 종북공세의 허구성

1) 1950년 국민보도연맹

우리 역사는 학계에선 20만명, 최대 100만명의 무고한 양민을 잔혹하게 학살한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국민보도연맹은 1948년 제주 4.3 항쟁과 여순항쟁 관련자들을 관리하기 위해 만든 반공단체였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1948년 12월, 한시적 법안으로 국가보안법을 만들면서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사상전향시켜 이들을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국민보도연맹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우익세력은 보도연맹 실적을 위해,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까지 마구 가입시키면서 보도연맹원은 무더기로 늘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보도연맹원의 수를 채우기 위해 비료와 밀가루 등을 미끼로 보도연맹 가입을 유도하였고 보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으면 빨갱이로 몰린다고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1950년 초에 보도연맹의 회원 수는 이미 30만 명을 훌쩍 넘었습니다. 글을 모르는 일반 농민들과 심지어는 10대 중고등학생들도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들은 “빨갱이” 누명을 벗으려고 보도연맹에 가입하였지만 6.25 전쟁이 터지자 도리어 “확실한 빨갱이”로 몰려 이승만 정권에 의해 집단학살 당하였습니다. 6.25 전쟁에서 한-미가 패퇴를 거듭하자 두려움에 질린 나머지 무고한 양민들을 무리로 학살하는 반인륜적 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승만 정권의 경찰과 서북청년단 등 우익깡패들이 최대 100만명까지로 추정되는 집단학살을 자행한 배경은 “보도연맹원들이 정말로 종북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억울하게 학살당한 보도연맹원들이 무죄임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오늘날 최대 100만명에 달하는 “보도연맹원”의 피해자들이 종북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을 죽일 때는 “빨갱이일지도 모른다”며 마구 죽였는데,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피를 뒤집어쓰고 나오니 모두가 무고한 양민이었던 것입니다. 종북사냥의 실상은 무고한 양민에 대한 잔혹한 학살이었습니다. 잔혹한 국가범죄였습니다.

2) 1958년 진보당 조봉암 선생

종북사냥, 빨갱이 사냥은 이승만 정권에 비판적인 야당정치인에게도 집중되었습니다. 1958년, 이승만 정권은 정치적 반대파인 진보당의 조봉암 당수를 간첩 혐의로 몰아 사형시켰습니다. 오로지 북진통일 주장만이 팽배했던 대한민국에서 죽산 조봉암 선생은 “평화통일”을 주장했는데 그로인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하였습니다. 오늘날 조봉암 선생을 북한의 꼭두각시로 보는 이는 한명도 없습니다.

죽산 조봉암 선생은 1950년대 말 이승만의 최대 정적이었습니다. 1956년에 치러진 3대 대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조봉암 선생은 유효표의 30%가 넘는 216만표를 득표했습니다. 당시 이승만과 자유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선거풍토에서 30%는 엄청난 이변이었습니다. “조봉암이 투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졌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조봉암의 등장으로 이승만의 장기집권이 위협받자, 이승만 정부는 죽산 조봉암 선생과 진보당이 ‘평화통일론’을 주장해 대한민국의 국시인 북진통일을 위배했으며, 북한이 밀파한 간첩과 접선해 ‘폭력혁명을 기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상식적으로 “평화”통일을 외치는 평화세력이 “폭력”혁명을 기도하였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은 1958년 진보당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죽산 조봉암 선생 체포 1개월 만에 진보당은 전격적으로 등록 취소되어 해산당했으며, 조봉암 선생에 대한 재판은 채 2년이 되지 않아 사형이 확정되었습니다. 결국 1959년 7월 31일, 진보당 당수 조봉암 선생은 형장의 이슬로 산화했습니다. 4.19 혁명을 불과 몇 개월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물론 진보당과 조봉암 선생에 대한 모든 혐의는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3) 1974년 민청학련

4.19 혁명 이후 종북사냥, 빨갱이 사냥이 근거없는 낭설이었음이 드러나자 군부독재정권은 새로운 논리가 필요했습니다. 이제부터 군부독재정권은 좌경용공분자라는 새로운 조어를 탄생시키며 말만 바꾼 빨갱이 사냥을 계속하였습니다. 그 대표적 희생양이 바로 1974년 민청학련 관계자들입니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독재체제를 지탱하기 위해 수많은 대학생, 재야인사를 구금해 무려 8명을 사형시킨 사법살인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민청학련 사건은 1974년 4월 3일, 박정희가 선포한 <긴급조치 4호>에 의해 대학생을 포함한 총 1024명을 조사해 이 중 180명을 군법회의에 회부시킨 공안탄압 사건입니다. 이 사건의 과정에서 변론을 맡던 강신옥 변호사가 법정모욕, 긴급조치 위반혐의로 구속되기도 하였으며 일본인 관련자 2명에게 징역 20년형이라는 중형을 부과해 한-일간 외교문제로 비화되기도 하였습니다.

유신정권은 민청학련의 배후세력으로 인혁당 관련자들을 지목하고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조작, 1974년 7월 13일, 김용원,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여정남, 우홍선, 이수병, 하재완 등 8명에게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그리고 1975년 4월 9일,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된 지 18시간만에 전격적으로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한편 김병곤, 김지하, 나병식, 이철, 유인태, 이현배 등은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집행되지는 않았으며 김지하의 경우는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습니다.

김근태, 이해찬, 장영달, 유홍준, 이철, 유인태 등 민주당의 여러 전현직 정치인들이 민청학련 사건 때 빨갱이로 몰려 탄압을 받았던 분들입니다. 70년대 반유신투쟁에 나섰던 이들은 이후 “민청학련 세대”로 불리면서 민주당 내에 비중있는 영향력을 끼쳐왔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민청학련 세대를 투옥하고 학살한 논리는 “좌경용공세력의 내란음모”였습니다. 민청학련이 인민혁명당의 지도 아래 일본공산당 출신의 하야카와 요시하루와 함께 이철, 유인태 등과 접촉, 폭력혁명 계획을 선동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인민혁명당 재건위 피해자들은 국가에 재심을 요구해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민주당에서 활동하셨던 수많은 민청학련 세대 정치인들도 모두 무죄입니다. 내란음모에 휘말렸던 이들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결백했던 것입니다.

4)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박정희가 죽고 신군부의 쿠데타로 전두환이 집권하자, 공안당국은 또 다시 종북사냥, 빨갱이 사냥감을 물색했습니다. 이번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바로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입니다.

1980년 7월 4일, 전두환 신군부 계엄사령부는 5.18 광주항쟁의 주동자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목해 그와 사건관련자 37인을 이른바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하였습니다. <프레시안>의 보도에 따르면 당시 계엄사령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해방직후부터 좌익활동에 가담한 열성 공산주의자였으며 해외에서 북과의 노선에 동조하는 반국가단체인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즉 <한민통>을 만들었으며 이들 불순분자들과 근래에도 접촉해왔다”고 발표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열성 공산주의자였다고 믿으시나요? 1980년 당시의 국민들은 아마도 그렇게 믿었을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1977년, 중앙정보부는 재일동포 유학생들을 체포해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등 각종 고문으로 이들이 한민통 소속 재일지도원의 지령에 따라 국내에 잠입해 간첩행위를 했고 한민통 간부로부터 지령을 받고 국가기밀을 탐지ㆍ수집했다는 허위 자백을 받아놓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한민통 결성을 준비하고 의장활동을 했다고 하니 내란음모 조작은 완성되었습니다. 계엄사령부는 군사재판을 통해 1981년 1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란음모는 커녕,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김대중은 빨갱이다”라고 외쳤던 이들 모두 뻔뻔하게도 김대중 정부 아래에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세상에 이런 새빨간 거짓말이 또 어디 있었겠습니까.

5) 각종 간첩단 사건

뿐만 아니라 지난 70, 80년대에 사회지면을 강타했던 각종 간첩단 사건들이 줄줄이 연이어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1975년에 있었던 ‘김우철⋅김이철 형제 간첩 사건’도 조작임이 드러나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1977년, 서울대 법대, 한양대 의대생들이 재일교포 간첩에게 포섭되었다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의 관련자 4명도 이후 모두 무죄선고를 받았습니다. 1983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으로 몰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10년형을 선고받았던 박 모 씨, 재일동포 유학생 김원중 씨도 모두 재심청구 끝에 조작임이 드러나 무죄를 판결받았습니다.

1964년 인혁당 사건과 저명한 작곡가 윤이상 선생이 연루된 동백림 사건, 1967년 이중간첩 이수근 사건과 납북되었다가 돌아와 “북한도 제법 잘 살더라”란 말 한마디 했다가 간첩으로 몰린 납북어민 서창덕 씨, 그리고 ‘유럽거점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받다 숨진 최종길 서울대 교수, 문인간첩단 사건, 심지어 1985년의 모자 간첩사건, 진도군 중림마을의 고정간첩단 사건들도 모두 재심청구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남파간첩 누명을 쓰고 고문과 조작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함주명 선생은 재심청구로 20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간첩행위 및 방북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4년간 복역했던 이장형 씨는 고문에 못 이겨 간첩누명을 썼다며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그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악독한 고문을 받았는데 처와 자식들도 똑같이 고문하겠다는 협박에 간첩사실을 시인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문후유증으로 재심판결이 있기도 전에 안타깝게도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최근 국가정보원은 탈북자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인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체포하였습니다. 그러나 국가정보원이 법원에 재출한 유우성 씨의 증거자료가 모두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사회지면을 강타한 간첩사건 가운데 상당수가 이처럼 공안기관에 의해 조작된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6) 지금 종북은 유죄인가?

새빨간 거짓말에 의해 수많은 무고한 이들이 “종북”으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우리가 “종북”이란 주장에 어리둥절하고 있다가 6.25 전쟁 당시에는 수십만의 양민이 학살당하는 참극을 낳았고 진보당 조봉암 선생이 사형당하였으며 민청학련의 선량한 청년들이 무더기로 감옥에 끌려가는 암울한 시기를 겪었습니다. 보도연맹도 무고한 양민이었고, 조봉암 선생이 종북이 아님은 물론, 민청학련도 종북이 아닙니다. 당연히 김대중 전 대통령도 종북이 아닙니다. 간첩으로 내몰려 한맺힌 옥고를 치른 수많은 간첩혐의 연루자 분들 모두 종북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첨단과학의 시대, 인터넷의 시대라고 하는 21세기에, 종북이 있습니까? 종북이 있다면 그것은 또한 공안기관의 소설 속에 있을 뿐입니다. 보수언론의 요상한 입술 속에 있을 뿐입니다.

지난 시기 수많은 애국인사들, 무고한 양민들이 끊임없이 종북이란 누명을 뒤집어쓰게 된 것은 북한당국과 사용하는 용어의 개념이 비슷하다는 데 있습니다. 북한당국이 “민족자주”와 “민주”, “통일”이란 말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데, 남쪽에서 똑같은 말을 하고 다니니까 무언가 연계가 있다는 식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그것을 북한이 쓰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쓰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문제는 용어가 그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도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이지, 비슷한 용어를 사용하는 재야인사들이 문제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물론 제도권이나 보수인사들처럼, 북한과 비슷한 용어를 사용할 때마다 북한을 비판하는 문장을 삽입해서 국가보안법의 처벌을 피해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권 인사들의 행동은 대단히 이기적인 것입니다. 자기는 국가보안법의 사상검증을 빠져나오는 대신, 국가보안법을 더욱 튼튼히 만들어주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근거도 없이 북한을 비판할 것을 강요하고, 북한을 비판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행위와 정서 자체가 반통일적인 것입니다.

그 결과로 지난 70년간 종북공세는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여러분은 김대중, 김근태, 이해찬, 이철, 장영달, 유홍준, 유인태 같은 이들이 사실은 종북 빨갱이란 주장을 믿으시는지요. 당연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2015년에 한국사회에 종북인사들이 있다는 마녀사냥도 세월이 지나면 모두 새빨간 거짓말임이 드러날 것입니다.

다만 극소수 국민들은 김대중, 김근태, 이해찬, 이철, 장영달, 유홍준, 유인태 같은 이들이 정말 종북 빨갱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일간베스트>에서 활동하는 몇몇 일베충들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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